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10월 31일 95조항 항의문을 비텐베르크 예배당 현관에 내걸었던 그날 마르틴 루터의 행동을 기준하여 ‘16세기 종교개혁’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 16세기 개혁일을 지속적인 기독교 개혁의 과정의 한 단계이지 영광스러운 날로만 여길 수 없다.

그 이유는 먼저 개혁자들 간의 불화를 들 수 있다. 같은 독일어권인 스위스 쮜리히와 루터의 성례전 시비로 서로 등을 돌려버린 행위는 16세기 개혁 실패 부분이다.

또 하나, 이 부분은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데 루터의 칭의론이 바울 사도의 칭의론을 대신하고 로마 가톨릭을 결과적으로 유대교식 종교로 몰아붙여버린 루터 그룹의 신학적 오만은 기독교를 반조각 만들어 버렸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로마 가톨릭은 유대교 수준은 뛰어넘는다. 중세기적 과오가 있고 행위 신앙을 도모하고 성자숭배나 연옥설 등을 통한 치부수단을 마련하는 등의 과오가 있으나 가톨릭은 유대교 단계는 뛰어 넘었다.

또 하나, 20세기적 현상인데 루터파 기독교 교단이 자기 호칭을 “루터교”라고 하게 되자 다수의 프로테스탄트 기독교 신교가 루터를 종교개혁의 대표로 보지 않으려 한다.

이는 루터파 교단에게 주는 도움말이 되는데, “루터파”는 기독교 신교 안에서 루터를 지도자로 하는 한 분파이지 기독교 모두가 “루터교”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교회 분위를 보더라도 1970년대까지는 마르틴 루터를 종교개혁의 대표로 인정했었다. 그리고 그때는 종교개혁 주간이면 고난주간처럼 교회들이 특별집회를 하고 금식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루터파가 루터를 독식하게 되니 루터파 아닌 교파들이 루터의 이름을 기피하고 있음을 루터파 관계자들이 발견해야 한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오늘의 21세기에 와서는 보완적 개혁의 대안이 나와야 한다. 500년이나 세월을 허송한 부분은 반성과 회개의 수순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16세기 개혁은 1세기 기독교의 대변자일 수 없고 1세기 기독교의 부분적인 회복뿐이었음에 대해서도 확인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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