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50

“또 하나 더, 당나라의 과학기술을 잘 살펴보고 로마제국에서도 기술력을 영입할 수 있는가
연구해 보세요. 로마제국의 교회가 우리 당나라 교회를 무시할 수 없게 해야 합니다.
필요한 자금은 제가 황제의 도움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 부딪쳐 보겠습니다.”
“주교님, 참으로 반가운 말씀이십니다. 저와 시몬이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저도 참여시켜 주세요.
이제는 저 사마르칸트의 요한 주교 딸 실비아의 길을 찾게 도와주세요.” 

 

 

   
▲ 중국 돈황 사막 지역의 유명한 월아천에서 꿋꿋하게 자라고 있는 나무. 경이롭다.

 

 

안토니는 영부와 쿰바홀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마치 혼자서 독백하듯이 중얼거린다. 그의 표정이 아득한 꿈 멀리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잠에서 덜 깬 사람의 초점 잃은 모습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두 사람은 더는 그에게 말을 붙이지 못한 채 숨소리를 아낀다. 안토니는 허공 속에 내던져 두었던 생각을 거두며 몸을 일으켰다.

“안토니 주교님, 심기가 어찌 안 좋으신가요?”

쿰바홀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아니오. 그냥 생각 좀 해보았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무례를 저질렀으면 용서하세요.”

“아니라니까. 왜 그러십니까?”

“안토니 주교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가야 한다면 제가 다녀와야 할 일인데.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영부 주교가 안토니의 발길을 막으면서 머리를 숙였다.

“아니오. 꼭 가야 한다면 우리 셋 중에 제가 가야지요. 다만 우리가 찾아간다고 해서 그들이 문을 열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그렇죠? 맞습니다. 제가 너무 경솔했습니다.”

영부는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안토니의 옷자락을 잡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허어, 주교님. 왜 함부로 사죄를 합니까? 주교님은 당나라뿐 아니라 장차 유라시아 기독교를 이끌어갈 지도자입니다. 함부로 그러지 마세요.”

영부는 안토니의 함부로 굽실거리지 말라는 말을 함부로 사과할 짓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 오늘은 내가 먼저 가보겠습니다. 한 3일 정도 기도한 후에 찾아오겠소. 그때 만납시다.”

안토니는 자기 할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주교님, 걱정 마세요. 안토니 주교가 가지 못하겠다면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동안 저는 오삼 수도회 회원들 숙소를 어떻게 마련할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십시다. 저는 요수아 사제를 불러 우리가 계획한 학당 문제를 의논하겠습니다.”

영부는 요수아에게로 갔다.

“아니 주교님! 어찌 저를 부르시지 않고 직접 오셨나요?”

“그래, 내가 요수아 사제를 보려면 늘 오시라 했지요. 저는 지금 내일의 우리 지도자이신 알로펜 2세님을 뵈러 왔습니다.”

영부 주교가 마당가 꽃밭에 있는 요수아의 아들 다위드 곁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인기척에 놀라 일어섰다. 영부 주교를 보자 손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옷깃을 바로하며 선다. 예쁘게 웃으며 주교님이 찾아주셔서 감계무량이라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래, 그동안 공부 잘하고 있었겠지?”

“네, 주교님.”

다위드는 자세를 유지하며 답변했다.

“주교님, 안으로 들어오시죠.”

영부 주교는 거실로 들어가서 오늘 있었던 안토니 주교의 로마행 문제를 꺼냈다. 대강을 듣고 있던 요수아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안토니 주교는 노령이어서 안 된다고 말했다.

“주교님, 제가 다녀왔으면 합니다만….”

요수아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오. 안토니 주교가 못가시면 제가 가야 합니다.”

“주교님,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당나라 우리 교단은 어찌하라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건 지나친 말씀이세요.” 

“아니오. 이곳 문제라면 나 말고 안토니 주교님이나 쿰바홀 주교님도 얼마든지 해내실 수 있지요. 그러나 로마교회 방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잖아요. 사절단을 이끄는 인물은 경륜이 있어야 합니다. 안토니 주교가 적격이기는 하지만 연세가 너무 많으시기는 하죠. 아니면 제가 가는 수밖에 없지요.”

