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광섭창현교회 담임목사

참으로 오랜만에 먹을 찾아 벼루에 갈았다. 하얀 화선지를 펴고 정직, 성실, 사랑이라고 쓰고 낙관까지 찍었다. 이 세 단어는 아버님이 평생을 간직하시며 사셨고 어릴 때부터 아버님께 수없이 들었던 가훈이다. 아버님께서 하늘로 부르심을 받으신지 10년이 되었다. 가족과 직원들이 모여 추모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붓을 들었다. 아버님이 늘 쓰셨던 설원재단 사무실에 걸어 두기를 바라며 붓으로 쓴 가르침을 보냈다.

어쩌다 불편한 인간관계를 겪을 때면 내 안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단어가 있다. ‘나쁜 사람’이다. 어느 날 핸들을 잡고 운전하다 위험한 순간을 맞이하고는 욕을 했다. ‘저런 나쁜 사람.’ 나쁜 사람이라는 표현은 아버님이 쓰시던 것이다.

어느 정당에서 내다 건 현수막에 “…나쁜 대통령”이라고 써 있는 것을 보았다. 분명 나쁜 사람이 있다. 나쁜 사람은 되도록 안 만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인데 만남을 피할 수 없고 만나는 사람을 구별하기가 어디 쉬운가? 살며 조심하고 내가 너에게 나쁜 사람 되지 않게 살자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화려하고 듣기에 좋고 무엇인가 그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설득력의 언변도 있지만 가까이 하기엔 그 모든 생활 모습이 바르지 못하고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아픔을 주며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한다면 그는 분명 나쁜 사람이라 해도 될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수 없도록 해를 끼치는 사람,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조직을 만들어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다른 사람의 명예와 생명까지도 빼앗으려 한다면 그는 분명히 나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지도자랍시고 정면에 나타나 중심인물로 보이는 게 안타깝다.

그런데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이라는 판단을 하기에 분명하고 선명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선인들은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고 말을 빨리 하지 말라고 했나 싶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엔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쁘지 않은데도 나쁜 사람으로 불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감히 그 차이를 헤아려 보지 않고 단죄할 수 있을까? 한 시대를 같이 살면서 자신의 바람대로 되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이나 조직과 역사들을 단죄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평가를 하고 있는 그 사람(단체)의 됨됨이가 문제가 된다.

나쁜 사람이라고 불리는 그 사람을, 그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알지 못해서는 아닐까? 그의 선견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가 제시한 삶의 목적과 방법이 때에 맞지 않다고 여기며 거부당한 것은 아닐까? 혹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걸림이 된다고 그 불편한 것을 견디지 못하여 다른 사람을 자신의 경쟁 대상으로 보고 없이 하고 싶어서 낙인을 찍는 것은 아닐까? 한 시대를 살고 났을 때 세상으로부터 잘한 일과 못한 일이 분명하고 바르게 평가될 것이다. 그 평가는 그의 값일 것이다.

기다리기에는 지금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은 과거의 결과요 동시에 지금은 미래에게 영향을 준다. 지금은 우리의 책임이다. 이제부터 어찌 살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지금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책임이다. 그러기에 살아서 바로 하자. 지금을 바르게 살게 하자. 너와 나를 살게 하지 못하는 것을 향하여 침묵하거나 용납하거나 피해서는 안 된다. 생명을 생명으로 대접하지 못 하게하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 받지 못하게 하는 개인이나 단체나 사상이나 이념을 가진 나쁜 사람으로부터 나쁜 사람이라는 평가와 소리를 듣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할 것이다. 막아야 한다. 아니 싸운다는 표현이 과하면 묵묵히 그 길을 가자. 하나가 둘이 되고 무리가 되어 살만한 세상을 이루어 나아가는 힘이 돼야 할 것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힘이 커지기를 바라며 살아야 할 것이다.

멈추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숨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죽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아니 하고자 하는 그 일들을 잠깐 멈추어 보자. 그리고 보자. 죽지 않거든 포기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멈추면 안 될 그것을 멈추게 하는 그 어떤 힘 앞에서는 맞서야 할 것이다. 죽음의 세력과 문화 속에서 생명살림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죽음이 가로막을 수 없는 그 일이 바로 하늘의 일이다. 매일을 사는 것이 하늘의 일이요, 세속의 모든 일들이 하늘의 일이다. 역사의 일이 다 하늘의 일이다. 그 사람들의 삶은 하늘의 역사를 일구는 하늘의 사람의 역사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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