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깊은 고민이 여기에 있다. 분단문제 해결이라는 것, 쪼개진 민족의 재통일에서만 아니라 인류문명이 어느 만큼 한계에 와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통일신라 왕국이 무너지고, 고려 왕건이 황제의 국가를 세운 그 무렵 대륙간의 동서문명 교류가 정점에 이르고, 겸하여 해양 실크로드 시대가 세계화의 동반카드로 등장했던 그때 고려가 방심하다가 거란족들에게 침략을 당하기 시작했던 그때, 윤관 장군의 이름이 등장하고 책사 서희가 국난을 열어가던 그 무렵부터 한반도 즉 고대사의 한 지점에서는 찬란했던 조선의 역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려 후기의 무신 정권, 그 많았던 농민반란들, 왕조의 혼돈, 징기스칸의 자식들, 여진의 이름으로 만주족들의 청나라, 드디어 임진과 정묘 병자년 무렵에는 조선의 얼이 다 빠져 나갔었다.

그리고, 뒤늦게 예수의 기독교가 이 땅에 와서 오늘은 사이비 공산국가요 사이비 기독교 국가일 법도 한 김씨 왕조 3대를 겪으며 나라의 운세가 바닥을 치고 있다. 남북문제는 휴전선이라도 있으나 남남갈등은 보수와 진보라 했을 때 양자 모두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얼치기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의 혼돈을 한국교회는 어떻게 보는가?

한국교회도 어느 만큼은 지쳐 있다. 말로는 개혁 기독교 세력이라면서도 개혁적인 냄새가 빈약한 한국교회는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근원적인 자기 성찰(반성)이 있어야 한다. 요즘 종교개혁 5백주년 행사를 준비한다지만 자화자찬이 아니라 반성문부터 써야 한다. 마르틴 루터나 칼빈 같은 탁월한 개혁자들이 그들의 후속 개혁자를 내놓지 못한 16세기 후예들, 자식을 낳지 못한 불임 기독교, 개혁운동이 16세기 식으로 겨우 중세기 스타일이어서는 안 된다. 세계교회는 물론 한국교회도 16세기 개혁의 조건들 속에서 손도 대지 못한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첫째, 루터가 제시한 ‘만인제사’ 문제를 21세기까지의 기독교 신학과 신앙으로는 방법론의 A, B, C도 내놓지 못했다.

또 하나,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예루살렘 공동체 교회’를 당시 예수를 전혀 모르는 사울(후에 바울)일당이 파괴했는데, 16세기 이후 개혁의 기독교는 아직까지 그 공동체를 어떻게 복원해야 하는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교회와 한국교회가 16세기 종교개혁 5백주년을 책임 있게 맞이하려면 ‘만인제사론’의 ‘신학’과 ‘목회론’을 제시하고, ‘예루살렘 초대 공동체 교회’의 복원과 그 의미에 기초한 21세기형 ‘교회론’을 내 놓아야 한다. 이 둘은 16세기 개혁자들은 충분한 시대의 뒷받침이 없어서 접근불가였으나 오늘의 21세기 기독교는 바로 이 부분을 책임있게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만인제사론과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 교회가 무엇인지를 깨달으면 세계교회사의 앞날을 열 수 있고, 통일 대한민국의 대안제시를 할 수 있고, 통일시대의 선두에 서서 대한민국을 미·중·일·러의 ‘4각 정글’에서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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