“저의 판단으로는 방정맞은 생각이긴 하오나 로마교회를 찾아서 로마제국에 가면 문전박대 당할게 뻔한 노릇인데 어떻게 그 연세에 장거리 여행을 합니까? 안될 말씀입니다. 주교님이 가신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요수아는 물론 그 옆에서 듣고 있던 요수아의 아내도 장거리 여행으로는 안토니 주교의 나이가 너무 많고, 영부 주교도 움직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럼 일단 안토니 주교님이 3일 동안 기도한 후 결심하겠노라 하셨으니 기다려보기로 하죠. 또 지금 떠오르는 생각인데 초코에 가서 마리아 교수님과 의논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어요. 며칠 후에 쿰바홀 주교님이 초코에 가서 당분간 그곳에서 활동하고자 하시니 그때 나도 잠깐 다녀올 생각입니다.”

영부는 자신이 초코에 다녀올 계획을 요수아에게 말했다.

“그러시죠. 안토니 주교님이 가시겠다고 해도 주교님이 초코에 다녀온 후 결정하자고 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주교님, 제가 당돌하게 말씀드리는 것을 용서해 주세요.”

“거 무슨 겸양의 말씀, 그럼 내가 누구와 의논하라고 그러십니까.”

언제 들어왔는지 다위드가 곁에 와서 눈을 깜빡거리면서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주교님 초코에 가실 때 저를 꼭 데려가 주세요. 제가 마리아 할머니께 드릴 말씀이 있거든요.”

다위드가 말했다. 초코에 가서 마리아 교수님을 만나겠다고 하는 것이다. 

“어허, 이런. 다위드는 아직 어려요. 마리아 할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의 보호가 더 필요하거든요.”

“주교님, 제가 열 살이거든요. 누구의 보호를 받을 나이가 아닙니다. 저는 지금 알로펜 총 주교님과 수십 년 동안 함께하신 마리아 할머니를 통해서 저의 참 스승이신 알로펜 할아버지의 젊으셨을 때부터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어요. 할머니는 알로펜 총주교님보다 연세가 위신데 할머니가 더 늙으시기 전에 듣고 배울 말씀이 너무 많아요. 주교님 제가 마리아 할머니께 가고자 하는 길을 막지 마세요. 네, 주교님!”

다위드는 무릎 꿇고 두 손을 마주 비비며 말했다.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리고 있었다. 뭐라고 한마디만 더 하면 엉엉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순간, 영부 주교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영부는 40여 년 전, 다위드 나이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는 장안의 어느 시장 거리에서 동행중이던 부친을 잃어버리고 당시 그곳을 지나던 알로펜 주교의 제자들에게 보호를 받았다. 훗날, 정확치는 않으나 몇 달이 되지 않아서다. 부친이 찾아왔을 때 자기는 알로펜 주교의 가르침을 받겠다고 버티며 고집부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위드는 그때 자기의 모습이었다. 이 녀석은 좋은 부모 곁에서 사랑받는 처지인데 부모를 떠나서 먼 길을 가고 싶다니. 영부는 말없이 시선을 비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잠시 후 영부 주교가 말했다.

“부모님이 허락하시면 데려가 주마.”

“네, 주교님. 감사합니다. 제가 할머니 교수님께 잘 배워서 장차 당나라 기독교를 지켜내는 작은 기둥이 되겠습니다.”

“허, 알로펜 2세여! 그건 장차 일이고 부모님 허락이 먼저라니까….”

“….”

아이는 요수아를 본다. 그리고 모친의 손을 잡았다. 그의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자 아이는 요수아의 가슴으로 뛰어들었다.

“아빠! 엄마에게 말씀 잘 해 주세요. 저는 꼭 마리아 교수님께 배워야 할 것이 있어요. 불효자식이 되지 않을 게요. 아빠!”

