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개혁의 출발은 아라비아, 터키,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영토를 마음에 두고 그 땅들을
소유하고 있는 이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대속사 신학의 완전을 준비하는 일이다

 

 

 

1517년 10월 31일 시작된 종교개혁 운동은 신학적인 엄밀성으로 볼 때, 1525년 12월 취리히 쯔빙글리의 7제자들이 ‘재세례 선언’으로 제2 개혁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칼빈의 등장으로 조정기에 들어가면서 유럽은 제1, 또 제2의 종교개혁기가 병행 발전했다. 제1 개혁기의 ‘믿음의 의’마저도 후진국에서나 용을 쓰는 정도이지, ‘믿음’이라는 바울의 용어는 복합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믿음만으로 구원’이라는 구호는 하나의 감탄사로 처리하고 있다.

오늘의 기독교는 아시아와의 만남을 제때에 이루지 못해서 하나님의 완전한 논리신학 발굴에 뒤늦었다. 이는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유프라데스 언덕인 ‘에뎃사’로 설정함으로 아시아 문화와의 만남에 실패한 내면적 사안도 있다.

본디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는 팔레스타인, 페니키아(레바논), 수리아, 즉 지중해 동편 해변부터가 아시아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이 아시아요 활동하신 갈릴리 또한 아시아이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억지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아라비아와 페르시아라는 거대한 영토는 물론 터키 공화국의 97%에 해당하는 영토인 아나톨리아도 결과적으로 이슬람에게 빼앗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기독교의 제3 개혁은 아라비아, 터키,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영토를 마음에 두고 그 땅들을 소유하고 있는 이슬람을 형제로 다시 맞이할 수 있는 뛰어난 흡인력, 그들 이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대속사 신학의 완전을 준비하는 일이 그 출발점이다.

이 문제를 거론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기독교 개혁을 들먹이지 마라. 거기에는 속임수와 무지만 있을 것이다.

기독교는 유다 이스라엘을 반드시 승계하도록 되었으나 바벨론 포로기에 성급한 유대인들이 북왕조 10지파를 버리고 사마리아에 침을 뱉어버림으로 실패했으며, 메시아 예수가 오셨으나 기독교는 로마제국 떡고물에 눈이 어두워서 아라비아의 반역과 페르시아의 배반을 눈치 채지 못했다가 망신살이 뻗친 것이다.

기독교여, 이슬람의 현재 모습을 보면서 저게 바로 기독교의 수치요 무지의 결과라는 깊은 뜻을 감지하지 못하는가? 바로 그게 ‘평토장한 무덤 같은 너희여!’라고 예수께서 하신 욕을 먹어야 할 사람 중 하나가 나 자신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지금 시간이 없다. 떠밀려서 개혁의 마당을 열든지 아니면 파산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윤리적인 치장이나 하면서 이것도 개혁이거니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시간만 앞당기는 줄 알고 차라리 나는 무지하여 도무지 아는 바가 없다고 함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맨발로라도 동창을 열어야 한다. 해가 정오처럼 밝은데 촛불 켜고 제사 드리는 식의 기독교 노릇 하고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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