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신자라는 말이나 하지 말지. 부활절에 산 자의 모습을 도무지 볼 수가 없었으니 참으로 민망했다. 일간지들이나 방송에서 제목 잡아서 한 줄, 한 컷 기사도 내 줄 수 없을 만큼 초라한 부활절 모습이었다.

늘 있어왔던 연합예배마저 사라져버린 이기적인 행태들이 더더욱 민망했었다. 우리들이 연합예배 드린 것을 모르느냐고 시비하고 싶겠으나 2~3개 교회들이 모이고, 지방 행사들이 있었던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부활절 연한예배’는 기구가 먼저 조직되고 300여 개 교단으로 나누어진 한국교회의 현실을 감안해 300여 개 처 교회들이 모여서 교단연합의 상징성을 보여주어야만 연합예배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먹고 사는 일이 바쁘고 힘이 드니까 그냥 약식으로 넘어간 것일까? 그러면 기독교 신자와 부활의 관계를 물어보자. 성숙한 신자의 가능치는 다시 죽을 수 없는 부활신앙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활 신앙은 간결하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영원한 해방을 받는 지대가 부활신앙을 가진 자들의 현주소가 된다. 기독교의 자부심요 특징이요, 또 기독교만이 가진 특별한 은혜인 것이다.

늘 죄와 사망으로부터 부자유하고 불안하여 자기 죄를 가리고 싶어서 돈이나 입으로 매달리다가 지쳐서 쓰러지지 말고 용서받은 신앙으로, 다시 죽을 수 없는 영생자의 신분으로 사는 부활신앙의 자부심을 기독교는 살려내야 한다. 온전케 해야 한다. 무슨 일이 교회의 앞길을 막고 있는가? 무슨 불편이나 억압이 있기에 자유함의 신앙을 선포하지 못하는가? 연합하지 못하는 이기심, 자기밖에 모르는 탐욕으로 신자들끼리도 부활절의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졸부들의 마음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부활신앙의 가치가 어디 있는가를 다시 정리해보자. 예수의 삶을 눈여겨보라. 그가 인간사랑의 성취를 위하여 달려간 곳이 십자가요 그 죽음의 절차 후에 죽음을 이겨내고 생명의 영원함을 획득함이 부활이요 영생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 생명의 현장에 늘 함께 하면서 이기는 자의 삶이 곧 부활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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