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65

“하늘나라가 너희 안에 있도다. 극락정토가 여길세. 하핫하….”

유승이었다. 유승이 돌아왔다. 페르시아 황태자를 모시고 서라벌로 떠났던 알로펜의 제자 유승이 돌아온 것이다. 몇 년 만인가. 그는 호기 있게 외치면서 대진사로 찾아왔다. 많이 달라졌구나. 황제의 은총인가 하늘의 축복이었을까. 유승은 그저 유쾌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알로펜의 당나라 선교 초기를 떠올려보면 오늘의 대진사는 지나치게 화려하다는 느낌이었다. 우선 일개 교회 본부 입구인데 대감 집 높은 대문보다 화려하고 그가 보아온 서라벌 궁성 출입문에 뒤지지 않았고 그가 서라벌로 떠날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낯설었다. 대진사 교회 본부 입구에 들어서면서 그는 다시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는 그의 등에 매달고 있는 늙은 소의 불알 같은 바랑에서 방울 하나를 꺼내서 흔들면서 외친다.
“하늘나라 너희 안에 있도다. 극락정토가 여기로다 호홋….”
신바람이 났다.

그가 흔들어대는 방울 소리에 오리봉 숙소에서 내려오는 오삼 수도회 사람들과 마주쳤다. 수도사는 세사람이다. 한 사람은 늘 심각한 표정을 짓는 에뎃사의 도마이고, 두 사람은 이름은 생략하고 자신들을 퇴물 또는 고물로 불러달라고 우겨서 그들 소원대로 불러주는 이들이다. 에뎃사의 도마가 유승의 누더기 옷을 입은 모습을 위아래 훑어보면서 그를 불러 세웠다.

“거 늙은 거사여! 어디서 왔으며 어디를 찾으시는고?”
“허어, 뉘시던가? 모르는 객이로군. 나 유승이오. 주교님은 천국으로 가셨고, 늙으신 마리아 교수가 있겠구먼. 가서 유승이 서라벌에서 돌아왔다고 전하시게….”

유승은 거칠 게 없었다. 상대가 시비를 걸어 주었으면 하는 언사를 뱉어내고 선 자리에서 뱅글뱅글 몸을 흔들어본다. 그가 걸친 황톳빛 낡은 가사가 멋대로 펄럭였다.
도마는 두 친구를 향하여 살짝 웃으며 엄지손가락으로 자기 오른쪽 머리통을 두어 번 찌른다. 머리통이 고장 난 늙은이 같다는 표현인 듯 했다. 동료들도 웃었다. 인생 퇴물이라는 극한의 겸양으로 자기들을 표현하고 싶어서 애쓰는 사람들이니 유승의 거들먹거림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도마가 쿰바홀이 있는 곳으로 유승을 안내했다.

도마의 전갈을 받은 쿰바홀이 밖으로 나온다.
“뭐, 유승이라고….”
쿰바홀과 유승이 마주쳤다. 쿰바홀이 뒤로 한 발 물러서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지 행색의 유승의 겉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어찌 그러시오. 내가 뭐 천사로 보였나요. 나 유승이오. 유승!”
“어 그렇지. 유승 사제. 언제 돌아왔어요. 그리고 행색이 왜 그 모양인가?”
“허어, 겉껍데기에 뭐 이렇게 신경을 쓰십니까? 이 험한 세상에서 이 정도로 살아남은 것도 하늘의 은혜요
부처의 복락이지. 안 그렇소.”

“…….”
쿰바홀은 금방 머리를 굴렸다. 이 친구가 승려생활 하다가 알로펜 총주교의 제자가 되면서 개종했었는데 이제 다시 불교 사람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왜 그러시오. 갑자기…, 내가 반갑지 않으시오.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를 말이죠.”
“그래, 일단 들어갑시다.”
쿰바홀이 유승을 안내했다.
유승 곁에 도마가 가까이 가면서 한마디 했다.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으나 쿰바홀 님은 우리의 존경하는 주교님이시오. 예의에 벗어나면 피차 곤란하지 않겠소.”
“왜요. 뭐더라…. 엉. 도마 선생. 나는 말이죠….”

