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한산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느 야산에 갔다가 겉보기에 그토록 아름다워 보이던 숲이 막상 들어가 보니 살아있는 나무보다 죽어 쓰러져있는 나무들이 더 많아 보이는 듯한 모습에 놀란 적이 있었다. 치명적인 질병이나 스트레스로 그런 것 같았다.

쓰러지는 것들은 어디에도 있기 마련이다. 사람도 쓰러지고 문명이나 종교도 쓰러지고, 때로 국가도 쓰러진다. 그러나 문제는 쓰러지는 것들이 혼자만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마치 동반자살이나 하려는 것처럼 이웃 나무들을 꺾어버리듯 쓰러지는 모든 것들 역시 그 이름 그 가치성에 걸맞은 파괴력과 상처를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거기서 떠올렸던 것이 그늘의 북한이었다. 앳된 김정은이 지도자의 모습으로 TV 화면에 비춰지기 시작했을 때 바로 저런 얼굴을 가리켜 어린 아기 상(相)이라고 말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그렇지만 또 바로 저 얼굴이 눈에 힘을 주고 입 꼬리를 내리면 금새 악귀 상으로 변할 수 있겠구나 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3년 동안 계속되는 억지 주장들과 숙청 소식들을 접하면서, 스위스 유학까지 했으니 좀 다를 수도 있겠다 싶던 기대감은 역시 그 핏줄이 그 핏줄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예상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아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한이라는 나라는 출발부터 이성적인 국가는 아니었다. 그 시작부터 국민 참여의 건국이라기보다는 볼셰비키 정권을 탄생시킨 소비에트 공화국의 나락하에 온갖 낯 뜨거운 영웅담을 짜깁기해서 그 허물을 갖춘 독재권력일 뿐이었고, 그런 권력의 숙명적인 속성대로 나라 전체를 온 국민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집단 감옥으로 변질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한에도 독재는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남한에는 변화가 가능한 생존환경이 처음부터 주어져 있었다. 자유국가의 기본 틀을 보장하는 법이 있었고 언론이 있었고 궐기하는 국민 집단이 있었다. 거기에 부응하여 미련없이 권좌에서 하야 할 줄 알았던 이승만 같은 지도자도 있었고 바로 또 이런 점에서 그 뒤를 이었던 독재 권력들도 차례로 단죄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모든 것이 그 반대일 뿐이었고 그래서 백성의 허기조차 해결치 못했던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서른 살 김정은까지 비판 금지, 접근 금지의 절대신으로 등극하고, 그래서 인민은 박수를 쳐도 죽기 살기로 쳐야 그 충성심이 인정되는 감옥국가로 전락하고.
옛 시대 사람들도 말을 남겼다. 나라가 망할 때 무슨 조짐이 있기 마련인가. 식자와 어진 사람들이 산에 들어가 몸을 숨기거나 이웃나라로 도망쳐 목숨을 도모하려 할 것이고 도망칠 수 없는 백성들은 모름지기 귀와 입을 막고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북한과 옛 사람들의 함축적인 경고를 대비시키는 것은 약간은 아귀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성택 같은 제2인자의 처형에 건성박수라는 말이 따라붙고, 공식석상에서 잠깐 눈을 내리깔고 졸은 것이 불경죄로 국영매체를 통해 성토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 하겠는가.

북한에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통일을 비관으로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의 판단이야말로 이성적인 결론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우상은 결국 반드시 쓰러진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이고 약속이다. 그리고 지배계급이 스스로 썩고 미쳐버릴 때 그것의 최후 역시 바로 지척에 와 있는 거라고 해야 할 것이고, 주리고 헐벗은 자들의 죽기 살기 식 환호야말로 그것의 증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록 역사는 혼돈스럽고 언제나 비극적 요소를 갖고 있기 마련이지만 사해(四海)의 모든 여론이 머리를 흔드는 상식의 실종이 세대와 세대를 넘어 계속되는 일도 있을 수 없다는 것 역시 진리라면 진리일 것이다.

우상은 제 아무리 화려웅장으로 꾸며도 그 본질이 우상이기에 우상일 뿐이고 그것의 운명은 쓰러지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그것이 쓰러지는 소리를 듣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상은 쓰러진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하늘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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