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성 선교사의 ‘발로 쓴 선교 이야기’ 103

   
▲ 예장합동 총회세계선교훈련원(GMS) 원장

교단의 선교전략회의를 위해 이스라엘에서 모였다. 모처럼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그간 이스라엘과 가까운 지역에 살면서도 성지순례 한번 못했다. 회의 마지막 날 시간을 내어 베들레헴을 방문했다. 아기예수 탄생(수태고지) 마을인 베들레헴을 방문하며 감동이 되었다. 수태고지를 나오며 헤롯 궁전(여름별장)을 둘러보았다. 궁전은 아름다운 오닉스(Onyx) 대리석으로 덮여 있었다. 한마디로 호화찬란한 궁정이었다.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초라한 마구간에 탄생한 아기예수와 헤롯의 여름 별장이 대조를 이루었다.

미가 선지자(BC 739)는 이미 아기 예수가 유대 베들레헴에 탄생하실 것을 예언했다. ‘베들레헴 에브라야 너는 유대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 5:2). 여기서 미가 선지자는 ‘작을 지라도’의 개념을 지리적으로 설명했다.

마태 기자는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달리 표현했다. ‘또 유대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라’(마 2:6). 마태는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의 표현을 신분적 개념으로 보았다.

구약 미가 선지자 시대도 유다 베들레헴은 작은 고을이었고 오늘날도 예루살렘이나 텔아비브에 비해 베들레헴은 작은 도시이다. 그런데 왜 저자 마태는 의도적으로 이런 표현을 했을까? 마태의 의도는 예수님 탄생이 어떤 물리적 변화를 가져 왔다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고 아기 예수가 마구간에서 천한 신분으로 탄생하셨지만 본래는 고귀한 신분이셨음을 표현코자 했다.

2015년 성탄을 맞으며 낮아지신 아기 예수님을 묵상해 본다. 아기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 된 고귀한 신분이셨다(빌 2:5~11). 그가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신 것은 부요하신 분이 스스로 가난하게 되신 것이다(고후 8:9).

핵심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시기에 잠시 탄생한 장소라도 무게 있는 곳이 된다. 인류의 어느 곳이든지 그리스도가 역사한 곳은 작은 곳이 작지 않은 곳이 된다. 인류의 어디든지 그리스도인들이 머무는 장소는 무게 있는 곳이다. 천한 사람들이 위대한 사람들이 된다. 보잘것없는 도시가 위대한 도시로 변한다. 죄인들이 의인으로 변한다. 절망과 고통이 기쁨과 소망으로 변한다.

예수의 제자들은 세상적으로 보면 작은 자들이었다. 이런 작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이 전해졌다. 작은 제자들이지만 예수님 자신이 작지 않은 분이기에 위대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다. 세상사람들 눈에는 작고 초라하게 보이지만 예수를 믿음으로 작은 자들이 아니다. 예수님 자신이 위대한 분이기에 그를 믿는 우리도 위대한 존재다. 작은 고을이 예수님이 위대하시기에 작지 않은 고을이 된 것처럼 하나님 자녀들은 신분 낮은 존재가 아니라 위대한 존재들이 되었다.

목사나 선교사들은 작지 않게 살아야 한다. 주님을 모시기만 하면 작은 사람들이 작지 않은 사람들이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사람이 된다.

성탄절을 선교적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선교사가 작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주님이 작지 않기에 그분의 존재감으로 인해 무게감 있게 살아야 한다. 주님이 능력이 있기에 그분의 능력으로 힘 있게 살아야 한다. 주님이 강하므로 우리 역시 힘없는 자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강함으로 강하게 살아야 한다. 복음은 견고한 진을 파하는 능력이다. 주님이 계시면 작은 곳이 작지 않은 곳이 된다. 다가오는 2015년 성탄절은 작지 않게 맞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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