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기독교(景敎)_ 45

“뭐, 새 종교? 거 무슨 말씀이신가요?”
“네, 다른 뜻이 아니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가 지금이라는 뜻으로 해보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지적대로 큰 이단자로 무함마드도 나왔고,
아시아는 우리 손 안에 들어와 있으니 아시아의 다음은 예루살렘이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이 왔지요.”


   
▲ 쿠차국 구마라습 선원 정문에 세워진 구마라습 청동상

알로펜은 쿰바홀 부주교와 함께 쵸코국을 향해서 간다. 난주를 지나서 하서주랑에 들어섰다. 좌측으로 티벹 우측으로 돌궐인들이 좁혀오는 일종의 병목현상으로 길쭉한 험로가 하서주랑이다. 하서라 함은 황해의 서쪽지방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알로펜은 마치 무장의 복색 비슷하게 단장했다. 또 달리 보면 독일인 수도사들의 모습도 같았다. 의관을 갖추었으나 모래바람과 동무하는 길이니 얼굴만 하얗게 드러나 그가 몇 살 정도의 장정인지가 가늠되지 않았다. 등허리는 꼿꼿하고 어깨는 튼실한 모습이었다. 그는 쿰바홀보다 더 건강한 장정 같았다.

“주교님은 청년의 모습 같아요. 건강하시니 늘 제 마음이 기뻐요. 저보다 젊어 보이시거든요. 송구한 말씀이네요.”
“아니오. 그럴 수밖에. 나는 아직…, 아직 이잖소.”
“아, 참. 그렇기는 합니다만…. 사실은 언제쯤 한 번 여쭈어보고 싶었거든요.”
“그게 그렇게 어려웠소이까?“
“그럼요. 우리 아이들 장래도 있고 해서요. 쿰가그나 쿰보그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직 묻지 못했어요.“
“음, 저런. 어서 장가들을 보내야죠.”
“어디 신붓감이 있나요? 참…!”
“찾으면 있지, 어찌 없겠소. 그러나 본인들 의사가 먼저 아닐까요?”
“아,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련만….”

알로펜은 어려서부터 독신을 생각했다. 바울 사도가 혼자서 살았다는 점이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장가 간 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까를 걱정한다고 성경에 써있지 않은가. 더 말해 무엇 하는가? 결혼 아니 한 자는 주야로 늘 주의 일에 몰입하는 것이라…. 이보다 더 분명한 답과 방향 선택이 어디 있는가. 물론 바울 같은 이들과 비교한다는 것이 건방져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지….

“주교님은 어느 쪽이셨어요?”
“나는 어찌어찌 하다보니 깜박했다고나 할까….”
“아니실 것입니다. 새 종교의 날을 기다리신 것 아니신가요?”
“뭐, 새 종교? 거 무슨 말씀이신가요?”
“네, 다른 뜻이 아니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가 지금이라는 뜻으로 해보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지적대로 큰 이단자로 무함마드도 나왔고, 아시아는 우리 손 안에 들어와 있으니 아시아의 다음은 예루살렘이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이 왔지요.”

“아하, 쿰바홀…. 어디서 그런 말을….”
“주교님께서….”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요?”
“얼마 전에 금식하며 기도하는데 주교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시더군요. 말씀하시면서 입에 담아두고 입 벙긋도 하지 말라 하셨으나 주교님께 지금 확인하는 것은 입 벙긋 했다고 노여워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그래요…?”

알로펜은 쿰바홀의 입을 어떻게 단속할까를 걱정했다. 그러나 지금 쿰바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주교님! 제가 경솔했나요?”
쿰바홀은 마차 몰던 손을 놓고 알로펜을 향해 근심에 찬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 마차가 서 버린다. 두 마리 말이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놀란 쿰바홀이 말을 향해 채찍을 들려 하자 말들이 힝힝… 콧바람을 내뱉으며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아니오. 꿈속에서 내가 나타났어도 내가 분명하고, 또 내가 말을 한 것도 분명한데 무슨 걱정입니까?”
“그게 아니라, 문제는 제 꿈 내용과 주교님의 말씀이 어떤가가 문제지요.”
“그렇구먼….”
알로펜은 쉽게 답하지 않았다. 입을 아직은 열 수 없었다. 물론 새 종교라는 말은 예수의 재림을 말하는 것이다. 쿰바홀에게 말을 털어놓지 않음으로 억제 효과가 더 강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쵸코와 사마르칸트의 교육체계가 갖추어지면 모든 동역자들이 알아야 할 내용이다. 또 쿰바홀 정도의 신임하는 제자가 꿈속에서 내게 배웠다는데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또…

