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이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느니라. 그럼 주여 그 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소서. 그래, 그럼 그럴까?

내가 문(?)이라 함은 십자가를 말하는 것이다. 나의 십자가, 그리고 너의 십자가를 말하는 것이니라.

지난 밤 꿈에 주님과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요즘은 신자들이 부활신앙에 접근하려들지 않는다. 부활의 참 가치가 무엇인지를 모르면서 그리스도교 신자노릇을 하는 이들이 상당 수가 있다.

앙꼬 없는 빵이다. 앙꼬 없는 빵은 맛이 없다. 마찬가지다. 그리스도교 신앙 중에 부활을 경험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자꾸만 마지막 날의 부활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지금(Just now)이라고 하신다.

지금이다. 마리아는 지금이고,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을 고집하다가 이 자매들의 갈 길이 바뀔 수 있었다(요 11:25~28). 사람들은 마지막 날 부활을 생각한다. 늙고 병들어 중환자실에 산소 호흡기를 둘러쓰고 있다가 땅에 묻히거나 화장터를 거쳐서 가는 부활의 길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참으로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어찌 성도의 부활이 그 지경까지 떠밀릴 수 있을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니, 사람아! 너는 이 말씀을 믿느냐? 믿는 너와 나를 주 예수는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를 믿는 자들이라 하느니라.

부활 신앙은 오늘, 이 험난한 세상길에서 주 예수와 동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소중한 은혜요 은사이다. 이 은혜 아니고는 뱀들이 득실거리는 현실 속에서 은혜의 날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고난의 잔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십자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고난 받으시는 주와 함께 못 박히는 은혜를 원한다(갈 2:20). 피하려 들지 말자. 그 고난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고난을 체휼하는, 또 육화(肉化)하는 묘수를 터득해야 한다. 그 때 부활은 우리들의 현재(現在) 또는 “현재완료”가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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