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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무지로부터 공포가 생기고 증오가 폭력을 부른다”<기독교사상> 4월호 ‘이슬람의 이해-이슬람과 기독교의 평화공존은 가능한가?’ 모색
양승록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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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호] 승인 2016.04.06  12: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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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을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이들은 이슬람 신앙, 철학, 예술, 윤리의 다양하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대신 그들은 ‘꾸란 아니면 칼’과 같은 피상적 인상으로 이슬람을
환원해버린다. 타자에 대한 무지와 단순화는 인식론적 폭력이다”

 

   
 

+ 이슬람공포증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슬람의 이해-이슬람과 기독교의 평화공존은 가능한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두 종교인들 중에는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대변하듯 <기독교사상> 4월호에서는 이 문제를 특집으로 다뤘다.

오늘날 IS(Islamic State)라는 테러단체의 출현과 그들의 무자비한 폭력에 대한 내용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보수적 한국교회에서는 IS와 이슬람을 한데 엮어 적으로 규정하고, 제대로 된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고 있다. 또 익산에 들어설 할랄식품(Halal food) 단지 설립 반대 운동으로 국가 시책을 보류시키는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사상> 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평화공존은 가능한가를 묻는다. 그러기 위해선 이슬람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들을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하고, 또 현재 한국에도 적지 않은 수의 무슬림들과 앞으로도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고민하며 모색했다.

정경일 원장(새길기독문화연구원)은 이슬람 세계와 서구 사이의 갈등 내용을 보여주고, 그 역사적 뿌리를 조명하면서 정의를 위한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의 협력을 당부한다.

정 원장은 이슬람공포증(이슬람포비아)의 근원은 이슬람에 대한 무지라고 말한다.

“이슬람을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이들은 이슬람 신앙, 철학, 예술, 윤리의 다양하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대신 그들은 ‘꾸란 아니면 칼’과 같은 피상적 인상으로 이슬람을 환원해버린다. 타자에 대한 무지와 단순화는 인식론적 폭력이다.”

 

“이슬람공포증이 병적 증상인 이유는 이슬람이 1400여 년 동안 무수히 많은 인류에게 궁극적 삶의
의미와 목적을 깨닫게 해 준 위대한 종교이며, 오늘날 세계 인구의 약 4분의 1이 무슬림이라는
기본적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이슬람에 대한 무지로부터 공포가 생기고, 그 공포에서 증오와 폭력이 발생하고, 그 폭력은 다시 반작용으로서의 또 다른 폭력을 초래한다”면서 “오늘의 이슬람 안팎을 뒤흔들고 있는 테러리즘은 그런 대항폭력의 극단적 표출”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므로 폭력의 연쇄 고리를 끊으려면 먼저 이슬람에 대한 무지부터 극복할 것을 주문한다.

정 원장은 이슬람도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내적 다양성과 복합성을 보여준다며, 이슬람의 여러 얼굴, 빛과 어둠이 함께 있음을 설명한다.

“하지만 이슬람에 무지한 이들은 이슬람을 하나의 얼굴로만 보고, 그 시선도 늘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에 둔다”며 “그들은 소수 극단주이자와 다수 무슬림을 동일시하고 이슬람을 테러종교로 낙인찍는다”고 지적한다.

이런 이슬람공포증이 병적 증상인 이유는 “이슬람이 1400여 년 동안 무수히 많은 인류에게 궁극적 삶의 의미와 목적을 깨닫게 해 준 위대한 종교이며, 오늘날 세계 인구의 약 4분의 1이 무슬림이라는 기본적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정 원장은 과격 근본주의도 이슬람의 여러 얼굴 중 하나임을 인정하고 그 얼굴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의 ‘적의 내밀한 역사를 읽을 수 있다면 그의 슬픔과 고통을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든 적대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인용하면서 정 원장은 이슬람의 성난 얼굴 뒤에 있는 슬픔과 고통의 내밀한 역사를 읽을 수 있다면 이슬람에 대한 공포와 증오는 사라지거나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원장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상호 적대 원인은 두 종교의 서로에 대한 무지와 증오에 있지만, 그리스도교 쪽의 책임이 더 크다고 말한다.

