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놈… 등단 40년 만에 내 것 찾았다”

   
 

허무주의에서 날 살린 것이 신앙과 문학,
그 안에서 자유한 삶 

긴장의 연속인 창작, 거기에 목숨 거는 이유는
‘아름다움’ 때문

 

 

 

제15회 들소리문학상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1959년 21세에 문단에 등단하신 후로 시인의 길을 올곧게 걸어오셨더군요. 참 귀한 분을 수상자로 모시게 됐습니다.

- 귀한 상을 저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과 들소리신문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작품 여정에 있어 경희대 은사이신 김광섭 시인이나 결혼식 주례를 서주신 황순원 시인, 제가 제자로 따랐던 박목월·김현승 시인 등은 저의 은인이십니다. 애송이 시절부터 저의 시적인 정서를 발견하고 끌어내기 위해 힘써주신 분들입니다.

한국 토양에서 시인으로 살기란 쉽지 않은 길이셨을 텐데, 고비가 많았을 것으로 압니다.

- 모교인 경희대를 비롯해 서울시내에 6개 대학에 출강했어요. 전임을 하지 않은 건 내 성격 탓이기도 한데, 자유주의자이다보니 어디 매이는 것이 싫었어요. 그런 나를 잡아 놓은 것이 하나님이에요. 예수 안 믿었다면 엄청나게 저지르고 다녔을 거예요. 나이 이렇게 들고 보니 제아무리 뛰고 달려도 하나님 손바닥이고 그 섭리 속에 있는 것을 깨닫습니다.

문학을 시작한 계기는 중학교 1학년 때 6.25가 터져 곳곳에 널려있는 시신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서울에 올라와서 내 발로 교회에 찾아가 세례 받은 것이 고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허무의식에 빠져서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가 교회에 나가면서 하나님과 문학을 통해 재생, 부활한 겁니다.

기독교문인협회에도 오랫동안 몸담으셨는데, 기독교 문학이 상투적인 경향으로 흐르는 것에 대한 지적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 성경에 나오는 말이나 교회에서 쓰는 언어, 기도하는 말들을 그대로 작품에 넣는다고 해서 기독교 문학이 아닙니다. 그런 건 속에 담고 있으면서도 우리 생활 가운데서 우러나오는 신앙적 소재와 어휘, 단어를 찾아야 합니다. 얼마만큼 좋은 작품 수준을 갖고 있는가가 중요해요. 그런 사람에게는 일반 문단에서도 함부로 못합니다. 박목월이나 김현승 시인 같은 분들은 작품 수준이 높으니까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존경받았어요. 거기에 플러스알파로 예수쟁이라 하니 머리를 숙이는 거예요. 그런 문인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흉내 내는 것 같아요. 아직도….

신학대학에서 강의할 때는 기독교의 근본이 문학의 기본이라고 얘기합니다. 이만큼 문학 활동을 해보니 그래요. 이를테면 기도가 곧 시예요. 정말 진실한 기도를 드릴 때면 목소리가 떨리잖아요. 떨리는 것은 곧 음율, 리듬이고, 시의 율격이 바로 그거예요. 거기에 이야기를 넣으면 소설이고 산문이지요. 성경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문학의 시초이고 결과라고 강조해요.

교회가 복음을 전함에 있어 편협함을 넘어서려면 우선 목사님들이 문학공부를 넓고 깊게 해야 합니다. 문학공부를 통해 자기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정신적인 세계를 넓히고 일궈줘야 합니다. 그러려면 제일 필요한 것이 독서예요. 목사님들이 수필, 소설, 시, 희곡 등 모든 장르를 골고루 읽어야 다양한 사람들과도 대화하고 이해하며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문학 읽기는 나를 넓히는 것이고 그건 곧 세계를 넓히고 깊이 파고드는 거예요. 나를 구원한 게 기독교 신앙과 문학정신이었어요.
허무의식에서 나오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했어요. 바람 부는 것, 풀잎 하나가 다 의미가 있는 거예요. 그렇게 의미를 찾다보니 죽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 의미를 밝히려고 하다가 그 의미 속에 내가 동화되고 감사를 알게 됐어요. 좋은 것만 만 감사한 게 아니라 나를 업신여기고 욕하는 것도 다 의미 있게 보니 모든 게 고맙고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허무에서 일어서서 의미 를 찾고 거기서 감사를 발견한 거예요.

