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기독교(景敎)_ 50

“그때 예수님의 죽임이 나와 키세로 님의 죽을 죄를 대신하는 죽음이셨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깐, 잠깐!
그건 어린애들 가르칠 때 하는 말이겠죠. 예수가 죽으실 때와 내가 세상에 온 날의 차이가 있잖아요.”
키세로는 유승의 빈틈을 노렸다는 자신감에 황태자의 역관 유천봉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자신감에 찬 웃음을 웃었다.

   
▲ 둔황 밍사산 기슭에 있는 월아천.

원정 스님 일행이 당나라에 잘 도착했을까? 알로펜 주교님을 파사사로 찾아뵙고 내 안부를 잘 전해 주어야 할 터인데…. 유승은 불국사 쪽으로 가려던 길에 월성의 웅장한 선인들의 묘를 우러르다가 무심결에 웃는다. 사람이 죽어 저렇듯 큰 무덤을 만들면 무얼 하는가? 인간이란 역사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는데….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또 웃었다. 다시 걷는다. 피루즈 황태자를 떠올렸다. 피루즈는 당나라에 있을 때보다 훨씬 명랑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신라에는 페르시아어가 통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들리는 말에는 왕궁의 무사들이나 군대 고문관들 중에도 있다고 들었다. 신라와 거래하는 무역관계도 그 양이 만만치 않았다.

이 사실은 피루즈 황태자를 모시고 입궁했을 때 신라 조정의 환대에 놀란 유승이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피루즈가 경주에 도착했을 때부터 경호대 인력이 대기하고 있었다.
“합하! 저희는 신라 왕궁 경호대 소속 무관들입니다. 태자 합하를 정중하게 모시라는 대왕마마의 특명이십니다.”

피루즈는 어안이 벙벙했다. 당나라에서와는 다르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있었다. 그는 외빈들을 모시는 객관으로 안내되었다. 궁성과 바로 연결되는 곳으로 궁성을 지키는 군관들이 경호를 책임지는 곳이라고 했다.

피루즈 황태자는 다음날 입궁했다. 군왕의 이름은 김춘추, 태종 무열 왕 원년이었다. 총명하고 지도력이 뛰어난 군왕 중의 왕이라고 피루즈는 대강 알고 있었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 황태자의 의관을 갖추었다. 좌우로 시립한 대신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어서 잠시 멈추자 왕이 그를 더 가까이 오도록 했다.
“먼 길이옵니다. 황태자께서 이렇게 신라를 찾아주시니 참으로 반갑소이다.”

김춘추는 혈색이 좋은 중년 사내였다. 당태종 앞에서나 고구려 왕 연개소문 앞에서도 당당한 자세로 외교력을 발휘한 유명한 인물로 알고 있었다. 피루즈는 허리를 두 번 더 굽히고는 말했다.
“전하! 이렇게 예로써 맞이해 주시니 황공하옵니다. 신은 페르….”
“아, 잠깐….”

피루즈가 거기까지 말하는데 태종 무열 왕 김춘추가 말길을 잘랐다. 그리고 그는 용상에서 벌떡 일어나 피루즈가 신하의 예를 하고 있는 자리로 와서 그를 두 손으로 붙잡아 일으켰다. 대신들이 놀라서 ‘어어어!’ 하는데 왕이 말했다.
“짐이 오랜만에 좋은 친구를 만났소이다. 참 귀한 친구입니다. 헛허!”
대신들은 서로 눈질을 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김춘추는 피루즈가 다시 반 무릎을 꿇고 앉자 잠시 생각하더니 신하 모두를 다 자리에 앉게 하고 자기는 용상으로 올라 자리 잡는다.