IS의 출현도 미국의 중동 내 패권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짚었다.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사담 후세인의 수니파 정권을 무너뜨리고 시아파 정권을 세우자 수니파 근본주의자들의 좌절감과 분노를 불러 일으켰고, 그들이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의 극단주의 수니 세력을 규합해 IS를 탄생시켰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정 원장은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고 살해하는 오늘의 이슬람 테러리즘은 반 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반 이슬람적”이라며 “이슬람 테러리즘은 중단되어야만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또한 “폭력으로는 결코 폭력을 중단시킬 수 없다”며 폭력의 뿌리인 무슬림의 좌절과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해야 하고, 그러려면 대립이 아닌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폭력이 이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교도 십자군, 종교재판(마녀사냥), 가톨릭-개신교 종교전쟁, 홀로코스트, 노예제, 제국주의, 신자유주의의 폭력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다.”

정 원장은 종교학자 레너드 스위들러가 <대화의 십계>에서 “자신의 이상과 상대의 현실을 비교하지 말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자기 종교의 최선과 다른 종교의 최악을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비교하려면 그리스도교의 아름다움과 이슬람의 아름다움을 그리스도교의 어둠과 이슬람의 어둠을 비교해야 한다. 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 적은 친구로 바뀔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 원장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사이에는 더 건너기 힘든 교리적, 문화적 차이가 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이 한 분 하느님의 정의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분투한다면, 그 차이는 우리를 분열시키는 ‘장벽’(barrier)이 아니라 연합시키는 다리(bridge)가 될 것”이라면서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은 사랑과 정의의 한 분 하느님을 믿는 경건한 자매형제며, 가난하고 고통 받는 약자의 친구”로 친근하게 다가선다고 말했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폭력이 이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교도
십자군, 종교재판(마녀사냥), 가톨릭-개신교 종교전쟁, 홀로코스트, 노예제, 제국주의,
신자유주의의 폭력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다.”


+ 상호 배움 통한 대화 절실

한편 국제전문기자이자 <이슬람 전사의 탄생>의 저자인 <한겨레신문> 정의길 기자는 IS로 대표되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집단들의 탄생배경과 이슬람권 분쟁 내용을 담았다.

정 기자는 “이슬람국가는 아라비아 반도의 거친 사막과 이집트의 암울한 감옥에서 탄생하고 성장했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서 근대화로의 탈출구를 못 찾은 아랍의 부족 세력들과 무슬림들, 이들이 이집트의 감옥으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정권의 탄압에서 현대 이슬람주의는 태어나고 성장했다”며 “공습과 현지 병력 양성을 주축으로 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대이슬람국가 전략인 제한전은 현재 효력을 발휘해, 이슬람국가 봉쇄에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국가의 퇴치와 붕괴는 현대 이슬람주의 세력의 미래에서 한 부분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 기자는 “이슬람 세계가 전 근대적인 유제를 청산하면서 이슬람주의 세력의 실체를 인정하고 체제 내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근본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보수 기독교가 표방하는 타종교에 관한 적대감
은 무엇 때문인가에 대해 송용원 목사(은혜와선물교회)가 정통 복음주의와 현대 복음주의의 흐름을 신학자들을 통해 살펴보면서 기독교 정통 복음주의는 본질적으로 배타적이지 않다는 신학적 논의를 이어간다.

“기독교 복음과 복음주의는 ‘신과 장차 올 세상에 관한 것’에 집중하느라 ‘신과 지금 세상에 관한 것’에 실패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세상’에 살고 있다. 장차 올 세상을 위해 지금 세상에 배타적이 되는 함정에 빠져서는 곤란하다. 기독교 복음과 복음주의는 볼프 식으로 말하면, 사회적인 차원에서 의미가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다루는 과정을 통해, 비신자들을 구원에 관련한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 인도하는 방식을 지속적이고 구체적으로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

한편 한국에서 살아가는 무슬림의 숫자는 날로 늘어가는 형편 속에서 이들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이한영 외래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는 “아브라함의 반지”우화를 통해 종교 간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의 반지를 물려받은 기독교인들과 이슬람인들은 반지를 물려받았다는
자긍심만을 뽐낼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그 반지를 낄 자격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종교평화라는 목적의 달성은 어느 특정 종교만의 반성과 노력만으로는 불가하다.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등 각 종교 모두가 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모든 제반 여건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상호 배움을 위한 대화가 중요하다. 그러나 대화는 학자들만의, 전문적인 종교종사자들만의 전유물이어서는 안 된다. 종교의 평화공존을 위해서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 다각도의 노력들이 함께 병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의 반지를 물려받은 기독교인들과 이슬람인들은 반지를 물려받았다는 자긍심만을 뽐낼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그 반지를 낄 자격을 갖추어야 할 것”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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