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유엔 승인 아래 합법정부로 탄생했다.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병합되어 35년 고통하다가 세계사의 흐름을 따라서 1945년 8월에 광복이 왔으나 그때 우리 민족은 힘이 부족해서 남과 북이 38도 선을 경계로 분단되었고 민족세력과 북한 공산당 세력 간 의견 차이로 통일 정부를 세우지 못하고 남북한은 따로 정부를 세웠다.

남한 즉 대한민국은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한 신생국가를 탄생시켰고 유엔은 대한민국을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 승인했다. 그래서 비록 반쪽짜리 같아도 대한민국은 한반도를 대표했고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세월 속에서 6·25가 일어났고 4·19와 5·16 등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사회문화와 경제가 성장 발전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다시 세월 속에서 남쪽 대한민국에는 남남갈등이라는 의견차가 드러나기 시작하더니 보수와 보수 아닌 세력들 간에 대화의 자리가 무너져가고 있다. 그래서 요즘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대통령 중 한 사람일 뿐이며 이미 4·19 현장에서 독재자의 이름으로 쫓겨난 역사 속의 인물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같은 평가에 상당부분 동의한다. 그런데 이승만이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인 것이 분명하고 그가 신생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때 우리나라 국고는 텅텅 비어 있었고 도둑고양이 같은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다 털리고 빼앗긴 뒤 국민들 사정도 말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독재자 이승만과 미국의 초대(건국)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들먹이는데 그 비교대상 설정은 잘못되었다. 1776년 미국이 독립 국가를 세울 때까지 당시 뉴잉글랜드라는 이름의 미국 땅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온 유럽인 등등이 모여서 ‘성경공화국’이라는 이름의 자치제를 무려 150년 동안 그 땅에서 훈련했고, 그런 그들은 유럽에서 최소한 1천여 년의 수준 있는 기독교 훈련, 13세기 르네상스부터만 해도 인간우위 교육, 15세기부터는 국가주의 훈련, 16세기부터는 자본주의 훈련까지 받은 시민들이었다.

이승만의 대한민국과 워싱턴의 미합중국은 유치원생과 박사학위자들 만큼의 실력치가 있다. 만약, 워싱턴 미국대통령이 이승만의 대통령 자리에 있었으면 국가 수립 2년 후부터 일어난 6·25 국난에 나라를 공산당에게 내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질없는 비교라 할 수도 있으나 1948년 신생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을 유럽이나 미국의 상황과 혼돈하거나 착각하지 말자는 뜻으로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광복 70년 이후 아직도 남북통일은커녕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도 못하는 꼴이 된 것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역량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이나 건국 대통령일 수도 없다고 역사를 부정하는 단계가 된 남남갈등, 바로 이 같은 옹졸하고 무능한 우리의 반성이 필요하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