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66

알로펜은 천재로구나, 내가 원효를 만난다는 생각이야 서라벌에 사는 원효이니 어지간하면 만날 수 있다할 수 있으나 내가 원효가 풍겨내는 불심(佛心)을 이겨낼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유승은 가슴이 철렁했다. 천만리 먼 곳에서도 내 마음을 손바닥 보듯이 지켜보았다는 알로펜이면 지금 하늘나라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눈초리도 매섭지 않겠는가. 그는 두 손으로 머리통에 뒤집어 쓴 벙거 매만지면서 오리봉 주변을 거닐고 있었다.

가을 밤 바람이 시원하고 한가롭다. 밤새 몇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서 푸드덕 거리기도 한다. 미안하구나. 나도 너희들 곁에서 쉬고 싶어서 잠자리 보러 다닌다. 나를 방해자로 생각지 말고 편히 쉬거라.
주변 어둠을 헤치면서 두리번거리는데 저만치서 두 사람이 올라오고 있었다. 유승은 대진사 사람들이 자기를 찾아온다고 직감했다.

“거 누구들이시오. 나 유승이오만…”
“네, 저희는 요수아와 시몬입니다. 밤 날씨가 을씨년스러운데 어디 계시나 하고 나왔습니다.”
“오, 그래요. 나 같은 걸레승을 뭐가 대단하다고 신경을 쓰시나….”
유승은 대진사의 젊은 사람들이 조심스러웠다. 성급하게 찾아왔다고 후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기가 알레폰을 따라서 서역을 지나 당나라에 입성한 후 지냈던 초창기의 분위기가 그리웠는데 아니었다. 대진사의 경교라 할까, 알로펜 시대의 분위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쿰바홀 주교나 영부 주교도 전과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 자신이 전과 같은 모습이 아니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석가나 예수가 뭔가, 그들이 무엇이기에 서로가 만나면 불편해 질까. 그 불편이라는 것이 시셈이나 아집이 아닐까. 서로 친구 되기는 힘든 것일까?

유승은 요수아의 시몬을 따라서 ‘오삼수도회’ 사무실로 왔다. 요수아가 차를 한 잔 내 오면서 그들 셋이 마주 앉았다.
“저희들은 유승 사제를 잘 모릅니다. 서라벌에 선교사로 가셔서 활동하신다는 말씀만 듣고 부러웠습니다. 저는 요수아, 이 사람은 시몬입니다. 뵙게 되어 기쁩니다.”

“허, 그래요. 나는 반가운지 뜨거운지 잘 모르겠어요. 선교사로가 아니라 페르시아 황태자가 이곳에 망명 와 있었는데 그 사람을 서라벌로 멀리 보내려는 당태종의 뜻에 따라서 내가 동행인으로 갔었지. 그곳에 가서 놀다가 천하에 잡놈도 같고 진리를 아는 구도자도 같은 인물 하나를 만났는데 그 사람 때문에 내 마음에 병이 들었지. 난 지금 병자야, 그래 내게 참 인간의 길을 가르치신 알로펜 할아버지가 그리워서 발길을 옮겨 왔을 뿐 다른 생각은 없다네. 이제 나는 당신들의 대진사를 떠나서 바람 따라 흘러 갈걸세.”

유승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유승을 만류하는 요수아와 시몬이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중도 아니고 속환(환속자) 이도 아닌 자가 횡패를 부린다기에 달려왔으나 유승은 잠시 길을 잃은 예수의 양이었다. 시몬이 요수아의 눈치를 살핀다. 가십시오 하면서 문을 열어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들에게는 대 선배가 되는 유승사제에게 뭐라고 훈계를 할 수는 더욱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보내줄 수도 없었다.

그러는 때에 마침, ‘오삼수도회의’ 도마가 사무실로 왔다.
“이 어르신 아직도 떠나지 않으셨네. 내 생각에는 빨리 사라질수록 체통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말이지. 안 그래요. 요수아 사제님!”

“도마 수사님, 말씀을 삼가서 하세요. 이 어른…”
“아, 이 어른인지 그 어른인지 나도 그 사정 들어보았지요. 그러나 줏대 없는 사람에게는 나눠줄 은총이 없어요. 그렇잖아요. 시몬 사제님!”

