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조 년 한남대 명예교수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첫째는 하나님은 이들을 버렸을까? 저주했을까? 당신의 작품이요, 자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에 따라 둘째로 예수도 이들을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뒹굴다가 그냥 영원히 지옥불에 던져지기를 바라고 내버려 두었을까? 유대인 아무도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고 상종하지 않던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시비하고 이야기 하며 가장 깊은 영성을 나누던 예수마저도 이들을 그냥 저주받은 존재로 치부해버렸을까?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 가운데 이들에 대한 생각과 신념이 아주 확고한 것은 자기 생각일까? 그들이 믿는 하나님과 예수의 생각 그 자체를 대변하는 것일까?

때때로 믿음은 우리 삶의 긍정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면으로 볼 때는 부정의 삶의 진원지가 되기도 한다. 그 때 그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따지게 된다. 믿음 중에 헛믿음이 있고 참믿음이 있는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이 다 한 믿음을 가졌다고 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상당한 부분 우리는 참믿음으로 착각하고 믿는 거짓믿음 속에서 살아갈 때도 참 많다. 그것이 힘이 되어 자기를 추동할 때가 참으로 많다. 물론 이때 무엇이 참믿음인가 거짓믿음인가를 판가름하는 객관잣대가 있어 눈앞에 분명히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믿음체계는 더욱 더 주관의 세계에서 논다. 그 주관세계는 자기의 어떤 확신의 세계를 넘지 못하고 맴돈다. 그 믿음체계 속으로 신을 끌어들이고, 경전해석을 끌어들이며, 종교의 역사를 잡아당긴다. 그러한 믿음체계는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나 자세 그리고 판단을 함께 가지고 온다.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자 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생각과 믿음도 마찬가지다.

지금 성소수자라고 불리는 동성애자나 성전환자들은 환자도 아니고,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도 아니다. 자기들이 그렇게 되려고 바라거나 희망해서 된 것도 아니다. 그렇게 태어났고,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고, 삶의 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런데 사회의 일부에서는 그것을 매우 더럽고 저주스러우며 커다란 죄악으로 치부하며 무서운 역병처럼 다루려 한다. 이른바 거룩함을 추구하는 종교의 자리에 그들이 참여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당당한 권리를 가지고 살아갈 인간이고자 하는 몸부림을 저주하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들 당사자나 가족, 특히 부모들은 몹시 불안하고 불편하며 어마어마한 죄를 진 것같은 맘으로 살아간다. 과연 그래야 하는 것일까? 사람은 원래가 다양하게 태어났고, 또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어떻게 되었든 생긴 그 모습 그대로, 태어난 그대로 당당하고 아름답고 보람있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또 사회는 그렇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폭력사회에서는, 이른바 다수요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소수는 비정상이요 권리와 가치가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낙인되어 괴롭고 슬프게 살아가야 하는 부당함을 경험한다. 그러한 것들은 본래 그랬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진 문화의 산물이다. 문화는 만들어지고 변한다. 본래가 그랬던 것이 아니고 영속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부터 그렇게 취급되어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어 산다. 그래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없게 분위기가 조성되고 조장된다. 도대체 누가 왜 그들이 사람으로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가?

다시 묻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란 말인가?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되어야 한다고 할 때, 바로 그들 성소수자들은 죄인 속에도 속하지 않는 그 아래 존재들이란 말인가? 자기 자신들이 자력으로 구원될 수 없다는 교리와 신학을 가진 사람들이 자원하여 된 것도 아니고, 자력으로 그렇게 된 것도 아닌 그들은 구제불능한 사람들이라고 돌려버리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인가? 잔인한 폭력의 세계다. 성소수자들을 용납하라. 모든 생명체에서, 아니 모든 사물은 있는 그대로, 태어난 그대로, 생긴 그대로가 곧 정상이요 의미가 있으며 어떤 섭리 속에 놓여 있다. 얄팍한 인간의 윤리와 도덕 그리고 주관에 의하여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가장한 성소수자에 대한 모든 편견과 차별이론과 논리를 접고, 그들도 나와 꼭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예수의 제자들이요 동반자며 우리의 이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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