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녀사 추사비(春女思 秋士悲). 여자는 봄에 생각에 잠기고 남자는 가을에 슬픔을 느낀다. 한무제의 글귀인데 권력과 영달의 극을 누렸던 그는 무슨 이유로 남자가 가을에 슬픔을 느낀다는 것이었을까? 가을에 느끼는 슬픔. 슬픔의 가을. 슬픔의 계절.

가까스로 먹고 사는 소시민으로서는 그렇다. 기온이 곤두박질치고 무성했던 여름 이파리들은 시들어 뿌리로 돌아간다. 만물의 조락(凋落), 움츠러드는 몸. 세월은 덧없이 흐르고 그럴수록 초라해지는 자신. 속절이 없는 허무와 무상. 세월이 이런 것인가. 시간이 이런 것인가. 나는 무엇인가. 제대로 살아왔는가. 살고 있는가. 이대로 괜찮은가. 겨우 이것뿐인가. 남은 시간 남은 세월은…. 자문자답이 없을 수 없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왔다 하더라도 일말의 후회는 남기 마련이다. 더 열심히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더 진실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을은 열매로 마침표를 찍고 열매는 완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열매는 미래다. 열매가 야물고 충실하면 미래는 일단은 보장된 것이고 부실하면 미래도 부실할 수 밖에 없다. 헛 열매라면 미래는 없다. 그리고 또 이런 의미에서 가을은 되돌아보는 계절이고 되묻는 계절이다. 혹독하게 살피고 검증하고 후회할 것이 있다면 철저히 후회하라고 충고해 주는….

검증과 후회는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국가 인류사회 전체가 그렇다. 생각해 보면 10월 어간만 해도 불쾌하고 씁쓸한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국회의원들의 국정감사만 해도 그렇다. 호통치고 다그치고 눈을 부라리고…. 본인들은 그렇게 함으로 한건 했다고 흐믓해할지도 모르지만 도대체 국민이 언제 그런 무례를 저질러도 좋다는 권리를 주었단 말인가. 온갖 무례와 천덕스러움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그 천박함이라니.

그리고 노벨상도 그렇다. 행여 하다가도 역시나로 끝나는 해마다의 씁쓸함. 더구나 해마다 줄줄이 수상하는 이웃나라 일본이 있고보니 씁쓸함은 배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위해 심은 것이 없으니 거둘 것도 없다는 이치를 모를리 없지만 사람의 기분이 어디 그런가.

그러나 뭐네 뭐네 해도 이 가을 씁쓸함의 압권은 평양에서 벌어진 10월 10일의 열병식이다. 알려진대로 북한은 이를 위해 전 국민이 일년동안 먹을 수 있는 양식값 만큼은 썼다고 한다. 중국이 동원했던 숫자의 두배를 능가하는 엄청난 인력. 무리도 저런 무리가 없겠다 싶은 그 뻗정다리 행진. 광장을 뒤덮은 붉은 꽃방망이 물결. 사실 단 한가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저런 요란을 떨어야 하는가. 중국이나 러시아라면 그래도 이해가 간다. 그만큼 힘이 있고 기술력이 있고 나름의 비전과 자부심이 있을수 있기에. 하지만 세습 독재 말고는 세계속의 최빈국으로 전락하여 여기저기 손벌리기에 바쁜 북한이 아무리 대내용이라고 하지만 저토록 낭비적인 열병식에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손바닥만큼이나 큰 금빛훈장을 배꼽아래까지 줄줄이 매달고 도열한 장군들. 저 장군들은 자신들의 그런 모습이 실제는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창피한 것인가를 단 한사람이라도 알고 있을까. 그리고 또 미친듯이 열광하는 평양시민들. 그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최고 지도자 김정은이 진짜 어떤 존재인가를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정말 아무리 폐쇄국가라 하더라도 요즈음 세상에서 전 국민이 세뇌되어 한 모습으로 울부짖는 일이 가능한가.

미안한 이야기지만 평양시민의 머리속에 생각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자유국가들 가운데는 말만 남아 있을 뿐 전 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거창한, 그러나 사실은 유치하고 촌스럽고 무식하기 짝이없는 군사놀음 열병식.

그러하다. 그러잖아도 계절 자체만로도 자칫 비감스러운 가을. 그런데 국내외의 여러 현실까지도 우울에 우울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계절의 허무함과 비애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다시금 들여다 본다는 사실은 또 얼마나 큰 축복인가. 다시한번 말하고 싶다. 이 가을 다시한번 되돌아 보라. 당신의 내면을. 그리고 우리 인간 모두의 현 주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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