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497주년-특집(4)] 한국교회 부끄러운 자화상, 길은 어디에 있을까


 

어느 날 방송에서 진짜가 가짜인 모양새, 가짜가 진짜인 채 행세하는 ‘실험’을 보았다. 야채의 갈색을 막기 위해 색소를 첨가해 소비자의 입맛에 맞춘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색소가 들어가 몸에 좋지 않은 독소를 품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색소를 넣지 않은 것은 색깔이 변했다며 구매를 하지 않고, 예쁜 색채로 변색한 쪽을 구매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품들처럼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가짜가 진짜인 채 행세하고, 옳지 않은 것이 마치 정의로 둔갑하는 모습들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역겨운 모습을 피해 그런 ‘판’에 끼지 않으려 한다. 그들과 맞서지 않고 내 위치에서 주님의 뜻을 가꾸며 나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루터 자신도 막강한 제도권의 잘못을 묵인하고 자신만의 길을 갔다면, 1517년 ‘개혁’이 이루어졌을까?

   
| 하나님의 아들로, 사람으로서 이 땅에 오셔서 사시다가 모든 생명들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죽음의 길을 선택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가 그 어느 때보다 한국교회에 절실하다. 교회의 본 모습의 회복이….


루터의 고민, 행동으로 표출

루터의 종교개혁 시절에도 그런 모습은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죄를 범한 신자가 고해성사나 선행, 기부 등으로 지상이나 연옥에서 받을 벌을 용서받을 수 있다는 ‘면죄부’라는 증서가 있었다. 이 면죄부 판매를 통해 교황청의 수입을 증대시켰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로마에 베드로 성당을 신축하고자 했다. 그 재정을 조달하기 위해 1506년 일괄 면죄부를 발행했고, 면죄부 판매 수입의 절반을 교황청이 융자금을 상환하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알브레히트는 도미니크 수도사이자 열정적인 설교자 테첼을 통해 면죄부를 팔았는데, 그는 ‘금화를 면죄부 헌금함에 넣어 딸랑하는 소리가 나면, 죽은 자의 영혼은 천국으로 향한다’고 설교할 정도였다.

이런 현상을 보며 오랫동안 고민하던 루터는 당시 부패한 교회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면죄부에 대해 학문적으로 토론하고자 비텐베르크 성 교회 정문에 95개 논제를 붙였다. 면죄부 논쟁을 통해 루터 자신도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임을 깨달았다. 인간의 행위에서가 아닌 은총이라는 것을.

그러나 이것이 발단이 되어 4년만인 1521년 교황으로부터 영원한 추방을 선고받았다. 면죄부의 오용에 맞서 로마 교황을 보호하여 그의 권위를 세워주려 했지만 결과는 성직 박탈이라는 치명적인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년을 3년 앞둔 시점에서 루터의 면죄부가 오늘날에는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빙자해 보이는 교회의 치장을 꾸미려 하는 욕심 때문에 ‘면죄부’ 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오늘날 한국교회도 여기저기서 그런 모습이 횡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리사욕을 채우는 현상들

A 교회가 양분되어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중심에는 목회자 안수 과정에서의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모든 과정을 거쳐서 십년이 넘게 목회를 했는데, 이제 와서 그것을 문제 삼는다. “담임목사 퇴진해야 한다”는 측과 “이제 와서 아무 문제가 안된다”며 양측으로 나뉘어 몸싸움을 한다. 결국 이 사태는 사회법으로까지 나가서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B 교회는 성추행으로 문제가 된 목회자를 중심으로 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여전히 그 목회자에게 성추행을 당한 이들이 고통스러워하고 힘겨워하고 있는데, 다른 곳으로 나가 교회를 세운 것이다. 그가 속한 노회는 그를 치리하지 않고 있다. 죄를 지은 자도 있고, 거기서 피해 본 자도 있는데 정작 본인은 강대상에서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전하고 있다.

A 단체는 연합기관이다. 교단들의 연합인 이 기관은 주요 교단에서‘이단, 사이비’로 결의한 사안을 대표회장 중심으로 몇몇 사람들이 주도해서 ‘해제’를 밀어붙였다. 결국은 그 주요 교단들 대부분이 탈퇴했다.
그리고 그 교단들은 B라는 또 다른 연합단체를 설립했다. 그런데 대표회장에 2심(고법)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대법의 확정 판결만 남은 자를 버젓이 후보로 받는가 하면, 총대들은 그 사람을 대표회장에 선출했다. 물론 당사자인 본인은 물러날 생각이 없다. 그리고 그가 취임한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도 물러나게 할 조항이 없다며 여전히 그 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사례를 수십, 수백 개 나열하기란 어렵지 않다. 담임목사로서, 교단장으로서, 연합기관장으로서 행세할 수 있는 권한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혈안이 되어, 그 위치를 점령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주변의 사람들을 이권, 금권으로 옭아매어 자기 사람을 만든다.

어떤 교단장은 한 번 찾아가기만 해도 집어주는 돈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그는 거기에만 그치지 않고 연합기관장의 대표가 되기 위해 여전히 기회를 노린다. 기회를 포착해 결실을 얻기 위해 그는 열심히 ‘사람 관리’를 한다. 금덩이를 주고, 명예를 주면서….

