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나라는 여자가 황제라고 일어나서 우리 교단을 집어삼키려 하는데
이때에 총주교님이 버텨주셔야 합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100년 세월을 중앙아시아와 당나라의 향후 ‘천년 선교’를 기초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큰 그릇이십니다. 아직은 그분의 때입니다. 곧 초코에서 좋은 소식이 올 것입니다.

 

   
▲ 둔황, 명사산 비탈에 자리한 월아천 전경

영부 주교는 쿰바홀 주교 승급자를 대동하고 장안으로 돌아왔다. 쿰바홀은 영부의 명을 받들어 뱀골로 가서 안토니 주교를 만났다.

“안토니 주교님, 저와 함께 주교청으로 가셔야 하겠습니다. 영부 주교님이 초코에 계신 총주교님의 어떤 지시를 받아오신 듯합니다. 절더러 주교님을 꼭 모시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글쎄요. 저야 이미 은퇴한 사람인데….”
“아닙니다. 당나라 황궁의 조짐을 볼 때 우리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총주교님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닐까요?”

쿰바홀은 알로펜 이름을 들먹이면서 안토니의 주교청 행을 서두르고 있었다. 안토니의 마음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음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어떤 때는 알로펜 총주교님의 지시도 묵살해 버릴 만큼의 성깔인 것을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안토니가 주교청으로 갈 수 있다는 느낌을 얻었다. 주교청으로 가자는 쿰바홀의 요구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는 그의 여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쿰바홀이 안토니와 함께 오는 것을 본 영부 주교는 달려 나가서 안토니에게 머리 숙여 예를 올렸다. 주교좌 접견실에 세 사람이 둘러앉았다. 영부 주교는 알로펜 총주교를 초코에서 만난 이야기, 그의 의견에 대해 말하고 특별히 쿰바홀에게 숨겼던 알로펜의 위독한 건강에 대해서도 말할 준비를 단단히 했다.
“안토니 주교님, 어려운 발걸음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총주교님께서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영부는 잠시 말을 끊고 안토니의 표정을 살폈다. 안토니는 일선에서 물어난 뒤로는 일체 교단 일에 대해서 아는 체하려 들지 않았다. 어떤 때는 저 어른이 왜 저럴까, 혹시 무슨 섭섭한 일이 있어서일까 하는 걱정을 해볼 만큼이었다.

오늘도 쿰바홀 주교의 적극적인 열심이 아니었으면 그를 주교청까지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영부 주교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더 있는가.

“아니오, 아니야. 어려운 발걸음이라니 그런 말 마시오! 초코까지 주교가 먼 길을 다녀왔는데, 더구나 총주교님의 안부도 가지고 온 마당에 내가 와봐야지. 괘념치 마시오. 그리고 그 쪽 소식이나 들어봅시다. 총주교님이나 마리아 교수님도 안녕하시던가?”

“네, 모두 잘 계셨어요. 드보라 수녀원장님도요….”
영부는 약간 짓궂게 드보라 이야기까지 끼워 넣었다.
“묻지도 않은 말은 왜 하십니까?”

쿰바홀이 비시시 웃으며 안토니를 바라본다. 안토니는 별다른 내색 없이 영부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혹시 드보라가 자기에게 전하는 말이 있을까 하는 기다림까지 보태서 말이다. 안토니는 드보라의 성품을 많이 좋아했었다. 수십 년 동안이다. 당나라 선교활동 중에도 함께 결혼했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었다. 그러나 드보라 본인은 물론 마리아 교수가 특히 반대했다. 드보라는 알로펜 총주교를 도와드려야 할 인물이라고 했다. 마리아 자신이 알로펜 곁에서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드보라까지 묶어두려 하는가. 생각들이 많았으나 더 이상은 접근해 볼 겨를이 없는 세월이었다.

“다 부질없지요. 오직 나의 위로는 십자가의 예수님뿐이오. 어서 말을 계속하구려.”
안토니는 영부에게 다음 말을 부탁했다.
“네 네! 총주교님은 저더러 앞으로는 모든 선교활동 방향을 두 분 어른을 모시고 정해서 빈틈없이 했으면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거, 무슨 소리. 태양은 하나야.”
당나라 선교가 얼마나 중요한가. 영부 주교가 젊은 결단력으로 밀고 나가야지. 나 같은 늙은이가 끼어들 일이 아니지. 그럼 그렇고말고….”