“어허, 꿈꾸지 마시고 대접받고 싶으면 공손해야지.”
에뎃사의 도마는 짜증스러웠다. 자기가 우리 교단에서 언제부터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그의 복색이나 말솜씨가 단정하지 않다고 보았다. 옛날 성질대로면 한 번 쥐어박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도마가 씹어뱉듯이 한마디 한 뒤로 유승은 안색이 어두워진다. 그러나 그때 쿰바홀이 유승에게 상석을 권하면서 새롭게 인사를 하자 다시 밝고 호탕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유승 사제, 낯선 곳에 가서 얼마나 고생 많으셨소. 아무나 못 가는 곳에 가셔서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느라 참으로 수고 많으셨어요. 알로펜 총주교님이 계셨으면 얼싸안아 주셨을 터인데….”
“그래요. 연수가 많으셨으나 일백 스물까지, 모세의 연륜에 버금할 알로펜 그 어른의 은혜를 많이 입었지만 쿰 주교님 말씀을 듣고 보니 내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후회가 있구려. 오히려 지금은 알로펜 주교님께나 대진사의 모든 이들에게도 송구하고요.”

“뭘, 그런 말씀을….”
“아니오. 나는 예수님께도 죄를 지었다는 느낌까지 있어요.”
“…?”
쿰바홀은 유승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유승의 행색을 떠올려보니 무슨 몹쓸 병이 들었다가 알거지가 되었거나, 또는 살다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아이고, 내 신세야!”

유승은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쿰바홀은 용기를 냈다. 유승을 위로하느라고 말이다.
“유승 사제, 혹시 무슨 어려움을 당한 것은 아니지요?”
“네? 무슨 말씀….”
“아니 저, 혹시 여행 중 어려움에 처해 남의 물건을 훔쳤다거나….”
“저런, 저저저…, 무슨 날벼락 같은 말씀이시오. 내가 유승입니다. 이 하늘 아래서 이 사람이 그런 잡놈일까 하는 짐작을 하시다니….”

“아니오. 아니면 됐어요. 그런데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으신가?”
“나는 이제는 사제가 아닙니다. 기독교 울타리를 벗어났습니다. 기독교나 불교까지도 나를 더는 좋은 곳으로 이끌지 못했어요. 두 하늘을 다 합해야만 내 가슴을 채울 수 있단 말입니다.”
두 사람 곁에서 오가는 말을 듣고 있던 도마가 침을 뱉듯이 말했다.

“이 사람 정신병자로구먼.”
도마의 냉소에 찬 말을 들은 유승이 한바탕 웃고는 도마 가까이로 다가와서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잘 보셨소. 내가 생각해도 나는 미친 겁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예수를 잡아먹고 또 석가를 잡아먹을 수 있겠어.”
유승이 자신감 없는 말로 횡설수설할때 영부 주교가 쿰바홀의 방으로 들어왔다.
“유승 사제가 오셨다고요. 쿰 주교님!”

영부가 들뜬 목소리로 말할 때 유승이 먼저 그를 알아보았다.
“야, 영부. 너로구나. 나야 유승 아저씨야.”
유승이 영부 주교를 얼싸안는다. 영부도 반갑게 유승을 껴안고 등을 두드렸다.
도마가 영부 주교 앞에서 무례한 행동을 한 유승을 한쪽 구석으로 밀쳐 버린다. 유승은 힘없이 뒤로 몇 걸음 물러서다가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다.

“도마 수사님, 무슨 일이십니까? 유승 사제는 내게 숙부가 되는 분이시오. 어서 사과하세요.”
“네, 사과는 하겠습니다. 그러나 숙부라 해도 주교님은 당나라 기독교 안에서 최고 어른이신데 숙부라는 사람이 함부로 처신하면 안되지요. 주교님, 저는 주교님을 예수님만큼 섬기는 예로 대하는 자세가 옳다고 봅니다.”

“옳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이 놈이 숙부인지 잡부인지는 계산해봐야 알 일이고 오늘 내 행동은 잘못되었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유승 숙부는 신라 땅 선교사로 파송되었다가 십년이 훨씬 더 되는 동안 활동하다가 오셨어요. 자 자, 우리 모두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 합시다.”

