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민족까지 안고 살아야 한다

쯔빙글리와 루터의 스위스와 비텐베르크가 성찬론 시비로 마르부르크에서 회담하다가 실패로 끝났던 때의 일이다. 그때 쯔빙글리가 루터와 악수하고자 손을 내밀며 ‘우리는 형제다’라고 하는데 루터는 악수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는 형제 아니다, 너희가 화체론(化體論)을 거부한 이상 너희는 그리스도인도 아니니 우리는 형제가 될 수 없다’고 했었다.

1527년 10월 3일과 4일의 일이다. 당대의 대표적 개혁자들인 쯔빙글리와 루터, 그들은 성찬론에 있어 루터의 화체설(성찬식 때 나누는 떡과 포도주가 즉시 우리 몸에 들어가 예수의 살과 피가 된다는 설)과 쯔빙글리의 상징설로 맞섰고, 그들 두 사람뿐 아니라 회담에 참석한 양 진영의 개혁자들은 그날 이후 이 세상에서 만나지 못했다.

그들의 후예인 오늘의 한국교회는 그래도 많이 너그러워지고 발전하여 신학적 견해가 다르다 해도 악수도 하고,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형제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교회는 1천만 신자의 이름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민족 구성원을 돌봐야 한다. 예수를 향해 신앙고백하지 못하는 한국인, 더 나아가서 세계인, 타종교인, 심지어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에게까지도 속량하시는 주 예수의 십자가 자세로 악수는 물론 포옹도 할 수 있고 그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거나 좌초된 배처럼 파선 위기에 있으면 그들을 돕고자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한국교회는 지난 100여 년 동안 급속히 성장했고, 일본 강점기나 6.25 국난의 때는 물론 독재 권력이 판칠 때도 복음의 불을 켜고 의연하게 성장과 성숙을 거듭했다. ‘성숙’이라는 부분이 얼마간 부족하기는 해도 지금 곧 우리 한국교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크고도 귀한 일을 해낼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우리 민족 모두의 현안인 남북통일 문제는 우리는 물론 세계평화와 직결된 사안으로 한시도 마음 놓을 수 없기에 온 교회의 기도 제목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이 성찬론에 일치된 견해를 못 가졌다고 악수마저 거절하는 자세를 더는 용납할 수 없다. 남북한 간의 만남을 서둘러야 하고, 그날을 위해서 남쪽의 정부는 우리 사회의 기능을 강하고 왕성하게 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지금보다 월등한 사회성을 길러가면서 교회와 함께 나라 살림도 살펴야 할 것이다.





세금문제, 선제대응하라

요즘 국무총리 후보자인 이완구 의원이 국회 청문회 준비를 위한 여러 행위를 하는데 이를 ‘이완구의 선제대응’이라고 한다. 그는 3선 국회의원이고, 여야 간에 사이도 비교적 원만해 누구도 그의 청문회 절차를 걱정하지 않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발 빠르게 말 그대로 선제대응을 시도하고 있다.

매사 불여튼튼이라 했는데 그는 옛 사람의 지혜를 따라서 미리 준비하고 있다. 여러 가지 방향으로 공세가 주어졌을 때를 마음에 두고 대략적인 방어력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몇 년째 국세청과 세금문제로 대화하면서 지혜를 찾고 있으나 아직은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 일단은 세금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함이 옳다. 신약교회, 곧 16세기 종교개혁기를 거친 기독교(신교)는 종교지상주의가 아닌 만인제사의 신학적 원칙에 의해서 형성된 교회이기에 그 배경이 불교나 로마 교회(천주교)와 다르다. 계시와 신학적인 기로 위에 세워진 교회는 목회자가 교회 구성원의 선생이요 교사의 직무까지 포괄하기 때문에 세금이 의무사항이 된다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물론 예외는 있다.

정부가 불교나 천주교회 등과 묶어서 일괄 이해를 한다고 했을 때나 또는 종교기관이기에 그들은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세금보다 훨씬 더 많은 봉사와 헌신을 한다고 평가하여 세금문제를 별도로 관리하겠다고 했을 경우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정부가 세금을 요구할 때 교회가 정확한 자료에 근거하여 목회자들의 세금을 신고하면 오히려 정부가 깜짝 놀라서 세금유보를 먼저 제안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교회 목회자들의 세금 환급해 주다가 국고가 텅 비는 사태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지 한국교회는 정부나 우리 사회의 필요를 공급해가는 데 늘 관대하고 넉넉한 우군이요 친구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1천만 신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아직 교회에 신자등록을 하지 못한 미신자라는 넉넉한 생각으로 언젠가 속량하신 주 예수의 은혜를 깨닫고, 우선은 교회 밖의 신자, 그리고 장차 이 나라를 교회로 만들 터전이 되어주면 좋겠다.





부활절 예배는 ‘총연합’으로…

부활절 2015년 연합예배는 말 그대로 ‘연합’이어야 한다. 지금 ‘기선제압 식’ 또는 ‘선수치기 식’으로 몇몇 단체가 서두르는 것 같으나 정정당당하게 하자.

지금까지도 열심히 해왔으나 2015년부터는 명분과 또 성숙한 기독교의 모습을 제시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 기독교에서 ‘부활절’은 기독교 그 존재 자체이다. 구원이 완성되는, 종말적 미래가 현재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회복이요 완성의 출발점이다. 부활절은 그래서 전국교회는 물론 수도 서울에서 기독교가 ‘총연합’으로 모였다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그 모습은 각 교단, NCCK, 한기총, 한교연, 한장총 등의 연합단체와 기관들까지 함께 모일 수 있는 성의와 정성이 집합된 집회를 구상해야 한다.

생각해 보라. 죄와 사망으로 죽은 인간과 만물이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의 제단에서 죽고 다시 사셨다. 이것을 생명창조의 기본으로 믿고 알기에 우리 교회는 최선의 예로써 하나님께 예배하고 온 세상을 향해 창조의 은총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어느 단체가 특별히 서둘러 앞서 나가려 할 필요가 없다. 서로 협조하여 더 많은 기관과 단체, 가능한 한 성도들이 많이, 그것도 자발적으로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연합하는 마음의 훈련이다. 서로의 현실을 인정하고, 연합하는 힘을 기르고, 더구나 부활절 날 한 시간 같은 장소에 모이는 부담 외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는 가벼운 마음으로 모이는 것이니 얼마나 상쾌한가. 그저 부활의 찬가를 부르면서 서로를 향하여 축복하는 수고이면 넉넉한 시간이 될 터인데 누가 망설이겠는가.

혹시 ‘부활절 연합예배’에 대한 향수를 생각하면서 별도의 기구를 주도해보고 싶은 의욕이나 욕망이 있더라도 개별적인 생각은 사양하면 좋겠다. 우리나라 교회의 현실에서 어떤 특정기구가 독점하는 부활절 행사는 부담이 된다.

또 그 같은 일에 욕심을 내거나 의욕을 가질 필요가 없다. 우리는 교회의 목사, 장로, 권사, 집사는 물론 모든 성도 한 사람 또 한사람이 다 소중하고, 벅찬 하늘나라 책무를 가진 사람들로서 일복이야 넉넉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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