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기독교(景敎)_ 49

구도자는 자기를 내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예부터 구도(求道)는 자기 포기, 자기 박탈(剝奪), 자기 파기라고 했습니다.
사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로 사는 것’ 입니다.
단순 신자가 아닌 예수와 동행하여, 예수가 하시던 일을 자기도 하고
때로는 더한 일도 해낼 수 있는 예수의 사람은 대속(代贖)이라는
교리론에서 허덕이면 안 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살아내는 것입니다.

   
▲ 둔황 밍사산, 관광객을 기다리는 낙타들.


알로펜은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크데시폰이면 페르시아의 수도로서 제국 로마와 쌍벽을 이루는 말 그대로 페르시아 아니던가. 문명의 역사로 보거나 인류사의 기여도를 보아도 로마에 뒤질 생각이 없던 페르시아였기에 기독교 정통파들로부터 당한 모멸감은 매우 컸다. 물론 이는 기독교인들끼리의 감정이다.

네스토리우스파 이단이 뭔데…, 알로펜은 로마 교구 사제들로부터 그의 부친 압바스 감독이 죄인 취급 받던 때를 떠올릴 때면 혐오감이 일었다. 기독교를 떠나버릴 생각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위로가 그에게 마음의 평정을 주곤 했었다. ‘때가 올 것이야. 아직은 모두가 서툴러. 좀 더 성숙해지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점차 알게 될 거야.’ 알로펜은 어머니가 그렇게 말할 때면 ‘엄마, 엄마는 뭘 믿고 그렇게 자신이 있어요?’ 하고 되묻곤 했다.

그럼 어머니는 배시시 웃었다. ‘아이고 내 아들, 그래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러서도 가해자들에게 한 말씀 없으셨던 그분의 자신감을 네가 알 때가 올 것이야.’ 어머니는 여기까지 말씀하시곤 그에게 ‘아들은 무엇이 먹고 싶은가? 엄마가 만들어 주지’ 하셨다. 먹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의 손을 붙잡고 밖으로 나가 화단의 꽃들을 바라보면서 웃고 그 향기가 좋다 하시면서 코끝을 꽃나무 가까이 가져가며 웃곤 하셨다.

그래 우리가 너무 서두르면 안 되지.
“여보게들! 여보게들!”
서로의 생각이 다르듯이 걸음걸이 속도에 차이가 있어서 서로 간의 거리가 100미터쯤이나 되었다. 젊은이들은 석굴마다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그들끼리 의견을 나누느라 알로펜이 멀어져 있음을 잊었나. 알로펜이 제법 큰소리로 말했는데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사람들아, 오늘 우리가 그래도 잘 만났지? 또 니꼴라이야! 자네 정말 내게 남아서 배움을 얻겠다는 것인가? 고맙기는 하지만 자네 상관인 어거스틴 주교가 지금도 허탄에 있다는데, 그 사람의 시샘이 만만치 않을 터인데 자네의 설득력이 먹힐지 원.”
알로펜은 혼자 중얼거렸다.
석굴들을 대충 돌아보고 젊은 사제들이 알로펜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주교님, 참으로 놀랍습니다. 여러 그림들을 보면서 저희가 다 그 의미는 모르지만 그것이 불승들의 거듭되는 기도의 흔적인 듯 보입니다. 저쪽의 석불들에서 또한 부처를 향한 승려들의 간절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가 무엇인가, 신앙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는 경험이었습니다. 불제자들은 언제 이곳에 와서 이렇듯 많은 제단을 쌓았을까요? 천불동이다 삼천불동이다 하는 곳이 있다 하셨지요?”

“감동을 많이 받았군요. 그렇다고 열등감은 금물입니다. 여러분이 로마교구 사제단이니 로마의 카타콤을 아시죠? 아나톨리아의 갑바도기아도 있고, 그곳들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진리의 도장이었죠. 로마의 카타콤은 피난 성도들의 생활공간으로 남녀가 성년이 되면 결혼해 신방을 차리는 곳이자 자녀들을 낳아서 함께 사는 곳, 예배하는 성전, 그리고 병들어 죽으면 또 무덤도 되는 다목적 삶과 죽음의 공간이었어요. 우리 기독교의 카타콤이 더 크고 장엄하죠. 또 핍박을 견디며 저항하고 싸우고, 싸우다가 죽어 순교하거나 살아서 신앙의 스승이 되기도 하지요.”