“주교님, 제 입이 방정이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직접 말씀하실 때까지 저는 모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 아니야. 그래, 그럼 쵸코국에 가서 다시 말하기로 합시다.”
쿰바홀은 그러나 주교님이 자기를 아주 깊이 신뢰하는 것은 아닌 듯해서 서운한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쿰바홀은 알로펜의 제자요 단독으로 알로펜 선교회의 부주교이다. 앞으로 더욱 충성으로 주님을 섬기고 알로펜을 따를 것을 속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는 아들들도 둘 다 독신으로 교단을 섬기고 알로펜을 배우도록 할 계획이었으나 지금 이 시간 그 결심을 확실히 굳히기로 했다. 이미 아들들과는 충성의 길은 독신임을 확인한 바도 있다. 알로펜과 독신 문제로 좀 더 논의하기로 했다.

돈황에 도착했다. 마차로 오는 길에 알로펜은 전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여관에 짐을 부리고 밖으로 나왔다. 북과 꽹과리를 치며 머리에 고깔을 쓰고, 고깔 끝에 하얀 끈을 길게 늘여서 끌며 십여 명이 원을 그리며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삼베 바지와 저고리 색상을 각각 바꿔 입은 모습이었다. 웃옷이 하야면 바지는 감청색이나 벽돌색으로 저마다 옷 색깔이 약간씩 달랐다.

“여보, 쿰바홀 부주교! 저 사람들 보시오. 저 사람들은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쿰바홀은 마차에 불편하게 자리하고 앉았던지라 한쪽 다리가 불편했다. 알로펜을 편히 앉게 하느라고 자리를 비좁게 앉아서 오느라 몸이 불편했다. 그는 허리를 굽혔다 펴기를 거듭하다가 알로펜이 바라보는 쪽을 눈여겨보았다.

“아이고, 저들은 요서지방 저 멀리서 온 몽골족들인데 저 사람들 오늘은 옷을 단장해서 입었군요.”
알로펜이 쿰바홀을 따라 걸으며 그의 등허리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나 때문에 자리가 불편했었구려.”
“아니에요. 제가 잘못 앉아서 오느라 좀 욱신거리는구먼요.”
“내가 알지. 오늘따라 오는 길도 조금은 길지 않던가?”

오늘따라 주교가 자꾸만 말을 걸고, 신경을 많이 쓴다고 쿰바홀은 생각했다.
“주교님, 제가 입방정 떨었던 것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저는 주교님 제잡니다. 무엇을 걱정하세요. 나이만 좀 먹었지요. 아니 베드로는 예수님보다 더 나이가 많았다고 안토니 사제가 말하던데요. 제가 좀 멍청해도 저는 주교님이 죽으라 하시면 콱, 죽을 수도 있어요.”
‘콱’이라고 말할 때 쿰바홀은 두 손으로 자기 목을 조여 매는 시늉까지 해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알로펜도 꼭 곰처럼 생겼다면서 함께 웃었다. 알로펜은 쿰바홀의 허리춤을 잡고는 장난스럽게 이끌면서 걸었다.

“왜요? 제 허리춤을 이렇게 쥐고 어디로 날 끌고 가려고 그러세요.”
“아니야. 어디로 가서 요기 좀 합시다.”
“요기는요. 여관에 가면 다 준비되어 있을 걸요.”
“응, 그렇지. 참!”
그러면서도 알로펜은 돈황의 더 번잡한 곳으로 갔다. 불교 승려들이 수십 명씩 떼를 지어 간다. 한 대, 두 대, 세 대로 무리 지어서 간다.

