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인 목사 평화교회 담임

   
▲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 담임

욥의 죄와 천박성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공의, 온전한 지혜를 드러내려고 애쓴 엘리후, 진정한 친구는 상대를 일방적으로 감싸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이끄는 사람이다

리더는 혼자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의견을 조율하고 조언 받으며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지 않다면 리더는 불행하다.

구약의 욥은 고난을 당할 때 친구들이 와서 위로했다. 그러나 실상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았다. 좋은 리더 곁에는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

엘리후를 모델로 삼아 리더의 친구가 그런 사람이길 소망한다. 엘리후는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로 다른 친구들 보다 늦게 대화에 등장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산 것으로 보인다. 젊은 사람답게 논증을 구체적으로 펼치고 있으며 예리하고 지적이다.

엘리후가 다른 세 친구와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엘리후는 욥과 세 친구들의 변론을 참고 들었다가 자기 논쟁을 펼친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말을 들어보기도 전에 조언하고 충고하는데 그에게 배울 만하다. 대화를 깊게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반면에 친구들을 만나면 중요한 사안에도 가볍게, 쉽게 대응하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깊은 대화가 무거운 대화는 아니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을 리드해 가는 사람이다. 자기주장이 있고, 꼭 필요한 말이 있음에도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엘리후는 어쩌면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일지 모르나 대화를 리드하고 있다. 실속 없는 대화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필요하며 알맹이가 들어있는 대화를 하는 사람이다.

욥의 죄와 천박성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공의, 온전한 지혜를 드러내려고 애썼다. 그가 때론 냉정할 정도로 욥을 비난하지만 그것은 욥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에서이다. 진정한 친구는 상대를 일방적으로 감싸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이끄는 사람이다.

옛 사람들은 오무(五無)의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라고 했다. 오무(五無)는 무정(無情), 무례(無禮), 무식(無識), 무도(無道), 무능(無能)을 말한다. 무정한 사람, 친구라면 인간미가 있어야 되고, 눈물도 있어야 되고, 사랑도 있어야 된다. 무례한 사람, 인간은 유일하게 예의를 아는 동물이다. 그러나 예의가 없는 사람은 가까이하기 어렵다. 무식한 사람, 학문을 아는 사람은 사고방식이 합리적이고 이해심이 깊은 경우가 많다.

공자가 이런 말을 남겼다. “학문을 좋아하는 자와 함께 가면 마치 안개 속을 가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은 젖지 않더라도 때때로 물기가 배어든다. 무식한 자와 함께 가면 마치 뒷간에 앉은 것 같아서 비록 옷은 더럽혀지지 않지만 그 냄새가 맡아진다.”

무도의 사람, 길 중에는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있고 ‘되는 길’이 있다. 예컨대 공직자가 가야 할 길이 있고, 목회자가 가야 할 길이 따로 있다. 그 길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무도한 사람이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친구이면 욕이 된다. 무능한 사람, 인생길을 걸어가다 보면 곤란에 처할 때도 있고 위기를 만날 때도 있고 궁지에 몰릴 때도 있다. 그럴 때 친구를 도와주려면 인정만으로는 안 된다. 능력과 적극성이 있어야 된다. 무능하다면 친구를 도울 수 없다. 인디언의 말로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친구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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