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21세기 이렇게 대비한다 / 37-26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그가 섬기는 비텐베르크 예배당 정문에 일명 95조항의 반박문을 내걸었다. 그의 반박은 그의 몸 중의 몸으로 여기는 로마 가톨릭을 향한 애정어린 충고였다.

그는 어느 누구와 함께도 아닌 그 혼자만의 결의로 반박문을 걸었는데 제1항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하셨을 때 이는 믿는 자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였고, 제 95항은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평화에 대한 잘못된 확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많은 고난을 통해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확신하여야 한다”(행 14:22)로 명시, 반박문의 시작과 끝을 우리에게 명백히 밝히고 있다.

지난달 로마 가톨릭 교황이 4박5일 동안 우리나라에 다녀갔다. 그는 충분히 한 사람의 목자다운 모습으로 우리 사회의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고, 그의 이 같은 고결한 정신에 대해서 대통령을 중심하여 온 마음을 다한 다수의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

그 모습을 보고 한국사회에 정말로 지도자가 적구나, 아프고 힘겨운 삶을 사는 자들이 울며 매달리고 기도를 부탁하고, 그의 위로와 정성어린 살핌에 대해 많은 이들이 감사하고 감격했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만이 교황이 한국 땅에 와서 자비행을 일삼고 있는데 아무런 반응을 보내지 않았다. 일부 계층에서 가톨릭의 이단성만 산발적으로 지적하고 규탄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로마 가톨릭은 현재 시간 ‘프로테스탄트와 리폼드’라는 이름으로 세력이 형성된 루터와 함께 결의를 같이 하는 기독교 신교의 개혁요구와 저항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16세기에는 마르틴 루터 혼자만의 힘으로 개혁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오늘날 497년째 종교개혁일을 맞이하는 우리는 신사적인 게임을 하자고 배부른 가톨릭을 불러내고 있다.

로마 가톨릭은 ‘기독교 구교’가 되고 개혁세력은 ‘기독교 신교’로 표기함이 옳다. 세간에 상당수의 기독교 신교 사람들이 인쇄와 출판물에서 ‘개신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 이름을 사용하기로 한국교회가 결의한 바가 없다. 다만 전두환 정부시절이라고도 하고 1960년 4.19혁명 후 장면 정부가 쓰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개신교’라는 표현으로는 기독교를 대표하지 못한다.

그래서 16세기에 형성된 프로테스탄트인 ‘기독교 신교’는 ‘구교’인 로마 가톨릭을 향하여 루터의 방식으로 당신들의 몇몇 교리나 의례 또는 전승들은 성경과 기독교 가르침을 무리하게 적용하고 해석하고 있음을 추궁하겠다. 그 결과 잘못된 부분을 고치지 않으면 로마 가톨릭은 기독교 정통과 역사성에서 빗나간 기독교 조직임을 지적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루터 혼자서 시작했던 1517년 10월 31일 시작된 신사적 전쟁은 로마 가톨릭에게 정중하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올바른 가르침에 따라서 기독교 신교와의 동반관계를 위하여 겸허하게 논쟁을 요구한다.


〈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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