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밀로 건강한 빵 만들며 교회와 신앙의 원리 찾아가는 ‘건강담은’ 이학진 대표

사역 속에서 성도의 삶에 구현되어야 할
하나님 나라 강조했지만 번번이 교회 구조에 가로막혀

개업 아닌 개척, 빵집 통해 사람과 사람의
진실한 만남 이어지고 삶 속 사역지로 세워가고파

   
▲ ‘건강담은’ 이학진 대표

빵집 문을 열자 구수한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갖가지 빵들이 손님에게 선택받으려 예쁘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시민대로 136번길에 위치한 ‘우리 밀 빵굼터 건강담은’(이하 건강담은) 이학진 대표(42)는 빵집 내부를 찬찬히 휘둘러보면서 “이곳은 나의 사역지”라며 웃는다.

10평 남짓의 공간에는 막 일을 마친 오븐과 빵 만드는 기계 그리고 갓 구운 빵들, 여기까지는 빵집다운 풍경인데, 한쪽 벽면에 마련된 서가에 신학서적이 빼곡히 꽂혀 있고, 벽에 기대 선 기타는 또 뭘까? 정말 여기서 예배라도 드리는 걸까?

# 빵 굽는 원리, 교회와 신앙을 다시 보다
“새벽 5시부터 시작해 오전 10시면 빵 만드는 작업을 마칩니다. 그 이후부터 이곳은 저의 놀이터예요. 가게를 찾는 손님들과 그날 맛있게 구워진 빵과 음료를 나누며 대화하고, 책 읽고, 기타도 치고요.”

이렇게 여유를 부려본 게 얼마만인지. 이 대표는 전직(?) 전도사이다. 교역자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소모품’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단 1년도 보장할 수 없는 빡빡한 전도사 생활을 내려놓고 빵집 주인으로 전환한 후에야 비로소 “사역은 사람과 사람의 진실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란 사실을 새롭게 깨닫고 있다. ‘소모품’이 아닌 당당하게 내 손으로 만든 것으로 만나고 부딪치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엮어가는 지금이 더 역동적인 복음의 현장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말이 좋아 사역지이고 놀이터지 빵을 만들고 가게를 운영하기란 중노동을 요하는 일이다. 특히 ‘건강담은’은 가게 이름처럼 건강한 빵을 만든다는 일념으로 우리 밀만을 사용하고 반죽에 버터, 우유, 계란, 설탕을 넣지 않는다. 당연히 방부제나 유화제, 색소 등 화학성분은 더더욱 설 자리가 없다. 빵을 부풀리는 이스트도 보통 3% 정도 들어가는데 ‘건강담은’은 0.1%만 넣는다.

“빵 만드는 비법을 알려준 사부가 아토피가 심해 건강한 빵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고 그래서 선택한 게 우리 밀이었어요. 우리 밀은 가을에 파종해 봄에 수확하기에 농약을 치지 않은 유기농인데다 내수여서 방부제를 뿌릴 필요도 없거든요. 건강한 빵의 기본은 우리 밀이에요.”

풋내기 빵집 주인 치고 제법이다. 이 대표가 전도사 생활을 접고 ‘사부’가 운영하던 빵집을 인수한 것은 겨우 2개월 남짓이다. 그런데 그의 설명을 듣자니 마치 20년쯤 빵 반죽 비법을 연마한 양 우리 밀에 대한 자부심이나 건강한 빵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이 결연하다.

건강을 선택한 만큼 빵을 만드는 공정은 반죽부터 숙성까지만 36시간이 걸리는 등 일반 빵에 비해 훨씬 복잡하다. 경력자라도 그 원리를 모르면 구워내지 못한다는 우리 밀은 계량, 반죽, 발효, 굽기의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오차가 나면 공든 탑 무너지는 건 순간이다. 배우느라 죽을 고생 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
“말만으로는 도저히 설명도, 해결도 안 되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았어요. 맛난 빵을 만들기 위해 인위적 행동을 최소화하고 재료 스스로들이 힘을 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되 실제로 자연의 섭리에 철저히 의존해야 하는 기다림과 관찰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아무리 건강을 생각한다 해도 맛과 식감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공정은 더 오래 걸리고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간강담은’을 찾는 손님들은 “신선하고 맛있다”, “여기 빵은 소화가 잘 돼서 좋다”는 등 호평이다.

쉬운 방법에 대한 유혹은 없을까? 이 대표는 “무엇이 건강을 위한 것인지 아는 이상 다른 길은 없다”며 “먹거리를 만드는 기본 양심과 태도의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교회 사역을 내려놓고 자신의 개척지로 여기며 선택한 빵집이기에 개인사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늘 그를 긴장하게 한다.

