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아브라함 작가

비록 부질없는 질문일 수 있겠으나 기독교 2천년 역사상 가장 쓰라린 사건 하나를 들라면 15세기 중반에 일어났던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즉 동로마제국의 멸망이 아닐까 한다.

동로마가 어떤 나라였던가. 동로마제국은 주후 330년 기독교를 국가 종교로 선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동양과 서양이 가파른 물목 하나로 마주 바라보는 보프러스 해협에 순수한 기독교 국가로 세워지고 1100년 이상의 장구한 세월을 버티면서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를 한데 어우르는 비잔틴 문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낸 특이한 존재다.

그러나 이 장엄한 문명도 이슬람의 끈질긴 도전과 함께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동서양 최고의 성곽도시를 마지막으로 포위한 것은 한없이 영특하면서도 영웅적이고 게다가 무섭도록 잔혹하면서도 여색과 남색을 모두 즐겼던 갓 20세의 청년 술탄 메메드 2세. 50여 일의 처절한 공방전 끝에 성은 떨어지고 고매한 인격으로 유명했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작은 군세로 최후까지 싸우다가 나중에 그 얼굴을 확인할 수 없으리만큼 참혹한 모습으로 죽는다.

그토록 고대했던 기독교 형제국들의 원군은 끝내 나타나지 않고. 정확한 날짜로 치면 1453년 5월 29일, 동서양의 국가세력과 종교세력이 한바탕 크게 요동치면서 역사의 새로운 판도를 짜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 그리고 하나의 문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사도들의 순교로 이룩한 동방의 광대한 기독교 영토를 완전히 잃었다는 단순 논리로 보면 기독교 측의 패배라고 볼 수밖에 없었던 대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회고하면서 기독교도들의 한탄을 더욱 자아내게 하는 것은 이슬람의 영웅 메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 공략에 투입했던 그 병사의 반 이상이 역대의 술탄 앞에 진즉이 무릎을 꿇은 기독교 국가들로부터 차출한 기독교 병력이었고, 또 예니체리 군단이라고 불리었던 술탄의 친위부대는 점령기 기독교 가정으로부터 10세 미만의 소년들만 징발해서 이슬람으로 개종시킨 뒤 살상병기화시켰던 특수부대였는가 하면 성문의 마지막 방어선을 깨트린 것도 이들이었다는 점이다. 즉 메메드 2세는 기독교도들을 죽음의 먹이로 삼아 기독교 문명과 기독교 국가를 멸망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새삼스럽게 15세기의 이슬람 전사 예니체리 군단을 떠올리는 것은 소위 칼리프의 신정국가를 선언하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테러집단 IS 때문이다. IS는 국가건설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다른 테러조직들과 다르고, 세계의 모든 곳 그러니까 이슬람과 관계가 적은 한국 같은 곳에서까지 어린 동조자들을 끌어들여 전사로 삼는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스럽다. 한 명이든 열 명이든 자국민이 연루되면 싫든 좋든 그들에게 말려들게 되고, 그렇게 되면 IS의 문제가 곧 세계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IS식 다국적 전사와 술탄 시절의 예니체리 군단이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답은 예스라고밖에 할 수 없다. 오늘의 IS전사들이나 옛 시절의 예니체리 군단의 그 성격과 목표 지점이 같고, 죽음까지 불사하는 그 행동양식에서는 더욱 닮은꼴인 까닭이다. 그 스스로 기독교 출신이면서 이슬람을 위해 목숨을 던졌던 예니체리. 생각해 보라. 시퍼런 신월도(구부러진 검)를 들고 자신의 부모형제였던 기독교국들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왔던 예니체리 군단. 그리고 자기 자녀들이 칼날 앞에서 쓰러지면서 와해되었던 기독교 공동체.

물론 IS의 야망대로 터무니없는 이슬람 신정국가가 생기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서방기독교 세력이 급속한 세속화로 그 결속력이 나약해지고 입버릇처럼 신앙의 자유와 관용을 내세워도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처럼 찬송을 부르며 죽어주지 못할 바에는 남은 길은 결과적으로 힘과 힘의 대결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과 힘이 부딪히면 오늘의 세계는 또 어떻게 요동칠 것인가. 항상 뒷북만 요란한 듯한 서방세력의 대응을 보노라면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만능의 IS집단에 대해서 어떤 해결책이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누구도 쉽게 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란 무엇이고 계시란 무엇이던가. 속인의 한계이듯 답답할 뿐이다.

나아브라함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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