영부는 유승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자리를 권했다.
“주교님, 저는 영부 주교님은 물론 알로펜 주교님 앞에 큰 죄를 지었어요. 저는 신라로 떠날 때의 유승이 아니라 지금은 예수와 석가를 같은 진리의 구세주로 생각하는 길 잃은 구도자라고 해야 합니다.”
“허, 거 무슨 말씀! 유승 숙부는 불교를 떠나 우리 하나님께로 오신 분이시잖습니까?”

“그렇지, 그건 맞지요. 그러나 진리는 오고 감에 있지 않고 처음 그 자리에 있어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더군. 영부 주교! 내가 처음 서라벌에 갔을 때 서라벌 불교의 큰 인물을 만나서 사귀었지. 그 사람이 아마 지금쯤 장안에서도 소문이 나 있을 거야. 원효라고, 대단한 고승이지.”
“그래 그 원효승이 불교와 기독교를 왔다 갔다 하는 승려입니까?”

도마가 유승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말했다.
“어허, 도마 수사. 이 자리에서는 그럼 안 되시죠.”

쿰바홀이 눈을 흘긴다.
“이 자리니까 말할 수 있어요. 저런 위인은 당장 여기 대진사에서 쫓아버려야 합니다. 도무지 함께 어울리기 힘든 인간이군요.”

그는 영부 주교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밖으로 나가 버린다.
“유승 숙부님. 내가 대신 사과하죠. 도마 수사의 성깔이 지나친 점을 용서해 주세요.”
영부 주교가 유승의 두 손을 맞잡으며 다시 말했다.

“원효 이야기는 현장법사 쪽에서 더러 하더군요. 그러나 그는 불교의 학덕이 있는 승려입니다. 그의 구도적 능력만큼 존경하면 되는 것이고 우리 기독교는 기독교 방식으로 하나님을 배워 가면 되지 않겠어요.”
“그래요. 내가 너무 서툴렀어요. 체통 없이 말을 함부로 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오랜만에 우리 옛 친구를 만나고 우리 교단을 다시 찾아오니까 고향집에 온 감정이었나 보죠.”

쿰바홀의 이 말에 유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놈은 아직 멀었어요. 나이를 헛먹었지.”
“뭘 그렇게 자책이 심해. 당신 쿰바홀 주교에게 한 번 혼나봐야 하겠군.”
“네, 혼쭐내 주세요. 아마 알로펜 주교님이 계셨으면 매 좀 맞았을 겁니다. 아 참, 제가 신라를 떠난 지는 1년 전쯤 되었고 ‘신라방’에서 선교활동을 했어요. 그곳에는 신라는 물론 백제나 고구려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영부 주교께서 ‘신라방’으로 선교사를 파견해 주면 좋을 것입니다. 서해안을 따라서 당나라 남쪽으로 이어가는 곳으로 선교를 과감하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이구, 정신이 좀 드는가? 또 석가모니까지 동원하자고 하지는 마시오.”
“글쎄요. 제가 석가모니 사상과 예수님의 가르침의 일치점을 발견한 이상 제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두 분의 세계는 한 자리에서 만나야 한다는 확신은 쉽게 버리지 못할 것 같거든요.”

“그래요. 유승 숙부의 지금 그런 성격을 나는 좋아해요. 솔직하거든요. 그런데 불교가 기독교와 유사성을 가졌다는 말은 좋으나 결국 불교는 미완의 작품입니다. 보다 일찍이 태곳적에 하나님은 불교의 탄생지인 천축국은 물론 인류의 고대 원시의 때부터 하나의 가르침을 주셨는데 그 중심에는 예수가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친 아버지로 섬겼어요. 그리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석가의 가르침이나 당나라의 조상들이 말하는 공자나 노자 등 많은 선생들이 모두 석가와 동급의 소승들이죠. 그러나 그들은 선생이고 스승일 뿐입니다. 유승 숙부가 매력 있는 고승으로 확신하는 원효에 대해서 저는 알로펜 총 주교님께 배웠습니다. 그때 총 주교님이 유승 숙부가 원효를 만났을 터인데 그 결과가 궁금하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요. 총 주교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작가 조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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