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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통일의 날을 바라며
하태영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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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8호] 승인 2015.02.10  16: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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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태영 목사

새해를 맞아 이사야의 말씀을 보면서 마음으로 편치 못했습니다. 그토록 쓰라렸던 바벨론 포로생활은 70년 만에 끝이 나고, 조국으로 귀환하게 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는데, 지금 대한민국은 분단 70년이 되었음에도 통일의 꿈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소통의 길마저 막혀 있으니 좁은 가슴 풀지 못한 울혈로 멍들 것 같습니다.

그러함에도 한쪽은 ‘최고 존엄’이라는 유치한 언사로, 다른 한쪽은 ‘통일대박’이라는 허황된 물신주의로 미래를 기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분단 70년이 된 대한민국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멀리 떨어진 섬들’에게까지 ‘선포’되고, 그들 가운데서도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뽑혀질 것이라고. ‘모든 육신들’ 즉 세계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예배 공동체가 될 것을 바란 이사야야말로, 남과 북을 사상과 체제로 가르고, 어우러질 수 없는 이방인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철천지원수일지라도 손 벌려 품을 수 있는 넉넉함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습니다.

이사야의 세계 만민을 향한 소망이 사도 요한에게서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사야가 미래 세계를 스케치했다면,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사실도를 그리고 색칠까지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세계의 중심이요, 우주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만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요한 사도는 달리 보고 있습니다. 어린양이 성전입니다(계 21:22). 인간의 손으로 만든 성전은 영속적일 수 없음을 천명하는 정언입니다. 그런 어린양의 성전은 더 이상 해도 필요 없고, 달도 필요 없고, 등불도 필요 없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인간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절대적으로 여기는 것들, 손상을 입거나 무너지면 마치 천벌이라도 받을 것처럼 여기는 사상이나 이념들이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어린양 자신이 빛이기 때문입니다. 밤이 되어도 문을 닫을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양의 성전’에서 생명수가 흘러넘쳐 강을 이루고 강가 기슭에는 생명 열매들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만백성이 먹고 살아야 할 재화가 ( 그것이 영의 양식이던 육의 양식이던) 예루살렘성 안에만 쌓여 있지 않고 고르게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도둑질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툴 이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윤리적인 경계는 엄격합니다. 속된 것과 가증한 것들 그리고 거짓을 행하는 자는 결코 이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자들도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계시록의 미래 세계는 사도 요한의 상상물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로 확증하신 나라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위로 올라오실 때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 위에 임하”(마 3:16)십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하늘 보좌가 열린 것입니다. “어린양의 성전”이 열린 것입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는 것, 그것은 이사야가 내다보고 사도 요한이 환상 가운데서 본 생명수가 예수에게서 흘러넘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평화를 상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극심한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애국’은 강조되지만 개개인의 소박한 행복은 유보되는 시대입니다. 재물은 많은데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집중되는 나라입니다. 법과 권력은 가진 자에게는 너그럽고, 없는 자에게는 가혹합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각박한 삶에 쫓기는 이들이 미소를 잃지 않고, 마음을 편안케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 좋을 대로 세상의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은 굳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꾸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바꿔주시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서로를 믿지 못하고, 화해와 협력은커녕 소통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 세계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소통을 바란다면서도 소통의 통로는 막아버린 오늘의 대한민국이기에 그 이율배반이 놀랍기만 합니다. 우리는 더 미뤄서는 안 됩니다. 피차 사상과 이념과 대립을 넘어서는 소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악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성육신의 놀라운 기적이 분단 70년을 맞이한 이 땅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날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통일의 불씨가 더 시들지 않도록 살려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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