“이곳은 중들 세상이지요.“
“그렇기는 하지만…. 서역은 최소한 아쇼카 왕의 중흥기부터는 불교가 지배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교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허탄이나 쿠처는 지난 1천년쯤 되는 세월 동안 불교가 뿌리를 내렸으니 지금은 제국 전체가 불교의 영향권 안에 있지요. 조로아스교가 불교의 틈새를 파고들지만 쉽지가 않아요. 이곳 돈황이나 서역 지역 중 종교의 힘이 있는 곳은 우리의 쵸코국이니 쿠처와 허탄이 강하죠. 조로아스터교는 마니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더군요. 마니교가 우리 기독교를 가까이 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괜찮은 일이죠. 마니교는 여러 종교 중 우리 기독교와 불교를 제일 많이 닮았죠. 자칫 마니교와 기독교는 서로 같은 종교일지도 모른다는 혼돈에 빠진다죠. 그래서 히포의 감독 어거스틴은 서른 살이 넘도록 20년 가까이 마니교 전도사 노릇을 했던 마니교의 여자 아들을 몇 명이나 낳았다지요. 그래도 로마교회는 그를 성자라 호칭하니 로마에도 인물이 귀한 것일까요. 아니면 인물 치장하는 데 관대한 것일까요?”
“그 인물이 훌륭하시겠지.”
“주교님, 제가 왜 남의 말을 이렇게 쉽게 하죠. 야만인의 땅에 오니 야만이 되나봅니다. 주교님! 용서해 주세요. 사실, 주교님이나 마리아 교수님이 오냐 오냐 하셔서 부감독이라는 과분한 직분까지 주신 것이지 제가 아무런 자격도 없음을 저는 잘 압니다. 용서해 주세요.”

쿰바홀은 갑자기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두 손을 가슴께로 모아 쥐고 눈물을 쏟고 있었다.“
“허, 이런 쿰 주교, 왜 그래요?”
알로펜은 빨리 쿰바홀 가까이 가서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는 사이 호기심에 찬 사람들 몇 명이 알로펜과 쿰 부주교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들 중 로마 교회의 묵주를 쥐고 있던 젊은이들 네댓 명 가운데 한 사람이 쿰 부주교에게 묻는다.

“당신은 돌궐사람이 분명한데 부주교다 하고 여기 이 노인에게 주교라니 거 무슨 말이오?”
그들 젊은 승려들은 회색 복장을 했으나 속에는 검정색 옷이 한 겹 더 있었다.
“젊은이들은 누군가? 말씨가 곱지 않군 그래.”
쿰바홀은 쵸코국의 명사요 또 쵸코가 돈황에 영향력이 큰데 그가 이방 나그네 따위를 껄끄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그들은 스무 살 조금 더 먹은 페르시아나 아나톨리아인들일 것이다.
쿰바홀이 쏘아보는데도 그들은 기죽지 않았다.

“그대는 마니교 사람인가, 아니면 소그드 상인인가?”
“뭐야. 이 사람들이 예의가 없군 그래. 난 기독교 당나라 선교부 부대표 쿰바홀 부주교일세! 자네들이야말로 어디서 온 뜨내긴가. 이 지역 떠도는 사람들이 언사가 곱지 않아서야 어디 찬밥이나 얻어먹겠나!”
쿰바홀이 단단히 화가 났다. 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알로펜을 늙은이로 치부해서 그런 것일까? 그들은 쿰바홀 기세에 눌려 잠깐 수그러들더니 당나라 기독교라는 말을 듣자 정색을 했다.

“뭐요! 당나라 기독교라니, 언제 우리 로마 교회가 당나라에 갔나?”
그들은 저들끼리 혹시나 실수하지 않을까 싶어서인지 한동안 망설인다. 그러다가 한 사람 그중에서 얼굴이 붉고 키가 제일 큰 사람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그럼, 당신들은 혹시 네스토리우스 이단 집단들인가 보구려.”
그들은 당장 쿰바홀의 멱살이라도 잡을 듯이 덤벼든다. 그들은 또 어딘가를 향해서 휘파람을 분다. 달려오는 이들은 그들만큼 한 젊은이들이다. 다들 로마 기독교의 선교단 사람인 듯 했다. 그들은 열 명이나 되었다.

“여보시오. 보아하니 로마교회 수도사나 전도자들 같은데 그래도 우리가 나이가 좀 많소. 여기 쿰바홀 부주교는 여러분만큼 나이를 먹은 사제를 두 분이나 아들로 두신 분이오. 나는 말이오. 70살이나 된 늙은이야. 기본적인 예의로 우리가 서로 만나야지 안 그렇소?”
“아, 그건 그렇고. 여러분은 네스토리우스파 사람들입니까?”
“그래.”
쿰바홀이 앞으로 나선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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