 
   
▲ 수상작 <하루 해 저물녘에>

 

 
 

작품 성격도 많이 바뀌셨겠네요?

- 그래도 근본은 바뀌지 않았어요. 문학이라는 게 그렇지만 특히 시의 경우 형식적인 것도 많잖아요. 다양한 시인들의 스타일을 섭렵해봤어요. 각기 특성을 알아보고, 담가보고, 생활하고, 느껴보고, 흉내도 내보고. 내 글이 나오기 시작한 시점은 80, 90년대부터라고 봅니다. 이놈의 문학이 그래요. 20~30년 가지고 문학했다고 어디 가서 말하면 우스운 거예요. 무슨 정신으로 문학을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전에는 남 흉내 내는 거지 내 것이 아니지요. 지금껏 19권의 시집을 냈지만 근래 쓴 2, 3권이 진짜 내 작품이에요. 그 세월이 등단한지 60년입니다. 예수 믿는 것도 그래요. 20~30년 믿어서 예수를 알아요? 흉내 내는 것일 뿐이에요.

시상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 신앙이 핵심인 것 같아요. 우리는 나름대로 다 잣대를 하나씩 갖고 살아요. 자의 종류도 많고 재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지예요. 그런데 최은하의 잣대는 우선 예수여야하고, 그 다음에는 아름다움이에요. 아름다움이 예술의 극치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진실, 자기 희원, 그리움 등으로 시를 쓰는데 난 그런 것보다 삶이든 시든 예수에게 매이고 싶어요. 사실은 매이는 게 진짜인 거예요. 자유라는 것도 보면 자유에 매이는 것이지요. 성경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했어요. 거기까지 가려면 최소한 50년쯤은 머리를 쏟고 살아야 해요. 스스로 회개하고 무릎이 닳도록 꿇기도 하고 매맞고 실수도 하고 그래야 하는 것 같아요.

이번 수상작 <하루 해 저물녘에>를 소개해 주시지요.

- 1년 동안에 쓴 작품이에요. 내 평생에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지난해 11월에 그동안 낸 시집 전부와 평설까지 담아서 1500페이지로 <최은하 시전집>(믿음의문학사)을 냈어요. 15년 전에 전집이 나온 이후로 새롭게 펴낸 시집 5권을 포함해 제가 직접 편집했습니다. 이걸 3년간 준비했는데 재작년 가을쯤에 우울증이 오기 시작했어요. 전집을 내면 이제 나는 가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새롭게 시가 쓰이기 시작했어요. 그게 딱 1년 만에 66편을 담아 낸 <하루 해 저물녘에>입니다. 주변에서 읽어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말들을 하더군요. 인생의 관조랄까, 한 사람의 마지막뒷모습을 그린 거예요. 한 세상 살고 보니 웃는 것보다 역시 눈물 그렁그렁 하는 그게 진실인 거 같아요. 내 시는 주지적이고 현실 비평적이에요. 생각하며 만든 시, 생각하게 만드는 시라는 말들을 합니다.

그 시집 이후로 시 12편을 더 썼어요. 시를 써야 내가 죽지 않지, 하면서요. 시란 이전 것을 답습하면 안돼요. 그런데 대부분이 이전 것을 삶아먹으며 살아요. 그럼 나태해지는 겁니다. 창작하는 사람은 늘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해요. 잠잘 때나 밥 먹을 때나 항상 깨어있어야 하죠. 이제는 그게 몸에 젖었지만 항상 긴장 속에서 산다는 건 보통 힘겨운 일이 아니에요. 깊이 자다가도 일어나면서 뭐가 생각나면 다 놔두고 메모부터 합니다. 누굴 만나서 얘기하다가 자꾸 화장실을 드나드는 것도 메모하려고 그래요. 어찌 보면 정상적인 삶이 아니에요. 그런 점에서 보면 창작하는 사람은 불행해요. 하지만 거기에 의미가 있어요. 그것도 여느 의미와 다르게 아름다움의 의미를 찾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목숨을 거는 겁니다. 신앙이나 시나 운명적인 것 같아요. 내가 웃을 때나 울 때나 늘 하나님의 얼개 안에 있는 것처럼요.

