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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천년여행] 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110<2. 당나라 景敎 _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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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9호] 승인 2014.08.01  10: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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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서로 생활하기 불편한 인간장막

“그러면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삽니까? 저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분은 인생들이 재미있게 살게 하시는 분으로 믿고 싶습니다.”
“거 누구요?”
“저는 페르시아 황제 궁 내시부에 종사했던 키세로입니다. 혹시 제 말이 당돌해서 주교님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없나요?”
“오, 키세로 형제여, 행복하게 사는 앞날을 위하여 먼저 부름 받은 우리가 희생이 되어 줘야 합니다. 자손들의 앞날을 기대하는 어머니들처럼…….”
“그렇죠. 그런데 어찌하여 내게 오는 자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단 말입니까?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거든요.”
“그럴 거예요. 그건 신비이거든요. 인간이 그것을 몰라서 인류에게 비극과 재난을 유산으로 물려주기도 한답니다.”
“주교님! 무슨 말씀이신지 갈수록 더 모르겠어요.”
“자기 두뇌로 헤아리려고 하면 그런 현상이 나타나죠. 그분의 뜻에 먼저 동의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어떻게요?”
“누구든지 나를 따르고자 하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셨죠. 여기서 자기 몫의 십자가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지요. 자기 몫이란 운명적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

키세로는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처음처럼 자신감 있는 태도가 아니라 낭패감을 느끼는 듯했다.
“키세로 님! 뒤로 물러서지 말고 적극 대응하세요. 예수께서는 죽음의 십자가를 지셨으나 그 죽음 곧 형벌로 죽은 지 3일만에 생명(부활)으로 환원되셨잖아요. 보상을 받으셨다는 말입니다.”
“주교님, 감사합니다. 무엇인가가 보이려고 합니다.”
“그래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니까 형벌 또한 없지요. 형벌이 없으신 분의 죄값인 십자가는 부활의 보상으로 받는다는 것이죠?”
“그래요. 그 대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세요. 예수님께 형벌이 없다는 뜻이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형벌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면 우리가 받을 형벌은 다시 생명 곧 부활로 보상받는 것이 되는군요.”

“그래요. 예수 앞에 서세요. 예수에게 안기세요. 예수의 편이 되세요. 예수의 고난을 키세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보세요. 그럼 키세로가 진 십자가는 형벌이 아니고 보상이요 은총이 되어 어느 누군가의 형벌을 대신해 주는 은총의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저런, 나 같은 죄인이 진 십자가가……, 내가 진 십자가가 어느 타인의 생명값이 된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주 예수님을 모독하는 범죄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세히 들으세요. 먼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선행(先行)하신단 말입니다. 선행이란 먼저 값을 지불하셨다는 뜻입니다. 내가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예수의 사죄(용서)의 십자가를 내가 받아들임의 ‘선행’도 되는 것입니다. 바로 내가 주님이 명하신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의 십자가를 긍정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때에 내가 선택한 십자가가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한 행위가 아니고 내 십자가의 그 힘이 누군가를 향한 예비요 대신하는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위하여 죽는다는 자기 행동은 필요 없고 예수의 십자가가 나를 대신했으니 내가 진 십자가는 형벌의 대가가 아니라 내 뒤를 따라오는 어느 누군가를 위한 대속죄 예비가 됩니다.”

“아, 그럼 어떻게 보면 십자가는 하나로 보였다가 그 하나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구원 얻은 증표의 십자가가 되는군요.”
“네, 그렇습니다. 키세로 형제는 우리 기독교가 말하는 십자가의 신비한 가치를 어느 만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키세로 님 뿐 아니라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도 오늘 밤부터 기도하면서 말씀의 가르침을 받도록 하세요.”
안토니가 앞으로 나갔다.

“여러분, 지금 들으신 말씀을 거듭 생각하면서 주 하나님께서 지혜로 도와주시도록 기도하세요. 또 먼저 이 은혜를 터득한 이웃에게 질문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질문 이전에 주교님이 키세로 님에게 들려주신 그 말씀을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리시되 진리를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세요. 미처 깨달음이 오지 않고 답답하여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으니 감사함으로 은혜를 구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은혜란 말입니다. 이미 내게 원하시는 은혜가 내게 와 있어도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 흩어져서 나가지는 마시고 말씀을 묵상하시고 먼저 깨달음 얻은 이가 있으시면 도움을 구하세요.”

