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목회자들을 향해 말한다. “이제는 당신이 말하는 설교가 아니라 당신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설교를 보고 싶다.” 성도들이 교회 지도자들을 호텔에서 만날 때 정말 반가울까? 권위를 느낄 수 있을까? 오히려 젊은이와 광장에서 대화하는 교황이 더 친근해 보일 것이다.

 

   
평화교회 담임

권위는 사회 조직을 위해 꼭 필요하다. 아버지의 권위, 지도자의 권위, 목회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아쉬워하는 현 시대에는 정말 중요한 과제인 듯싶다. 그러나 권위하면 일단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군사정권의 독재시대를 지낸 탓인지 우리네 국민성 때문인지, 권위를 남발한 일부 몰지각한 지도자들 때문인지 권위에 대한 인식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권위가 부정적인 인식을 주어도, 부작용이 많아도 사회나 조직이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권위는 꼭 필요하다.

문제는 참된 권위와 그릇된 권위가 있다는 점이다. 또한 권위를 가져야 할 사람들이 권위 없이 행동하는 것이며, 제법 권위가 있다고 하는 지도자들의 권위남발도 심각한 문제가 된다.

나는 성결대학교 출신이며, 성결대학교를 사랑한다. 은퇴 후에도 다른 곳보다는 성결대학교 근처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많다. 뉴스에 학교 이름이 나올 때마다 주목하게 되는 것이 졸업생 누구나의 마음일 듯싶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대학 순위 가운데 성결대학교가 5위를 했단다. 무슨 순위인가 보니, 명예박사 학위를 대한민국 대학교 가운데서 5번째로 많이 주었다는 것이다! 좋은 분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었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전국 대학교들 가운데 그런 순위가 높아서 어쩌겠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박사학위에 대한 권위 남발이다. 그러니 사회에서 교회 지도자들이 명예욕이 가장 높다고 지적할 만 하다.

성도 가운데 호텔에서 일하는 분이 있다. 마주앉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한 적이 있다. 여러 말들 가운데, 호텔에 목회자분들이 많이 온다며 유명한 누구누구를 뵈었다고 한다. 왜 총회를 앞두고 호텔에 목회자들이나 장로들이 가득 들어차는가? 한국교회가 많은 빚을 얻어서 그렇게 좋은 예배당을 만들어 놓고 굳이 호텔에서 모일 이유가 무엇인가? 총회를 위한 좋은 일꾼을 뽑겠다면 호텔이 아니라 교회에서 기도해야 되지 않을까? 총회를 위한 정책을 만들겠다면 시끄러운 호텔식당이 아니라 총회 회의실에서 모여야 하지 않을까? 반론도 있겠다. 주차장이 비좁고, 식사가 어렵고, 보안이 안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된다. 식사는 동네 상가를 도와주려는 선한 의도로 국밥 한 그릇이면 충분하다. 불신자들이 많은 호텔에서 교회법 들먹이며, 아무개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말들은 종사자들이나 옆자리에서 다 듣는다.

입만 열면 가톨릭교회가 이단이라며, 교황은 사탄의 괴수라며 지적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에서 교황이 보여주는 모습은 권위가 아니라 낮아짐이며, 겸손이다. 불신자들은 가톨릭이 이단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런 비판에도 관심 없다. 도리어 위대한 종교지도자가 베드로 성당 앞 광장에 여느 신부들처럼 의자 놓고 앉아서 어떤 청년과 대화하고 기도해 주는 사진을 보면 불신자들도 감동받지 않을 수 없다. 연출한 사진이라고 비웃지 말고,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높은 분들이 그렇게 낮은 모습을 보여 주는가 반성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이 말을 너무 쉽게 한다. 사람들은 설교도 말로 구성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설교의 권위가 사라지고 하찮은 것으로 이해한다. 기대감이 낮은 경우에는 성취감도 낮은 것이다. 사람들은 목회자들을 향해 말한다. “이제는 당신이 말하는 설교가 아니라 당신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설교를 보고 싶다.” 성도들이 교회 지도자들을 호텔에서 만날 때 정말 반가울까? 권위를 느낄 수 있을까? 오히려 젊은이와 광장에서 대화하는 교황이 더 친근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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