요즘 사회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문학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보는데요?

- 물질만능, 금전만능의 가치관이 깊어지니 사람을 만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하는 것도 다 돈이 우선이에요. 대형교회라는 것도 애시 당초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다들 자기 욕심 따라 가는 것이지요.
요즘 사람들은 생각하는 걸 싫어합니다. 돈이 생긴다면 거짓말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해요. 요즘 아이들의 꿈 1순위가 연예인이라지요? 정신, 감성은 자꾸 약해지고 감각만 살아있어요. 맛있는 거 먹고, 만지면 좋고, 아이들도 감각적인 것을 선호합니다. 20, 30년 후에 어떻게 될지 참 걱정입니다. 그럴수록 문예 운동이 커져가야 한다는 명제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문인들이 매달 모여서 시 낭송회를 하는데 늘 하는 얘기가 좋아하는 시를 최소한 10편만 외우고 있는 사람은 절대 나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그 시 구절 때문에요. 문예운동을 일으켜야 해요.

앞으로 계획과 들소리문학상에 주시고픈 당부 말씀 부탁드립니다.

- 하나님께서 생명을 허락하시는 날까지 좋은 시 몇 편 더 쓰고 싶습니다. 들소리신문 38년, 들소리문학상 15년을 지속해 가는 들소리신문의 저력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진실하고 의미 있는 일일수록 힘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기독교 문학의 저변 확대에 앞으로도 힘을 쏟아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하루 해 저물녘에

 

눈을 뜨면서부터 
이날껏 따라다니던 그림자 
지금은 멀쩡하게 제자리 찾아 갔겠지.

이젠 하나하나 돌려보내고
시원히 잊어버리기도 해야지.
꿈자리마저도 털고 일어나
쥐었던 손길 비벼 빌어줘야지.

감싸오는 어둠이 아늑하기도 하다
내 시간이 거의 다 됐다고
되짚어 조용히 말해야지.

머리 위로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끼륵끼륵 울음 날리며

 

 

최은하 시인은…
· 아호 : 별 밭. 전남 나주시(다시면) 출생.
·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동 대학원 졸.
· 1959년 『自由文學』지에 시 ‘꽃에게’ 등 추천(金珖燮 선생)으로 등단.
·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장(제20대/1990),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제17대/2002),성동문인협회 회장(제2대/2002) 역임.
· 제1회 경희문학상(1984), 제10회 한국현대시인상(1987),
  제28회 한국문학상(1991), 제10회 기독교문화대상(1997),
  제1회 성동문학상(2011), 제15회 한림문학상(2012) 수상.
· 시집 : <너와의 최후를 위하여>, <보안등>, <왕십리 안개>, <바람의 초상>,
 <꽃과 사랑의 그림자>, <안개, 바람소리 꽃뱀울음>, <그리운 중심>,
 <최은하 시전집>(1999), <가을 햇살 한 줌>, <오랜 기다림의 꽃>,
 <천년의 바람>, <마침내 아득하리라>, <드디어 때가 이르니>,
 <하루 해 저물녘에> 등 19권.
· 수필집 : <그래도 마저 못한 말 한 마디>, < 바람은 울지 않는다>.
· 현재 : (사)한국문인협회 고문, (사)국제PEN 한국본부 자문위원,
  경희문인회 고문, (사)한국현대시인협회 고문(평의원),
  한국기독교문인협회 고문(평의원), ‘보리수 시낭송모임’ 상임시인.
  계간 『믿음의 문학』 발행인.

 

 

 

정찬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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