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태수 목사
은평성결교회 담임

대한항공 1등석에서 있었던 일이 가라앉지 않고 계속 타오르고 있다. 참으로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 일어났다. CEO그룹과 사원 사이에 소통의 장벽이 너무 높았다. 그렇게 소통하기가 어려웠던지 작은 것 가지고 큰일을 만들었다. 결국은 모두가 패배하는 일을 하고 말았다. 청와대를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며 온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 사이에 생긴 일은 아니다. 이전 정권에서도 지금 정권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얼마나 소통이 안됐으면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온 백성의 생각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소통의 부재 속에서 울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세대와 문화의 벽이 너무 높아 보인다. 남녀의 벽, 지역의 벽, 성격유형의 벽도 너무 높아 소통하기가 어렵다.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의사전달이 그렇게도 힘들다. 오해의 벽이 높아져서 어떻게 허물어야 할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왜 이렇게 소통의 벽이 높아만 보일까. 인간의 근본적인 죄성 때문이다. 죄의 바이러스에 오염된 인간은 소통의 벽을 쌓고 있다. 더욱 높이 쌓아 하나님과의 소통이 막혀버렸다. 너와 나의 소통의 벽도 높기만 하다. 나와 나 사이에도 소통의 벽이 높아 힘들게 살고 있다.

죄는 사람들을 이기주의 속에 몰아넣고 있다. 욕심이 과하게 작동하여 다른 사람이 눈에 잘 안 들어온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고 산다. 세속적 가치관의 핵심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산다. 서로 비교하며 교만하고 비굴해지기 쉽다. 마음의 상처가 깊어만 간다.
어떻게 소통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살 것인가?

더 내어놓고 다 내려놓아야 한다.
욕심을 버리고 줄여서 제로에 가까운 수까지 줄이면 줄일수록 행복해진다. 남을 탓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지도 않게 된다. 그 누구와도 소통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람이 남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자기 욕심을 많이 채울수록 소통의 장벽은 높아진다.

눈높이를 상대방의 수준에 맞추어 생각할 때 소통의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어린아이에게는 어린아이처럼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난한 사람처럼 서로가 눈높이를 맞추면 소통의 벽은 무너지고 만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눈높이를 우리와 맞추시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이 되신 것은 눈높이를 맞추어서 소통하시기 위함이다. 눈높이를 상대방에게 맞추면 그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하다.

희망찬 미래에 대한 확신이다.
복음의 결국은 부활이요 영생이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이 분명한 사람들은 오늘을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서로 소통의 장이 넓어지고 소통의 벽이 허물어진다. 그 누구와도 소통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 현실의 삶을 인생의 전부로 여기고 사는 사람들은 멀리 내다 볼 수 없다. 멀리 볼 수 있는 눈이 막혀 있기에 소통의 벽이 높아진다. 희망찬 미래에 대한 확신이 소통의 벽을 허물어뜨린다.

소통의 기술을 배우라.
소통의 기술을 조금만 더 깨우치면 훨씬 소통하기가 쉬워진다. 소통의 벽을 허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서로가 WIN-WIN하는 방법을 터득하여 함께 즐거워 할 수 있다. 모든 삶의 자리에서 소통의 기술을 익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면 소통의 벽은 허물어진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든지 소통의 벽을 허물고 서로 소통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소통하는 사회 속에서 행복한 대한민국의 중심에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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