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한호 담임목사/돈암그리스도의교회

동성애에 대한 성서적 가르침은 분명하고도 단호하다. 그것은 성서의 기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따라서 기독교가 동성애를 수용한다는 것은 성서의 가르침에 대한 재해석을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내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그 이유는 성서에 대한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상황윤리적 관점과 의무윤리적 혹은 규범윤리적 관점 중에서 어느 관점으로 성서를 해석하고 있느냐의 차이 때문이다. 대체로 동성애에 대한 찬성 입장은 상황윤리적 관점으로 성서를 해석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며, 반대 입장은 의무윤리와 규범윤리적 관점으로 성서를 해석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현대인들의 의식변화이다. 현대인들의 윤리규범은 상황윤리적 관점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어떤 규범은 시대를 초월하여 무조건 옳다고 하는 의무윤리 혹은 규범윤리적 관점에서 상황을 대입해 탄력적으로 적용하고자 하는 상황윤리적 경향으로 흘러왔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과거에 죄로 인식되던 것들이 죄가 아닌 것으로 인식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 결과 살인(殺人)이라고 할지라도 정당방위가 인정되면 살인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졌다. 현대는 점점 더 많은 부분에서 상황윤리적 기준이 강화되고 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다수(多數)가 선(善)이라는 관점에서 소수정의(小數正義) 혹은 소수인권의 가치를 존중하고자 하는 경향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성서의 가치이기도 하다. 특히, 재판에 있어서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는 출애굽기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세를 새롭게 하고 있다. 그러나 동성애는 성서가 말하는 소수정의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이르러서 동성애자들은 소수인권의 보호라는 명분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동성애의 문제가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동성애 반대가 현대정신과의 정면충돌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현대정신과의 충돌은 갈수록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 기독교가 사회의 보편적 일원이 되기보다는 특수한 세력으로 축소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는 기독교 그룹들에게는 개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비정하고 비인권적인 세력이라는 굴레가 씌워질 수 있다. 십자가의 사랑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주장하고 있는 이 그룹들에게는 마치, 황제숭배 거부로 말미암아 무신론자 취급을 받았던 초대교회의 고난과 다를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아마도 이러한 저변의 인식이 동성애에 대하여 더 철저하고도 강경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동성애를 찬성하는 그룹들에게 미래 기독교의 주도권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들은 성서의 가치를 증명해 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기독교는 현대정신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보여주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제를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독교의 분열이 치유되어야 한다. 특히, 연합기관들의 분열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내부적으로 이단문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지만, 그것 못지않게 외부적 환경변화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내부적으로 이단문제를 가지고 치열하게 논쟁하고 검증해야 하지만, 집안싸움을 하다가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동성애 등의 이슈에 대하여 단편적 대응보다는 포괄적 대응을 해야 한다. 부연하면, 동성애 문제 이면에 있는 현대정신의 흐름을 분석하고 이슈(issue)를 선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상보다 한 발 앞서서 이슈를 개발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마치, KS규격품을 만들듯이 선제적으로 기준을 만들고 제시해야 한다. 동성애에 대한 평가 및 대응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process)중 일부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성애와 유사한 문제들이 속출할 때마다 기독교는 내부적으로 일치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 반사회적 존재로 전락될 수도 있음을 깊이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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