“이 보시오. 낮에는 내가 영부 주교님 앞이라 참았으나 당신은 애비나 형님도 없어…?”갑자기 유승이 에
뎃사의 도마를 향해 울부짖듯이 말했다. 도마가 주춤하더니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두 사람 모두 힘깨나 쓰는 몸을 가졌다. 다만 오십대의 도마에 비해 스무 살쯤 더 많은 유승사제로서는 완력으로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애비나 형님도 없느냐는 유승의 말에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도마가 주춤하고 있었다.

“어허…, 내가 좀 심했나? 나는 실패한 사람이지만 그대는 영부 주교님의 가르침을 잘 받아서 성공해야지. 물론 나도 주님의 남겨두신 기회가 있지 않겠나. 내가 나 자신을 너무 과신했어. 또 나는 아직도 예수님의 제자라는 믿음을 한편으로는 가지고 있어요. 다만 서라벌 여행에서 경험한 불교의 가르침이 내게 무엇이 되어줄 것인지는 아직 내가 몰라요. 또 아직은 정돈되지 않은 내 생각을 아무 곳에서나 지껄이지는 않아요. 대진사는 시집살이 하다가 친정에 온 딸이 어머니 품에 기대어 투정을 하는 것처럼 생각했다고나 할까. 글쎄, 이 또한 내 인격의 절제력 부족 탓이지. 아, 나는 왜 이래야 하나….”
유승은 선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아서 두 손으로 자기 머리통을 감싸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 참 심약하기는 나잇살이나 먹은 양반이 또 원효와 사귀었다는 위인이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벌벌 떠는가요?”
에뎃사의 도마가 유승을 비웃고 있었다.
“그건 도마 수사의 말씀이 옳소. 유승 사제여, 저는 사마르칸트의 요한 주교님으로부터 달마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달마나 원효는 석가모니 시대의 유마거사의 환생에 지나지 않는다 하셨어요. 혹시 유마 거사 이야기를 원효로부터 들은 바가 있습니까?”

요수아가 작심을 한 듯이 유승 사제의 심약한 모습에 일침을 가했다.
“글쎄, 들은 것도 같고 못들은 것도 같구먼. 그런데 사마르칸트의 요한 주교가 누군가요?”
“네, 저의 장인도 되시거니와 사마르칸트를 비롯한 중앙아시가 교구책임을 지고 활동하시다가 하나님 품으로 되돌아 가셨죠.”

“아하 그래요. 그런 분이 우리 교단에 계셨더란 말인가?”
“네, 요한 주교님은 우리들의 알로펜 총 주교님의 제자이기도 하십니다. 아마 영부 주교님은 당나라 낙양 땅에 뿌리내린 달마선사는 물론 현장법사나 원효 같은 불교의 인물들을 잘 알고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만….”

“그래. 그러면 내가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유승이시여. 그대는 겁쟁이에다 위선자올시다. 겨우 그 정도의 뱃심으로 하늘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 극락정토가 여길세, 하면서 혹세무민적 발설을 하고 다녔소이까. 나 말이오. 나는 에뎃사 출신 사제입니다. 나도 에뎃사는 물론 니스버스에서 살았고 드디어 크네시폰 교회에서 부사제 활동도 해 보았어요. 이슬람이 페르시아를 점령하면서 우리들은 이곳 장안으로 흘러들어 왔으나 박트리아에 머물 때 보니까 불교나 마니교, 그리스 철학이 뒤섞여 있을 때도 종교인들 간에 큰 충돌이 없이 살고 있더이다. 그들 중에 똑똑한 사람들은 우리 기독교 사람들이었소. 조금 전에 요수아 수사님이 거명한 유마거사는 나도 박트리아에 머물 때 배웠어요. 석가모니와 쌍벽을 이룰 만큼 존경을 받던 인물로써 석가의 제자인 듯하면서도 석가의 친구였다더군. 유마 앞에서 석가의 제자들은 쩔쩔 매기도 했거니와 그의 뛰어난 인물됨은 타인들이 쉽게 범접하지 못했다더군요. 이 세상 사람들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하면서 세상의 고통을 회피하지 않았던 지도자라더군요. 괜히 혼자서 뭘 좀 알았다는 듯이 거드름 피지 말고 우리들의 예수를 다시 배우시오.”