“그래, 그렇군요.”
“그럼, 우리가 바로 그 고난의 카타콤시대를 이겨냈고, 로마나 페르시아 제국의 위압에 굴복하지 않고 복음의 나라요 로마나 페르시아보다 더 큰 제국, 그들 제국보다 더 큰 나라, 나라보다 더 우주적인 나라를 이루어내기 위해서 내가 있고 여러분이 있는 것입니다.”
알로펜은 흥이 났다. 역시 훈련된 젊은이들이 좋았다. 무엇이든지 말하고, 무엇이든지 함께 도모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싶은 중점적인 이야기는 우리 기독교끼리 서로 분파를 만들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시거든요. 얼마나 크시냐면 한 사람이 평생 동안 하·나·님 하고서 부르는 세 마디가 끝나고 나니까 인생 100년이 훌쩍 가버릴 만큼이나 크시지요. 그토록 크신 하나님을 저마다 자기들 식으로 말한다면 되겠어요? 우리 기독교는 성장하면서 너무나 큰 분파현상을 보였어요. 그중에서도 로마교구가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를 이단으로 정죄해 추방한 일인데, 그 시기가 너무나 좋지 않았어요. 바로 그것을 반동으로 아라비아가 분기해 종교를 일으킨 것이 바로 이슬람입이다.”

“그럴 수가 있나요. 어떻게 그럴 수가….”
“역사란 산 생명입니다. 로마제국을 대표하는 기독교 세력이 여러분의 로마 교구입니다. ‘로마 교구’는 제국의 수도에 위치한 교구였는데, 수도가 천도(遷都)하면서 옛 수도와 새 수도 간에 세력경쟁은 뻔한 것이었죠. 로마 교구는 위기감을 느꼈어요. 그것의 첫 번째 증거가 AD 325년 니케아 제1차 세계회의에서 성령론 확정이 새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교구의 입맛대로 되었다는 로마교구의 불만으로 나타났지요. 바로 그때부터 로마 교구는 각 교구들의 교리 정립이나 변화를 주의 깊게 살폈지요.

그러다가 네스토리우스의 기독론이 걸려들었어요. 계획대로 네스토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주교의 손에 의해 이단정죄 당했죠. 그리고 다음을 보세요. 당시 로마제국 신자 절반이 네스토리우스를 따라 로마를 떠났기에 제국 교회가 텅 비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답니다. 네스토리우스를 따르는 그의 제자들이 어디로 간 줄 아세요?”

“어디로 갔나요?”
“네, 바로 페르시아와 아라비아입니다. 메카의 아들 무함마드는 제국 기독교의 균열을 알았을까요.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네스토리우스파가 중심이 된 아라비아는 물론 특히 페르시아가 이슬람 종교의 정신과 삶의 기본 터전이 되었으며, 로마제국교회가 단성론자들의 득세로 늘 미워하고 저주했던 수리아 안디옥, 다마스커스, 예루살렘과 이집트 카이로나 알렉산드리아는 AD 640년을 기점으로 아라비아의 메시아인 무함마드의 영토가 되었지요.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난 AD 632년에서 8년이 겨우 지났는데 무함마드의 이슬람은 기독교 핵심지역의 거의 절반을 장악했어요. 그 지역들은 모르긴 해도 1천년, 또는 2천년이 지나도 그들 이슬람 영토로서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비밀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게 뭘까요? 주교님!”
“네, 그건 숙명입니다. 기독교가 한 번 더 죽어야 이슬람을 설득하고 그들의 요구를 채워줄 수 있습니다. 이슬람은 기독교의 부채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가 삼위일체나 기독론 교리를 그들에게 가르칠 때, 자기들도 모르는 것을 강요했습니다. 다시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어떻게요?”

“여보시오들, 내가 몇 번이나 더 말해야 알아듣겠소. 정직으로 예수가 가르친 그 방식으로만 십자가를 가르칠 수 있지요. 십자가 그 방식으로만 대속론과 삼위일체를 증거 할 수 있어요. 더 이상 첨가해야 할 것이 없어요.”
“아, 그럼….”
“당황하시오! 놀라시오! 그리고 십자가는 십자가로만 증거 됨을 확신하시오!”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럼 기독교는 이루지 못할 산이요 세우지 못할 탑이잖아요. 누가 십자가 예수와 만날 수 있을까요. 참으로 답답합니다.”
“예수가 있잖아요. 예수의 삶이 그 실상을 모두 말해주는데 뭘 그러는가?”
“…?”
“예수 말씀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가 내게 주시는 대로만 하는 것이라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를 지기 위해 별도로 노력하시지 않았어요. 평소처럼 그의 길을 가다가 길이 막히니 우회하거나 변명하면서 뜻을 굽히지도 않으셨어요. 정면(正面)돌파를 하셨을 뿐이지요.”
“그건 그렇죠.”