키세로가 안토니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침묵하고 있었다.
“키세로 님!”
안토니가 키세로의 손을 살포시 잡아 주면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키세로는 안토니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사제님! 그럼 주님의 은혜를 값없이 공짜로 받게 되는 것 같은데요.”
“주판알로 계산하지 마시고, 나를 죄악에서 건져내시는 어버이의 마음으로 헤아려 주세요.”
“그러게 말입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와 내가 지는 십자가가 똑같다는 결론에 이르고 보니 저는 더욱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감히 내가 진 십자가가 주님의 그것과 같다는 것입니까?”
“아니야. 주님의 십자가는 나와 키세로를 구하셨고, 우리가 진 십자가는 주님의 이름으로 어느 누군가를 위하여 예비하는 십자가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십자가의 값은 예수의 것이나 나의 것이 똑같다는 결론에 도달하니까 우리는 당황하는 것이죠. 우리가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키세로 형제 당신의 안타까움이겠죠.”
“그래요. 어떻게 예수의 십자가와 내 십자가가 같다는 것입니까? 견디기 어려운 송구함이요 마치 내가 불가침의 영역에 뛰어들어 도둑이 되기라도 한 것 같아요.”

“걱정 마시오. 키세로 당신은 주님이 인정하는 은혜를 받은 것이 틀림없구려. 이제 앞으로는 당신의 십자가 값은 예수의 그것과 똑같습니다.”
안토니의 이 말이 떨어지자 키세로는 벌떡 일어나서
“여보쇼, 안토니! 당신은 사단의 자식이고 십자가에다 예수를 팔아먹은 가룟 유다의 자식이 분명합니다. 위선의 탈을 당장 벗고 우리들 앞에서 용서를 빌어야 하오.”
키세로의 음성이 어찌나 큰지 옆 건물인 수녀원에서도 마리아 교수와 드보라가 찾아왔다.
“무슨 큰 싸움이 난 줄 알았습니다.”
마리아 교수가 안토니를 향해서 위로의 말을 했다.
알로펜이 앞으로 나섰다.
“여러분! 자리 정돈하고 앉으시오. 말이란 자칫 성급하면 사고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나눈 십자가 이야기는 틀린 곳이 한 군데도 없소.”

말을 잠시 멈춘 알로펜이 키세로를 바라본다. 그는 시선을 내려 앞사람의 뒤통수에 모으고 있었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께서 십자가 지신 후 지난 6백여 년 동안 그 십자가를 마치 도깨비 방망이나 되는 양 함부로 취급하는 신자들이 너무 많았어요. 오늘 우리들도 무엇인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예수 십자가는 내 십자가와 정식으로 만날 때 동반 효력을 발생합니다. 단 내 십자가가 정직해야 합니다. 내 십자가가 예수 십자가 앞에서 상호 동일성을 갖지 못하면 그 당사자는 위선자가 되고 맙니다. 십자가의 동일성은 나의 정직한 고백입니다. 내가 널 대신하여 죽었노라, 하실 때 나 또한 예수를 위해서나 예수가 원하는 자를 위하여 내 목숨을 내 놓을 때 내 십자가는 예수의 십자가와 똑같은 효력을 냅니다. 이는 하나님의 법칙이요 약속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나의 하는 일을 너희도 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더 큰 일도 하리라고 예수는 말씀하신 겁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설명하고 있는 방법은 최하위 중에서도 하위에 속합니다. 지혜자들이 금하고 있는 방식으로 진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바보짓을 한다고 자책하면서도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이러는 겁니다. 동양의 지혜자인 노자(老子)는 그가 쓴 도더경(道德經) 첫 장에 도(道)가 도(道)이면 비상도(非常道)라 했어요. 억지로 해석하려는 행위는 망동이요 진리에 대한 배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을 꺼낸 김에 아예 내가 미친놈이 되자면, 내가 예수 십자가에 동반(함께 십자가를 짐)한 그 행위가 진실이면 나와 당신들의 십자가가 상호 동일한 십자가의 창조적 행위를 획득하게 됩니다.”
“아멘입니다. 나 마리아는 주교님의 십자가에 이 몸을 던집니다. 함께 제물 되고 함께 희생을 이룬 나의 십자가, 주 예수의 것으로의 동반은혜를 또 아멘으로 받습니다.”
“저도요. 드보라가 마리아의 십자가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며 울기도 하고, 가슴을 치는 사람, 비명을 지르는 사람,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앉은 자리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이 한둘씩 자리를 차고 일어나기도 하고, 손뼉을 치면서 아멘을 연속으로 중얼거리는 등 간절함과 뜨거운 분위기가 계속 되었다.
“주여! 우리의 불완전을 온전케 하소서!”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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