새벽 4시 30분에 눈을 떠 다음날 만들 빵을 위해 반죽을 뭉치고 숙성기계에 넣고 나면 밤 10시나 되어야 일과가 끝난다. 그래도 이 대표는 “사람답게 생각하고, 일하고, 대접받는 이곳이 좋다”며 사역의 포기가 아니라 지역민들의 삶 속에 함께하는 사역지로 세워가고 싶어 했다.

   
 

# 하나님은 누구신가?
젊은 나이에 직장생활과 사업까지 경험하며 성공을 갈망하던 그가 33살에 돌연 신학을 공부하고 사역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가?”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학공부와 교회 사역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는 그리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복음의 왜곡과 구조적인 모순을 교회 안에서 더 많이 목도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내가 믿는 하나님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명쾌하지 않았어요. 단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는 본질적인 고민이 컸습니다. 구원에 대한 문제도 죽어서 가는 천국 이해로는 부족해보였고요.”

교회에 발 들인 것만으로 천국행 티켓을 확보한 것처럼 여기고 그것을 더 확고히 하기 위해 헌신과 봉사에 열을 올리지만 삶 속에서는 신앙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천국을 죽음 이후에 가는 것으로 미뤄두고 현장에서 복음을 경험하지 못하는 성도들의 삶은 너무도 무력해보였다. 성경을 깊이 읽을수록 단지 이 땅에서의 안녕을 위한 간구에 물질의 복으로 응답하는 것이 진짜 하나님의 실체일까 하는 의구심도 커져갔다. 하나님을 찾고 두드리는 과정에서 알게 된 건 이런 고민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하나님 나라는 저 멀리가 아닌 내가 발 딛고 선 이곳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교회는 성경이 말하는 가치를 구현하는 곳이며, 그 가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그런 삶을 타인 역시 살아가도록 물심양면 돕는 곳이지요. 목회자 스스로 노동자의 삶을 살아내고, 자신의 일상과 신학적 결론이 만나는 현장을 갖는 것이야말로 교회개척의 핵심 아닐까요.”

온 우주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회복되어야 하는 것을,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의 삶이 하나님 나라가 구현되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교회 사역에서 늘 강조하고 실천을 위해 힘썼다. 그의 이야기에 대부분이 공감했지만 막상 실천을 위한 대목에선 번번이 교회 구조에 가로막혔다. 그것이 전도사 사역 5년 동안 가장 길게 사역한 게 1년 8개월인 이유이기도 하다.

   
▲ ‘우리 밀 빵굼터 건강담은’ 에서 만든 빵

# 빵집을 사역지로
개업이 아닌 개척이라는 말, 실천이 없으면 속 빈 메아리일 뿐일 터. 사업장은 지역사회에 공적인 역할을 감당하도록 한다는 취지에 따라 가게를 열린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시설과 재료를 공유하면서 협동조합체제로 운영, 조합원 각자가 빵집과 어울리는 자신의 브랜드(제과, 커피, 잼, 레몬, 자몽 등 각종 청)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 수익금을 나눈다는 방침이다. 이미 두 명이 이곳에서 빵을 만들며 그동안 꿈꿔오던 것을 펼쳐내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재정의 일정부분을 조합원 및 원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식탁을 차리는 데 사용하는 공적자본으로 삼는 것이다. 도심에서 누릴 수 없는 여유를 함께 꾸리는 식탁에서 향유하며 인적관계망을 형성하는 것이 사역의 주된 목표다.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배제되지 않는 공평한 식탁, 예수와 마주앉아 그가 소개한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는 기쁨을 누렸던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빵은 아침에 만든 것을 그날 모두 소진한다. 남는 것은 빵집을 지나는 이웃들에게 나눠준다. 일명 ‘푸드뱅크’이다.

교회 사역을 벗은 전도사, 과연 자유를 얻었을까?

“교회 구조를 벗어났으니 일단은 성공이라 할 수 있지만 또 다른 구속에 매이게 됐죠.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구하느라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고, 추가 비용을 대출 받았어요. 가게를 운영하는 일도 만만치 않고요.”

아무리 뜻과 계획이 좋아도 운영이 부실하면 객기에 그칠 뿐, “오늘 만든 빵이 다 팔릴까?” 하는 게 이 대표가 매일 고민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그는 사역과 경영의 줄타기 중이다.

“개업이 아닌 개척이란 뜻이 지속되려면 무엇보다 빵을 제대로 구워야 한다”고 말하는 이학진 대표, 그는 매일 새벽, 우리 밀과 씨름하며 그만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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