청년 사제들은 아직도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표정들이다.
“그래서 바울 선생도 나는 예수 죽을 때 그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다고 단언하셨죠. 어린아이와 같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단, 구도자는 자기를 내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예부터 구도(求道)는 자기 포기, 자기 박탈(剝奪), 자기 파기라고 했습니다. 사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단순 신자가 아닌 예수와 동행하여, 예수가 하시던 일을 자기도 하고 때로는 더한 일도 해낼 수 있는 예수의 사람은 대속(代贖)이라는 교리론에서 허덕이면 안 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살아내는 것입니다. 또 나 같은 초보자는 이렇듯 말을 많이 해서 설명하느라고 기를 쓰지만 좀 더 성숙해지면 나 알로펜도 말수가 지금보다 훨씬 적어질 거야.”

“아이고, 주교님. 그 무슨 황송한 말씀이세요”
“아니야. 솔직한 내 심정이야. 여러분에게 단 한마디로 내게 있는 예수를 말할 수 없는 지금 내 수준은 너무 유치해요.”
“그럼, 저희는 네 발 짐승들처럼 기어야 합니까?”
“헛허허….”

알로펜은 로마제국교회 젊은 선교사들과 하루 한나절을 더 보내고 투루판으로 떠났다. 알로펜을 따르기로 한 니꼴라이와 그의 세 친구가 알로펜 일행에 합류했다.


서라벌의 피루즈


유승과 페르시아의 황태자 피루즈 일행이 신라로 떠난 이후 신라 사신들이 입당하면서 소식을 전해왔다. 유승은 페르시아 황태자를 모시는 시종의 한 사람으로 신라 왕국에 소개했으나 신라 정부는 그럴 필요 없다, 당신이 그 유명한 알로펜 주교의 수제자임을 우리가 아는 데 거북해 할 필요 없다고 했다.
유승은 신라와 당나라 간의 거리를 서해바다 건너기로 생각했다. 그들이 신라로 건너간 서해바다 저편 당항은 이미 신라영토가 되어 있고, 백제는 나당 연합군에 의해 망했고, 신라와 통합절차를 밟고 있었다.

“신라는 당나라의 바로 이웃나라로군요.”
피루즈는 안도하는 마음 표현을 이렇게 했다.
“저하,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유승이 말했다.
“유승 님, 번거로운 호칭 내던져버리고 그냥 피루즈 형제로 불러주세요. 내 마음에 부담이 커요.”
“저하, 그런 말씀을 거두세요. 저하는 언제까지나 페르시아의 상속자시요 황제의 위를 이으실 황태자이십니다.”

네시부 키세로가 단호한 어조로 부당하다고 말했다.
“내 원, 참….”
황태자는 키세로의 말에 헛웃음으로 답했다.
신라 조정은 강대국 페르시아 황태자를 자국의 왕세자처럼 존대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섬겼다. 왕궁에서 생활하도록 했으나 피루즈는 일행과 함께 지내기를 원해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주었다.

피루즈와는 달리 유승은 경주의 거리는 물론 주변 분위기나 불교적인 색채와 장식물들을 보면서 신라의 불심(佛心)이 만만치 않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자기 신분이 승려라도 되는 기분이었다. 왕궁이나 주변 거리에서 쉽게 만나는 승려들의 가사만 보아도 친근감이 들 정도였다. 그는 혼자서 잠시 생각했다. 내가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이 맞나…. 그는 잠시 스치는 엉뚱한 생각에 바보처럼 웃었다. 유승은 혼자서 경주 거리를 걸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힐끔거리기도 했으나 경주는 다시 말해도 고향처럼 느껴졌다.

깨끗한 거리, 거리 주변의 소나무들, 산처럼 높이 쌓은 무덤, 왕릉들이다. 경주에서 느낀 분위기는 얼마간 이국적이다. 중국을 닮았을까 싶기도 하고 고대 페르시아나 인도를 닮은 듯도 했다.
때가 되면 경주 밖으로 나가서 민심도 살피고 복음을 전하고 싶은 의욕이 솟았다. 일단 낯선 나라로 보이지 않아 무섬증도 없으니 발길 닿는 곳으로 차츰 가보기로 했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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