문제는 한국교회를 이끌어간다는 텃밭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한국교회를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라면서 자신의 사욕이 아닌 공익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임을 내세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행태를 버젓이 눈 뜨고 보고 있는 이들 중에는 그것이 거짓인 줄 알고 아예 무시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들과 함께 춤추고 있는 상당수 목사나 장로들이 있다. 그들은 기회가 되면 또다시 자기의 이익을 위해 ‘한국교회’나 ‘하나님’ 운운하면서 자기주머니 열심히 챙길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럼 신자 개개인은 어떨까. 주 예수를 닮아가려는 피나는 노력을 성직자에게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이니 신자 개인들에게는 그런 기대를 아예 접어야 할까. 교회에서는 누구 못지않게 공손하고 예의 바르고, 신앙의 길을 좇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도 사회 속에서의 생활을 보면 엉망이고 배타적이지 않은가.


무엇이 문제이고, 대안은?

40여 년 목회 현장에서 사역하고 있는 L 목사는 “루터시대는 그래도 순수했다. 자기 욕망이나 명예욕에 사로잡히지 않지 않았나”라며 그런 면에서 오늘의 시대를 ‘암흑기’라고 보았다.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사태나 교단과 연합단체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욕’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그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L 목사는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근신”이라고 말한다. 자기를 내려놓고 자랑하지 말고, 저마다 자기의 죄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하나님의 긍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시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하는데 정말 믿고 있는지 깊은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다며 달려온 한국교회의 현 상태가 교파주의, 물량주의, 성공주의 속에 함몰되어 있다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 믿음을 점검해야 함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마틴 루터가 제창했던 ‘만인제사장’의 실현은 어떨까.
L 목사는 “삼위의 하나님이 본질에서 하나가 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 공동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목사, 장로, 권사 등의 직분이 마치 계급처럼 수직화된 것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런 차원에서 보면 구원도 개인적 차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우리’가 되어지는 것”이라며 “주님의 생명 안에서는 분리가 없고, 분리 자체가 사망”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수백개의 교파로 나뉘어진 오늘날의 현상은 어떤 상태인가. 그는 “오늘의 한국교회는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같다”며 “이 죽음과 같은 폐허 속에서 다시 생명을 찾기도 버거운데 개혁을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같다”고 말한다.

25년 정도 신앙생활 했다는 K 씨는 그 가운데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갈등의 핵심에는 목회자의 사욕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취 때문이었다고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제일 앞장서서 내놓는 사람들이 목회자 아닌가? 그런데 논문 표절 얘기가 나오는데도 버젓이 그 자리를 버티고 있는가 하면, 사회에서 실형 받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강단에서 말씀을 들고 설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교회 구성원들이 무감각해진 상태라고 본다. 이런 것이 바로 본인 자신은 물론 교회를 병들게 하고 사회인들로 하여금 ‘비상식적인 탐욕의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만드는 것 같다.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전전긍긍하는 그들이 바로 ‘암덩이’ ‘독소’인데, 정작 자신들은 의인행세를 하고 있는 상황인 게 가슴 아프다.”

30여 년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C 장로는 우리가 진정 예수님의 말씀을 좇는 사람들이라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배우고, 그분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그분을 바라보기 보다는 내 의를 쌓기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하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려하고, 자기 주장대로 끌고 가려는 모습이지 않습니까.”

모든 신자가 주님을 배우기 위해 각자의 달란트로 봉사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게 하고 그분의 뜻 가운데 이루어 가시는 것임을 고백하는 교회 공동체가 돼야 하는데, 그 공로를 목회자나 어떤 신자들이 가로채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상황은 아니냐고 그 장로는 반문한다.

교회가 역사 현실 속에 안주하려고 할 때 세속 권력과 야합하고, 불의와 타협하고, 신앙적 가치를 무시하게 되어 중세교회의 타락을 불러왔다는 지적들이 많다. 또한 교회의 세속화는 기독교가 너무 쉽게 그 고유한 가치를 포기해 버린 결과라고 철학자 레젝 콜라콥스키는 지적한다.

신앙적 가치, 교회의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가.
목회 30여 년의 여정에 있는 G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가 한국교회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 가셨던 그 길, 모든 사람은 죄의 굴레에서 완전할 수 없는 것임을 아시고 죄 값을 이미 치르셨던 ‘속죄’의 길.

“여전히 신자들은 자기의 열심과 공로로 무언가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처럼 율법의 사람들이 되어 있는 현실을 보고 주님은 무엇이라 하실까요?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셔서 완성하셨는데도 그 진정한 의미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한국교회 모습입니다.”

L 목사 역시도 오늘 한국교회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은 “주님으로의 회복”이라고 강조한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가 아니라 주님이 오셔야 하시는 것을 찬양하고 따르는 것, 자기의 사욕을 채우면서도 마치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처럼 주님을 이용하고 영적으로 미혹시키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앙은 ‘나는 아니다’라며 끊임없이 자기 부인을 하며 주님 중심의 신앙, 인본중심이 아닌 신본중심의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L 목사는 “주님의 임재를 끊임없이 간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신앙을 훈련시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라며, “그것은 불교의 수행과 같은 것이고 세뇌일 뿐인만큼 신자 개개인이 예수로 사는 거듭남의 은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G 목사는 “사탄은 끊임없이 신자들을 보면서 ‘네 꼴’을 보라며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댈 때 속지 말라”고 말한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 전에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를 통해 모든 이들의 죄를 사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생명으로 날마다 거듭난다면 그런 부분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거창한 화두로 시작한 취재는 믿음을, 신앙을 재점검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근본적인 것에서 출발해야 함을 절감하게 했다. 루터의 개혁 497주년을 맞는 오늘의 한국교회는 ‘목회자, 신자다움’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음을 실감케 했다.

양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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