안토니는 펄쩍 뛰었다. 쿰바홀이 끼어들었다.
“안토니 주교님, 오해하지 마세요. 요즘 당 황궁 사정이 좋지 않고, 선황 비 무조가 우리 교회를 눌러보려고 기를 쓰는 때가 아닙니까. 이런 때는 저나 안토니 주교 같은 경험자들이 거들어 드리라는 것이죠. 여기 중국인들은 경험이 선생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저희 늙은이들이 영부 주교를 보필해 드린다는 마음으로 힘을 보태라는 총주교님의 뜻 같습니다.”

“뭐, 그런 점이 있기는 하지만….”
“감사합니다. 저로서는 두 분 어른이 저를 도와주시면 천군만마죠. 그럼 함께 하시는 것으로 하고, 여기서 우선 한 가지 의논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쿰가그나 쿰보그 두 형제 중에 한 사람을 초코로 보내서 총주교님을 도와드렸으면 합니다. 교사들이나 훈련생들이 2천명이 넘거든요. 많은 간부들이 있기는 하지만 두 분 형제의 도움이 필요하겠더군요.”

“그거야 쿰바홀 부주교님이 두 아드님 중 하나를 보내시도록 하세요.”
안토니의 말에 쿰바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나, 총주교님의 말씀도 됩니다만 쿰바홀 부주교님을 주교로 승급시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안토니 주교님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그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사실 내가 은퇴할 때 곧바로 영부 주교를 보좌할 주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나도 했었죠. 잘 판단하신 것으로 저는 기쁜 마음으로 찬성합니다.”
“뭐, 저는 아직….”

쿰바홀이 어린아이처럼 얼굴에 홍조를 띠면서 한 발 뒤로 물러서는 시늉을 했다.
“아니오. 쿰바홀 형님. 저 안토니는 쿰바홀 님을 마음으로 깊이 존경합니다. 그 많은 재산과 온 가족을 다 우리 선교단을 위해 바친 인물이신데 누가 감히 형님이 주교 되시는 일에 축복하지 않겠습니까.”
영부는 이제 알로펜의 병세를 말할 차례였다. 마음이 무겁다.

“쿰바홀 부주교님의 주교 승급 안건은 통과입니다.”
영부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쿰바홀 주교 안건을 통과시켰다. 알로펜 총주교의 지시사항이니 통과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았으나 안토니와 쿰바홀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무조의 기독교 박해를 이겨내고 싶었다.

“그런데… 총주교님이 좀 아프십니다. 제가 더 남아있고자 했으나 총주교님께 쫓기다시피 돌아왔어요. 지금 이 시간의 안부를 저는 걱정하고 있습니다.”

영부가 조심스럽게 알로펜의 병세를 말하자 성질 급한 쿰바홀이 탁자를 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영부를 향해 험한 얼굴을 했다.

“쿰 주교님, 죄송해요. 제가 쿰 주교님 만났을 때 말을 꺼냈으면 당장 초코로 달려가시려 할까 싶어서 꾹 눌러 참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영부가 몸을 낮추고 울듯이 말했다.
“그래, 쿰 주교님, 자리에 앉으세요. 총주교님은 100세가 넘었습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야 숨을 쉴 연세이십니다. 그 어른의 할 일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지금 당나라는 여자가 황제라고 일어나서 우리 교단을 집어삼키려 하는데 이때에 총주교님이 버텨주셔야 합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그분은 다섯 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페르시아 기독교의 한계를 안타까워했고, 다마스커스에서 지금 저 이슬람 교조인 무함마드와 겨루었던 어른이요, 100년 세월을 중앙아시아와 당나라의 향후 ‘천년 선교’를 기초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큰 그릇이십니다. 아직은 그분의 때입니다. 곧 초코에서 좋은 소식이 올 것입니다. 그곳엔 알로펜 총주교님의 2천명이 넘는 제자들이 있고, 우리 세 사람보다 백배 천배로 잘 간호하고 돌보는 두 천사가 있습니다. 마리아와 드보라는 절대로 알로펜이 죽을 수 없도록 지켜낼 것이오.
안토니가 열변을 토했다. 그의 얼굴빛에서 광채가 흘러넘쳤다.

영부와 쿰바홀은 안토니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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