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 광 섭 목사 / 창현교회 담임

10년 전 모 회사의 전기 압력 밥솥을 샀는데 밥이 채 되기도 전에 김이 새서 밥이 안 된다며 아내가 함께 구매하러 가잔다. 김빠진 압력 밥솥의 밥은 내 어린 시절 쉰밥을 물에 씻어 먹은 그 맛이었다. 압력밥솥을 수리하기 위해 대리점을 찾았는데, 부속을 교체하면 된다고 잠시 기다려달란다.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낯선 곳이며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라서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거북했다. 그러던 중 탁자 위의 신문에 눈길이 닿았다. “공직사회에서 정의의 반대말은 불의가 아니라 의리라고 한단다. 청탁은 낯선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더 이상 다음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정치인들 스스로가 서로의 관계에서 해서는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거래의 처신을 드러낸 표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스스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강조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약속과 의리와 예의이다. 가능한 이 세 가지를 지키려고 하며 살아 왔다. 그래서일까? 다음 문장으로 넘어 가는데 한참 걸렸다. 내가 글을 잘못 읽은 것인가? 아니면 기자가 글을 잘못 쓰거나 신문사의 인쇄 자판이 잘못 된 것인가? ‘의리’가 정의의 반대라니! 정의를 지키면 의리 없는 놈이 되고 의리를 지키면 정의를 어기는 놈이 된다니 그런 시회는 온전할 수 없을 것이다. 정상이 아니다. 일반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 땅의 생명과 재산과 터를 지킨다는 소위 정치하는 사람들이란다. 그들이 모여 하는 일이 정의는 몰라라 하고 자기들만을 위하는 일을 결정하고 도모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정치하는 그 터에 사는 백성의 삶에는 관심도 없다. 그런 자들을 백성들이 돈을 거두어 일 잘하라고 지원하고 있다. 혹시라도 물질 때문에 일 못할까 싶어 적지 않은 금액의 지원금을 주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내 나라 정치인들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땅에 사는 백성의 생명과 재산과 평안을 위해 법을 세우고 그 법을 실행하고 바르게 유지하기를 기대했는데 저희들 끼리만의 잔치를 하고 있다. 아니, 이 땅을 망하게 하는 잔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성 전 국회의원의 죽으면서 폭로한 일로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그가 신앙인으로 장로직분을 받은 사람이란다. 성급한 표현이지만 다 마음에 안 든다. 그렇게 죽어도 안 되고 그렇게 살아도 안 된다. 어떻게 살았기에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는가? 그의 옳고 그름은 나중에 판단하고 서로 알아 온 세월의 길이를 생각해서라도 그 옆에 있어 외롭게 혼자라고 느끼게 하지 않을 수는 없었는가? 죽은 자의 보복 같은 모습과 산 자들의 털어내기 같은 모습은 안쓰럽다. 신의, 의리, 신뢰, 사랑, 품앗이 등 그들이 쓴 이 단어들은 듣기 좋게 잘 포장된 화술에 불과하다. 정작 그 말들은 그들의 그런 관계에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들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가 되고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거래관계로 산 것이다. 얼마나 불편할까? 웃음이 웃음인가? 악수가 악수인가? 다 연극은 아닌가? 사람도 없게 하고 내용과 의미도 없이하는 그들의 거래는 아무리 미화 시킨다 해도 ‘돈의 거래요. 돈의 관계’라 해야 될 것이다.

지금은 사표를 낸 이완구 총리는 스스로 죽은 자를 향해 “나는 그 사람을 잘 모른다”고 했다. 돈을 받았느냐 아니냐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문제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드러나지 않은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 큰 문제라 본다. 산 자는 죽음이 이르는 그 시간까지 살아가야 할 터인데 다시 만나는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갈까? 두고 볼 일이다. 그는 직위만 잃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나 그 사람 몰라요’라는 표현이 성경에도 있다. 정당하지 못한 재판을 받고 있는 예수님을 멀리 숨어서 보고 있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다(마태복음 26장 69~75). 그러나 베드로는 눈물의 뉘우침으로 자신이 급할 때 부인했던 스승 예수님의 삶을 따르며 예수님을 구주로,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며 위하여 죽었다. 이것이 신앙 안에서 신앙으로 사는 신앙인들의 관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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