“편히들 앉으시오. 내가 오늘 우리 신라를 방문하신 페르시아 황태자를 맞이하고 보니 우리나라가 마치 삼한일통을 다 이룬 것 같은 심정이외다. 어쩐지 내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오. 페르시아는 지금 정변을 맞아 아라비아로부터 침공 받고 있으나 곧 제국은 평정을 찾게 될 줄 압니다. 황태자께서는 한동안 왕궁에 머물면서 내 친구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유승은 궁궐 방문 첫날 태종 무열 왕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외교의 귀재라더니 역시 유연하군. 역시 외교의 달인이 분명하다는 느낌을 거듭 확인하게 되었다.
신라 왕의 민첩한 모습을 거듭 생각하던 유승은 무릎을 쳤다. 페르시아의 이용 가치를 계산 했구나. 그럼 그렇지. 로마와 페르시아, 로마는 기독교에게 점령당했고 페르시아는 이슬람에게 점령당했다. 점령당한 것일까, 점령한 것일까? 엉뚱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점령한 것이나 당한 것이나 차이는 무엇일까?

물론 이슬람은 기독교와 다르다. 기독교는 종교와 정치 간에 불간섭하자 했고, 이슬람은 종교와 정치는 하나라고 했으나 이 또한 말치사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로마제국은 정치와 종교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였다. 종교와 정치 사이에 지도자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지배세력이 갈렸다. 김춘추만큼은 피루즈 황태자를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유승은 피루즈가 머무는 궁으로 갔다.

“전하! 저 오늘 반월성과 불국사를 다녀왔습니다. 서라벌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니 마치 페르시아의 크데시폰 거리를 걷는 듯 착각했어요.”
“그렇던가요?”
“네, 도시의 크기만 다를 뿐 이곳 신라는 지난 7백년 가까운 날 동안 수도가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나라라는 점, 그리고 외국의 침략을 받아본 일이 한 번도 없다는 점이 다르군요.”

“그래요, 그게 부럽죠.”
“종교 또한 불교 단 하나뿐인데도 나태하여 미신화 하지 않고 매우 건강하다는 느낌 또한 신선했습니다.”
“그래, 천국이 따로 없군요. 그래도 유승 선생은 기독교 전도자라는 것을 한시도 잊으면 안 됩니다. 나는 유승 사도가 지도하는 기독교가 좋아요. 어서 우리 성경공부 합시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유승과 피루즈 황태자가 집회소로 사용하는 방으로 갔다. 사람들이 없었다. 유승과 황태자 피루즈의 모임이었다. 피루즈는 유승과 단 둘만의 시간이 되자 오늘따라 약간 긴장한다. 그는 눈을 반짝이면서 허공을 향한다. 눈 둘 자리를 못 찾는 둘이 서성이고 있었다.

키세로가 급히 들어왔다. 통역사도 뒤따랐다. 황태자의 어색함을 키세로 환관이 구해 주었다.
“키세로 님, 태자께서 몹시 적적해하십니다.”
유승의 말에 피루즈가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하나님을 믿기로 했으나 별로 아는 게 없어서 유승 사제로부터 개인지도를 받아야 할 것 같아….”
“아, 아닙니다. 태자께서는 천재적인 종교 감각이 있으십니다. 기독교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의 각기 특징을 쉽게 파악하셨어요. 그럴 경우 기독교의 특성을 곧바로 아는 법이죠.”
유승의 말을 통역사인 유천봉도사가 통역하자 유승이 그의 통변을 약간 수정했다.

“기독교의 특성은 믿는 자는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따로인 경우는 창조의 본질이 훼손당하는 결과가 됩니다. 통변을 다시 들은 태자는 난처한 듯이 뒷머리를 긁는다. 그가 유승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도와달라는 간절함이 들어있었다.
“태자님은 그래서 종교적인 천재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마저 배우려 하시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과찬입니다.”
“아니에요.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십자가 죽으심과 내가 그 십자가에 또 함께 죽을 수 있는 영광은 그것이 바로 구원 얻음이라 이겁니다. 거기에 손을 대거나 다른 설명을 추가하려들면 창조적 신비가 사라지는 것이 됩니다.”
“네, 유승 사제님, 바로 그런 것 같습니다.”

키세로는 두 사람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구분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키세로 보좌관님, 걱정 마세요. 소승이 보충해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기독교는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네, 이유는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려고 오셨어요.”
“그렇습니다. 그가 와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이 있죠.”
“그렇지요.”
“그때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와 키세로 님의 죽을 죄를 대신하는 죽음이셨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깐, 잠깐! 그건 어린애들 가르칠 때 하는 말이겠죠. 예수가 죽으실 때와 내가 세상에 온 날의 차이가 있잖아요.”
키세로는 유승의 빈틈을 노렸다는 자신감에 황태자의 역관 유천봉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자신감에 찬 웃음을 웃었다.