유승이 요수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체벌 받은 중학생이 선생님 앞에서 쩔쩔매는 꼴을 하고 있었다.
“그럴 필요 없소. 내가 보기에는 유승 노인은 복음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구도의 기초부터 다시 준비하세요. 허세와 멋, 그게 모조리 위선 아니겠소. 만약 원하신다며 내 조수가 되어 다시 공부하시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여기를 당장 떠나도 됩니다. 어디 가서 알로펜 제자라는 말은 입 밖에 내지도 말고…”
도마가 작심을 한 듯 내 뱉는다.

“감사합니다. 나 오늘 이 시간부터 도마 선생 밑에서 다시 예수공부를 하겠습니다. 나를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수아와 시몬이 유승사제를 일으켰다. 내내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던 시몬이 유승사제를 가슴으로 껴안으며 그의 등을 쓸어준다.

다음날부터 유승은 ‘오삼수도회’에서 어울리며 그들보다 부지런히 청소는 물론 식당 번을 계속해 가고 있었다. 그는 나머지 시간에는 골방이나 뒷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일에 정성을 쏟았다. 도마 이외외 어느 누구와도 말을 나누는 것을 꺼렸다. 쿰바홀 주교와 마주치는 것도 꺼렸다.
며칠 후 영부 주교가 요수아와 시몬을 불렀다.

“두 분이 유승 숙부를 잘 보살펴 드리고 있지요?”
“그럼요. 보살펴 드린다는 말이 적절하지 않아요. 유승 사제가 수도회에서 어울리면서 수도회가 활기를 보이고 있어요. 그런데 유승 사제 문제가 아니라 수도회 규칙을 수정했으면 하는 의견들이 조심스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뭐가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53세가 되면 각자 가족들 간의 생활을 청산하고 ‘오삼수도회’에 입소하여 사는데 부부가 함께 사는 이들과 혼자 사는 이들이 뒤섞여 있어서 불편이 느껴진다고 하거든요.”

“그래요. 그럴 필요 없는데 왜 그러죠. 수도회라고 호칭을 하니까 로마제국 풍습을 떠올리는 모양이죠. 우리는 로마교회 수도원의 상위 단계의 수준을 지향합니다. 수도회라고 해서 부부가 함께 합방을 하면서 생활하는 것을 꺼리거나 거북해 할 필요 없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진리를 온 몸으로 배우고 익히기 위하여 독신자 생활이 필요하고 어느만큼 자기 인격을 책임지고 살만하면 부부가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신앙을 모범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오삼수도회’가 지금처럼 생활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주교님! 그러나 문제는 당사자들입니다. 수도회 자치적으로 판단하게 맡겨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요수아의 말에 시몬도 동의했다.
“글쎄, 그래도 되겠지요. 그러나 우리 교단의 ‘오삼수도회’는 인생의 노년기를 좀 더 지혜롭게 살자는 것이니까 너무 엄격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러나 평생을 혼자 살기로 작정하신 분들도 생각해야지요.”
요수아의 말이다.
“요수아가 일찍 결혼한 것이 주교님 앞에서 죄송한가봐요.”
시몬이 요수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주교님만큼 큰일 할 제목이 못되니까 결혼을 했어요.”

“저런, 거 무슨 말씀, 나 아직 결혼한다 안 한다를 결심하지 않았어요. 결혼한다고 주교생활 못하나요. 요수아 장인 되신 사마르칸트 요한 주교는 나보다 훨씬 훌륭하신 분이지만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 요수아 같은 사위를 두셨잖아요.”

영부 주교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다위드 같이 총명한 2세를 선물로 받은 일도 결혼한 자의 축복이지.”
시몬이 요수아를 놀리듯이 말했다.
“시몬! 주교님 앞에서 꼭 이러긴가요?”

“두 분이 싸울라. 자 정리합니다. 복음의 사람이 주 예수께 헌신하는 일에 결혼의 유무와 상관이 없으며, ‘오삼수도회’회원들이 부부가 같이 살거나 떨어져 사는 일 또한 자유롭게 하되, 성경의 말씀을 따라 부부가 같이 살면서 기도하는 시간만 따로 생활하면 좋습니다. 또 ‘오삼수도회’와 젊어서부터 수도생활을 하는 경우도 생활공간에 영향을 받을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주교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유승사제가 참 훌륭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어른 때문에 ‘오삼 수도회’가 많이 밝아졌어요.”



조효근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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