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량 평신도 선교사의 길 걷는 염용원 장로, 박동숙 권사

20년 전 사업 실패, 하나님께 더욱 매달리는 계기
아내의 실명 진행, 값진 인생 후반 위해 함께 뛰어

   
▲ 염용원 장로, 박동숙 권사

부부관계는‘무촌’이라는데, 그래서일까. 서로 간격을 따질 수 없을 만큼 가까우면서도 등 돌리면 남이 되는 가장 먼 관계 또한 부부라는 것이다. 요즘처럼 백세를 구가하는 시대에 가장 신경 써야 할 노후대책 역시 부부관계라는 말들도 한다.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만큼 금슬 좋은 부부관계는 행복한 삶을 위해, 아름다운 인생 마무리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30년을 넘게 같이 살아온, 환갑을 코앞에 둔 59세 동갑 부부 염용원 장로와 박동숙 권사는 서로에게 “생명의 은인”이라며 여전히 사랑 가득한 시선을 주고받는 모습으로 인생의 동반자뿐 아니라 신앙 면에서도 동역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 5억 원 주고 산 아내

사랑을 넘어 생명의 은인이라고?
“불교 집안에서 시집 와 남편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으니 생명의 은인이지요. 남편은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여주었어요.”
아내 박 권사의 말에 남편인 염 장로는 한술 더 떠서 “하나님께 아내를 5억 원에 샀다”며 껄껄 웃는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이들 부부는 자신들을 ‘자비량 평신도 선교사’라고 소개했다. 염 장로는 커피전문점 사장이자 직접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이고, 박 권사는 ‘로뎀나무’ 어린이집 원장으로 생업을 갖고 삶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주업은 ‘선교’라고 말한다.

매년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등 해외 선교지에 찾아가 사역에 지친 선교사들을 위로하고 건축 등 몸 쓰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힘닿는 대로 헌신한다. 그뿐 아니라 염 장로는 전공(?)을 살려 기독교 관계 행사 등에서 원두커피를 즉석에서 내려주며 봉사하고 커피를 전도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도 하고 있다. 박 권사는 섬마을을 비롯해 전국 각지로 미용봉사에 나선다.

이제는 직원들도 선교 마인드를 닮아가는지 이들이 선교지 봉사를 위해 자리를 비울 때면 최선을 다해 빈자리를 채우며 돕고, 교사들이나 어린이집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모은 저금통을 가져와 선교에 보탬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이들 부부는 삶 속에서 신앙을 실천하고 복음을 드러내기 위한 일에 함께 나서고 있다. 섬기던 교회가 속한 예성 교단 총회에서 실시하는 평신도 선교사 훈련 과정을 마치고 ‘선교사’를 자처하며 걸어온 지 10년이 넘었다. 특별히 어디에서 파송 받거나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선교사’의 사명을 안고 살고 있었다.

이들 부부가 선교사의 사명을 품고 동역자로서 더욱 돈독해진 데에는 참담한 ‘실패’가 배경에 깔려 있다. 20년 전 사업 실패로 서울을 떠나 경기도 안성에 안착한 후 사명에 대한 기대와 포부는 더욱 강해졌다.
염 장로는 국가사업으로 지하수 개발하는 일을 하다 동업자가 문제를 일으켜 결국 사업을 접게 됐고 5억 원의 손해를 떠안고 무일푼으로 아들 둘을 데리고 안성으로 내려왔다. 오래 전에 땅을 사두고 잊고 있었는데 모두 잃은 그들에겐 그곳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암담한 상황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의 염 장로는 허허벌판이던 땅에 손수 어린이집과 주거할 집을 지었다. 도무지 혼자 해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예쁘고 튼튼한 단층 건물이다. 그리고 일평생 지켜온 주일성수와 교회 직분 등에 소홀함 없이 하며 더욱 하나님께 매달렸다. 남편이 실패와 배신의 아픔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자 아내는 비로소 신실하신 하나님을 몸으로 경함하고 신뢰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남편 따라가는 신앙생활이었어요. 교회 안에 인간적인 문제로 어려움이 있을 때면 회의감이 들기도 했고요. 그런데 기가 막힌 상황에서도 이전과 다름없이 요동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남편을 보면서 저게 신앙이구나를 알았습니다.”

결혼하고 교회 다니기 시작하면서 봉사도 했지만 선뜻 믿어지지 않았는데 남편의 굳은 믿음은 아내를 감동시켰고 신앙의 삶에 천착하게 했다. 권 장로는 “아내가 참된 신앙으로 나아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며 잃어버린 5억 원에 대해 이제는 웃으며 말할 정도가 됐다.

# 인생의 터닝 포인트

선교의 삶에 매진하게 된 데는 또 한 가지 계기가 있었다. 박 권사가 눈이 서서히 실명되는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 RP) 판명을 받은 것이다. 희귀 난치병으로 치료법이 없어 결국 언젠가는 시력을 잃게 된다. 국내에선 가수 이동우 씨가 이 병에 걸려 세간에 알려졌다. 박 권사는 40대 중반쯤 병에 걸린 것을 알았다.

“눈이 침침하고 밤이면 보는 것이 더 어려워 간단하게 조치를 취하면 되겠지 하고 병원에 갔다 병명을 알게 됐어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지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박 권사는 진취적인 성격에 대학을 4곳이나 공부할 만큼 배움에 욕심이 많은 편이었다. 어린이집 원장으로 일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는 것 같아” 늘 배움의 기회를 찾았다. 그런 그에게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너무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미 15년 가까이 병이 진행된 상태로 지금은 물건을 응시할 때 초점을 맞추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옆에 지나가는 사람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이다.

처음엔 자신이 병에 걸린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 주변에도 숨겼다. 하지만 이제는 미리 자신의 상태를 알려 이해를 구할 정도로 덤덤해졌다. 병에 걸린 것을 알고 퍼뜩 드는 생각은 “값진 일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거였다. 그것은 내 것이라고 여겼던 인생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깨달음의 실천이었다.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시력이 남아있는 동안 후반의 인생을 잘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비량 평신도 선교사로 나선 것은 “내려놓는 훈련”의 일환이었다. 남편은 박 권사가 병을 받아들이고 신앙으로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염 장로 역시 청년시절 빌리그레함 목사 방한 집회 때 자비량 선교사로 서원했던 약속을 지키게 됐다는 기쁨이 크다고 말한다.

평신도 선교사로 봉사하면서 그동안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을 전부로 여기던 것에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교회에서 말씀 배우고 신앙의 훈련을 받은 자라면 세상으로 나가 그리스도인다움을 삶으로 펼쳐내야 한다는 깨달음이 컸다. 그것이 ‘땅 끝’까지 복음 전하라 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장로나 권사 등 오랜 시간 신앙의 훈련 받고 생활의 기반이 다져진 사람들이 자비량선교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교회 각 교단마다 평신도 지도자를 세우는 것을 강조하는 반면 개교회에서는 ‘내 성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인생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갈음하고픈 갈망은 누구에게나 동일할 것이다. 염 장로와 박 권사는 요즘 인생의 후반전을 고민하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은 “하나님 나 이거 할래요, 저거 할래요 하며 떼썼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그 음성에 더욱 귀 기울일 것”이라고 말하는 염용원 장로, 박동숙 권사, 사랑으로 사역으로 결실 맺어가는 이들 부부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의 삶을 위해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다.

 

정찬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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