“그 대목이 함정입니다.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신 점을 모를 경우에는 그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예수는 창세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시거든요. 그러므로 키세로 님은 조상의 품속에 계실 때 이미 예수님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상대가 되는 겁니다.”

“하, 그럼 인간의 구원이 창세기 때부터 계산된다는 겁니까?”
유승은 키세로가 이해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반가웠다.
“바로 그겁니다. 키세로 님, 성공 하셨습니다. 바로 아셨습니다.”

유승이 가볍게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왜 그러세요? 전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요.”
“네, 키세로 님은 조상의 품속에서 십자가 예수와 만나셨습니다. 그 땐 예수의 죽음이 곧 조상의 품속에 있던 키세로 님과의 동반 죽음이었음을 지금 믿고 그 사실을 확인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마치 우주의 법칙과 같은 거네요?”

“네, 철학적 이해도 괜찮습니다. 키세로 님이 예수님과 운명적으로 만남의 관계라면 피할 수 없을 터이니 말입니다.”
“네, 유승 도사님. 내가 손들었습니다. 예수님에게가 아니라 유승 사제의 집요한 승부사 기질 앞에서 말입니다.”
“….”

유승은 말없이 키세로를 바라보았으나 피루즈 황태자가 크게 웃는다.
“그래, 진리는 간단한가 봐요. 조로아스터교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유승 사제님, 그럼 내가 예수이기도 할 수 있겠군요. 동반자 관계니까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러나 성경은 부활 곧 구원의 열매마다 순서가 있다 하셨어요. 예수는 부활의 첫 번째 열매 되시는 분이라고 성경은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구원의 은총을 받았으면 되었지 순서는 무슨…. 또 예수가 될 수도 있다고…. 십자가에 죽으신 분은 예수님이시잖아….”

피루즈 황태자가 키세로의 어깨를 툭 치면서 그의 생각을 바로잡아 준다.
“그렇습니다. 태자님, 오늘은 이만하시고 내일 있을 신라 왕 초청 연회에 참석할 준비를 하셔야죠.”
“그렇군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태자님, 신라 왕 김춘추는 그 인물이 어떻던가요?”
피루즈는 한동안 생각하다가 웃는다. 그리고 그는 자기 가슴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가슴이 열려 있고, 그 깊이가 매우 깊은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는 분명히 백제 정도를 먹어치우고 끝낼 인물 같지 않았어요.”
“그럼 고구려를 신라에 복속 시킨다 이겁니까?”
“그래요. 이는 그의 부친 김용춘의 가슴 속에서부터 키워온 신라의 꿈이라고 하더군요. 삼한일통, 이제는 자기가 그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고 자신하더라구요. 내 참, 나는 신라 왕 앞에서 졸부 꼴이 되었지요.”
“그 무슨 말씀이세요?”

유승은 질문에 대한 답을 듣지 않고도 피루즈의 답은 알아들었다.
“이보시오. 유승 사제! 나 이제라도 내 부친 야즈데기르드 페르시아 대왕의 게릴라전에 합류하여 저 아라비아의 사라센으로부터 조국을 되찾으려고 합니다. 나를 좀 도와주시오.”
유승은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울먹이는 피루즈 태자의 심정을 이해했다.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었다.

“유승 사제, 페르시아에서 곧 소식이 올 것이오.”
“아, 그렇습니까?”
“나 신라에 와서 신라 왕을 알현하던 날 했던 결심을 유승 사제에게 지금 말하는 겁니다. 또 내가 기독교를 더 깊이 알고, 똑바로 신자가 되고 싶은 것도 오로지 페르시아를 복원하는 목표 때문이오. 내 목숨 하루하루 사는 목적은 조국의 복원이고 통일이며, 아라비아 종교집단을 페르시아에서 몰아내는 것을 위해섭니다.”

유승은 당나라에서 피루즈를 만난 이후 그의 사내다움 또는 제왕의 기상을 보기는 오늘이 처음인 듯 했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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