아이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영부 주교는 40년 전 자기와 다위드를 다시 비교해 보다. 자기는 어머니 없이 무뚝뚝한 아버지를 따라서 사는 장돌뱅이 신세였다. 자기는 그때 지금 신라에 가서 선교활동 하는 유승 사제가 특별히 돌봐 주어 대진사(당시는 파사사)에서 보호받으며 알로펜 총주교님의 사랑을 받았었다. 자기는 부친의 보호보다 파사사의 식구들이나 알로펜 주교님의 보살핌이 좋아서 부친이 뒷날 찾아왔을 때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지, 가르침을 받고자 했었을까. 자신은 그때 뜻을 품고 사랑하는 부모의 품을 떠나려 하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내가 그동안도 눈여겨봤지만 오늘 보니 이 아이는 장차 주님께서 크게 쓰실 재목인 듯합니다.”

영부가 결론처럼 말했다.

“이놈아, 그만 울어!”

요수아의 아내가 요수아의 가슴팍에 달겨 붙어있는 아들을 세찬 손길로 잡아챘다. 아이는 요수아의 품에 더 바싹 매달렸다. 어머니는 아들을 남편의 품에 둔 채 밖으로 나갔다. 

“요수아 사제!”

“네, 주교님.”

“당나라 풍습은 열 살이 되면 부모를 떠나 스승을 찾아갑니다. 요수아님도 알고 계시죠.”

“저는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요수아는 모른다고 했다. 잘 알고 있으나 모른다 했다. 같은 장안에서가 아니라 초코로 떠나겠다는 아들을 차마 보내주고 싶지 않았다. 요수아의 아내 실비아가 거실로 들어왔을 때 다위드는 단정한 자세로 영부 주교 곁에 있고 요수아가 차와 과일을 탁자 위에 준비해 두고 영부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어머, 제가 준비해야 했는데 주교님 송구합니다. 못난 모습까지 보여드리고…, 어서 차 드세요.”

“네, 아드님 걱정은 마세요. 이 아이는 분명히 나보다는 훨씬 크게 쓰임 받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네, 주교님. 주 예수의 나라를 이루어내기 위해서 저희 가족은 이미 희생물로 드렸습니다. 자식 놈뿐 아니라 저희 부부도 소처럼 부려 주세요.”

“아하, 됐어요. 그럼, 그리 하죠. 요수아 사제와 시몬 사제는 우리 대진사 대학을 잘 이끌어 보세요. 내가 요수아 사제를 학당장으로, 시몬 사제를 부학당장으로 임명합니다. 지금 당장 두 분이 대학을 규모 있게 만들기 위한 계획부터 세우세요. 당나라 조정에서 찾는 인재를 위해서 과거 응시 준비생을 잘 교육하세요. 또한 신학부 인재를 널리 찾아보세요. 페르시아나 사마르칸트, 멀리 다마스커스까지 수소문해 히브리어, 그리스어, 수리아어, 로마의 라틴어까지도 어학의 수재를 찾고 학문을 할 줄 아는 인물들을 달라고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기도하세요. 또 하나 더, 당나라의 과학기술을 잘 살펴보고 로마제국에서도 기술력을 영입할 수 있는가 연구해 보세요. 로마제국의 교회가 우리 당나라 교회를 무시할 수 없게 해야 합니다. 필요한 자금은 제가 황제의 도움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 부딪쳐 보겠습니다.”

“주교님, 참으로 반가운 말씀이십니다. 저와 시몬이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저도 참여시켜 주세요. 저 실비아는 대학 운영과 인재관리는 물론 저 자신 학문에 몰두하겠습니다. 이제는 저 사마르칸트의 요한 주교 딸 실비아의 길을 찾게 도와주세요.”

“아, 좋아요! 그러나 혹시 아드님이 초코에 간다 해서 감정적으로 선택하신 일은 아니시죠?”

“그럼요. 주교님! 저는 내 아이가 언젠가는 제 품을 떠날 줄 알고 있었어요. 생각보다 빨라서 제가 잠시 못난 어미의 모습을 보였지요. 저는 주교님의 지도를 받아서 당나라 제국을 하나님 나라로 바꾸는 일에 저의 생명을 내어놓겠습니다.”

요수아는 아내 실비아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여보! 나도 도울게. 내가 진작 당신에게 권고했어야 했는데 이제야 사마르칸트 요한 장로님과의 약속을 지키게 되는군요.”

요수아는 청혼할 때 실비아를 학자로 키우겠다고 사마르칸트 감독회장 요한 박사에게 철석같이 다짐했었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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