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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지 말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하라?’기독교 단체 ‘말씀 나눔’시간-하나님 안에서의 역할보다 ‘떡 원하는 현실’ 마주하다
양승록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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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2호] 승인 2015.09.17  12: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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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5장 29, 32절에서 예수님의 인류 구원의 길을 막아서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 루벤스의 ‘십자가 위의 예수님 ’

말씀이 있는 시간, 수동적으로 듣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나’에게 부딪히는 말씀을 고대하고 나누는 시간을 갖는 이들이 있다.

기독교 선교 단체인 A 회사에서는 매주 월요일 예배 시간의 말씀을 한 주간 묵상하고 공부하며 업무를 종결하는 금요일에 말씀을 나눈다. 김수영 목사, 이나리 권사, 박한별 집사, 함수용 집사 등 네 사람이 나눈 말씀의 본문은 마가복음 15장 21~32절이다.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지게 하여 당도한 곳. 골고다에 이르러 예수를 강도 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 대목에 이어 희롱하듯 요구하는 대목에 이야기가 꽃을 피운다.
‘지나가는 자들은…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29~30).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이에 가세한다.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31~32).


함수용 집사: 사실 이 대목을 읽으면서도 무엇이 나와 상관이 있는 말씀인지 와 닿지가 않았습니다.

박한별 집사: 예수님은 끝까지 피하지 않으시고 자신이 해야 할 일, 가야 할 길에 서 계시는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신자들이, 특히 직분자도 이단에 빠지거나 천국 갔다 온 이야기를 듣고 신앙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이 제대로 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것을 알고 함께 노력하는 교회공동체가 약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나리 권사: 예수님을 희롱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상에서 멋지게 죽기 전에 못 박힌 십자가를 떨쳐버리고 기적적으로 내려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게 하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면 감히 예수님을 욕보이는 일은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많은 기적을 베풀었지만 상당수는 배부른 것에 만족만 하는 것을 예수님도 익히 아셨기 때문일까요? 십자가상에서 바로 죽지 않고 기적처럼 살아나셨다 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를 믿기보다는 또 한 번의 이벤트가 될 줄을 아셨기 때문이었을까요?

김수영 목사: 편법을 사용하지 않고 죽음의 길일지언정 당당히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저 역시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권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희롱하는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을 때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을 것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한 3대 시험(마 4:3~11)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이 제시하는 문제들을 풀지 않고 정면으로 넘어서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하고,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 하고, 산으로 올라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리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일축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29절)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하라’(32절) 하는 이들의 요구가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는 것입니다.

박 집사님이 얘기한 것처럼 오늘날 많은 이들이 왜 이단에 빠지게 되는지, 그들의 갈급한 신앙에 교회가 어떤 부분을 채워주지 못해 영적으로 혼란을 겪는지 살펴야 합니다.

이 권사: 예수님은 종교시대, 우상을 없애고 이 땅 위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시면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야만 했던 그 사명을 다하는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세인들의 요구대로 십자가에서 내려가는 길을 선택한다면 그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박 집사: 우리가 사는 일상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금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고 모시고 있다면서 여전히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이 땅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사느냐 하는 문제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니 기독인으로서 제대로 살아야지 하는 것에 사로잡혀 자유롭지 못합니다.

김 목사: 이 권사가 말한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이는 ‘집’인 성전을 헌다는 의미보다는 예수님 자신이 죽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끝없이 제사 드리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구하고, 용서함 받는 존재로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함께 살자’고 요청하시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은 저 높고 높은 곳에’ 계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신이요 인간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것 자체가 그 이유 때문입니다.

이 권사: 그러니 계속 give and take(주고받기) 신앙으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 속에 나의 존재와 삶을 그분께 맞추어 나가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토속신앙인 불교문화권에서 사시면서 정화수 떠놓고, 떡을 해놓고 두 손 모아 비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신앙생활 하신지 20년이 넘는데도 ‘빌면 복을 주신다, 해결해 주신다’는 논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박 집사: 교회 내의 상당수가 여전히 그 정도 수준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단계라고 생각해야 하겠지요. 그 과정을 넘어서서 어른같은, 책임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권사: 그렇죠. 단계이긴 하죠. 그러나 너무나 어린아이 수준과 같은 모습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됩니다.

김 목사: 예수님은 하나님이 어떤 마음이신가를 친히 보여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이란 너와 나 사이의 간격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네 것과 내 것을 별도로 챙겨두지 않는 관계이지요.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사는 삶이어야 합니다. 믿음의 성인들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고, 불에 타 죽고, 억울하게 죽으면서도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님과 함께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기적이나 ‘돌을 떡덩이’ 되게 하는 기적을 누리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그분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박 집사: 오늘의 우리 기독교인들 역시 ‘떡’을 구하는 데만 급급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면서, 늘 그런 모습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1시간 30분여의 말씀 나눔 시간,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가 교회와 기독인들의 회사에서 이뤄지고 있는 부분 역시 먼저 풀어나간다면 ‘하나의 지체’ 의식이 강화될 것이고, 사회에도 좋은 모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모두들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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