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조년한남대 명예교수

금년은 2차대전이 끝난 70년이 되는 해라고 하여 이곳저곳에서 이른바 ‘승전’축제를 벌였다. 우리에게 가깝게는 러시아와 중국에서 승전기념식을 가졌다. 그 나라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국가원수들을 초청하여 그 기념식을 아주 거창하게 치렀다. 마치 경쟁하듯이 더 많은 축하객을 초청하였고, 더욱 화려하고 웅장하게 잔치마당을 차려놓았다. 서로 경쟁하듯이 초청하는 나라의 강약을 비교하기도 하였고, 초청된 나라 수반들은 어느 자리에 앉았는가를 따지고 희비를 가늠하기도 하였다. 초청한 나라들과 거리가 얼마나 멀고 가까운가를 따져보기도 하였다. 우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형식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참으로 많았다. 거기에 초청된 사람들은 남의 잔치에 초청된 것일까? 자기들 일처럼 함께 기뻐할 축하의 자리에 참여한 것일까?

여기에 놀라운 의문이 있다. 그런 승전 축하잔치를 왜 꼭 어떤 힘 센 장사가 근육을 자랑하고, 어깨를 뽐내듯이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최신 전쟁무기를 자랑하는 것으로 일관하여야 했을까? 전쟁이 끝나서 평화로운 시기를 많이 가졌다는 나라들의 ‘승전’ 놀이는 매우 슬픈 잔치였다는 것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엄밀히 따지면 전쟁에 이기고 졌다는 것은 그만큼 아프고 슬픈 역사를 알려주는 일이다. 이겼다고 정말 이긴 것이며, 졌다고 아주 진 것일까? 서로 만신창이가 된 상황이 아니던가? 이러나 저리나 희생당한 측은 그 전쟁의 이해득실과는 실제로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생명들이 너무 많았다. 그냥 명령이니 동원되었고, 적과 맞부딪치는 위치에 있었으니 희생된 사람들, 전쟁이 수행되는 곳에 있었으니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니 이제 전쟁에 이겼다거나 졌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어느 곳에서나 전쟁이 수행될 때는 하루 빨리 그 전쟁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이기고 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전쟁이 끝나서 그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바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이 끝난 것을 축하한다면서, 어느 나라나 민족에게는 아픔으로 다가오는 날로, 어느 나라에는 슬픈 기쁨으로 다가오는 날로 기념행사를 하는 것은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성찰이 있었으며,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사회, 전쟁이 없는 시대를 여는 일에 더욱 정성과 큰 힘과 맘을 집중하였는가를 생각하여 볼 때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번에 승전놀이를 한 나라들은 그 동안 전쟁할 때보다 더 강력한 나라가 됐다는 것을 자랑하는 기념식으로 그 시간을 보낸 느낌이 들어서 매우 씁쓸하다. 그들이 강대국이 되었으니 무수히 많은 나라들은 그들 무력시위에 들러리로 세워진 인상이 너무 짙다. 이것이 위기다. 거대한 전쟁이 끝난 것을 기리는 잔치에 전쟁무기 자랑 경쟁을 하듯이 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요,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인도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오늘의 위기는 갈수록 구시대의 유물인 군국 강병을 전혀 성찰 없이 받아들이는 데 있다. 여기에 세계를 구원하는 명목을 가진 종교들이 들러리를 서거나 동조한다. 이것이 또한 위기다.

때가 되면 국경도 흐려질 것이고, 민족들의 경계도 흐려질 것이다. 민족주의가 한 물 간 것은 오래 된 일이지만, 언젠가는 국가주의의 한계를 곧 선언할 때가 올 것이다. 이미 경제, 재정, 군사, 과학, 기술, 예술, 철학 따위에서는 국가를 뛰어넘어 하나의 전체 흐름체계로 접어든지 참으로 오래 됐다. 그러니까 서로 인정하고 협력하는 것을 아주 긴밀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됐단 말이다. 이러한 때, 인류의 구원을 획책하는 종교가 할 일은 참으로 자명하다. 종교들이 각자 쌓은 담을 헐고 아주 자유롭게 넘나드는 상호간의 소통이 빈번해야 할 것이다. 모든 종교는 자기 경전만을 고집하지 말고 다른 종교의 경전을 열심히 공부하는 모임을 서로 가지자. 서로 개종을 강요하거나 종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의 껍질을 넘어 핵심을 이해하려는 공동의 작업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렇게 하여 자기 종교만이 옳고 정당하고 좋다는 자기종파지상주의를 벗어나 보다 높은 차원의 새로운 종교를 함께 꿈꿔보자. 그렇게 되는 것이 세상을 극복하는 일이면서, 지금 인류가 맞고 있는 위기상황을 극복할 어떤 단초가 될 것이다. 오늘의 위기 중 큰 것 하나는 모든 종교들이 점점 더 자기 울타리를 견고하게 쌓는 일이다. 그것을 허무는 새로운 종교혁명이 꿈틀거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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