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모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영혼과 같아서 분명히 하나일 거야. 다만 세상이 넓어서 각 민족들이 말이 다르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각 민족의 말과 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일어난 착오로 봐야지.”

태양이 둘이 아니듯이 종교 또한 둘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럼, 종교란 무엇일까? 지난 40여 년 동안 당나라 경교의 중심부에서 책임 있는 인물이었던 다위드는 당나라 국교인 도교나 조로아스터교, 마니교는 물론 기독교 본산인 로마로부터 쫓겨난 경교의 입장에서 긴장하면서 살아왔다. 이제는 일단 책임자의 짐을 벗어던졌다. 심지어 사제 직분마저도 내던져버리고 모든 종교들에게서 한 걸음 비켜서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

당나라 경교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콘스탄티노플 기독교와 가까이 지내고 싶어서 노력을 많이 했었다.

당나라 국력을 로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거대한 아시아의 제국 본토에서 황제를 비롯하여 권력의 실력자들과 신뢰를 쌓고 있는 경교와의 관계를 왜 로마 기독교는 외면하고 있을까?

네스토리우스 파가 혹시 두려운 것은 아닐까? 사실 당나라뿐 아니라 인도,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수리아, 이집트, 아프리카, 아라비아 등의 기독교 파들은 로마보다 교리적으로나 성향으로 볼 때 네스토리우스 파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심지어 이슬람 신흥세력과의 친근감도 우리가 로마보다 더 가깝다고 다위드는 자신하고 있다. 그렇다면 로마기독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 하신 말씀을 로마는 모를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다위드는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알로펜 할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유승 사제가 신라에 상당 기간 머물렀고, 그곳에서 서라벌 최고의 고승 원효와 교분을 깊이 나눴다는 이야기 하며, 유승이 서라벌에서 돌아온 후 소식이 끊겼던 부분까지도 생각 속에서 떠올랐다. 다위드는 그때 유승 사제가 다시 불교로 되돌아간 듯한 행동거지를 하고 있었다는 주변의 수군거림을 듣기도 했었다. 유승은 본디 파미르 지역의 불승이었으니 되돌아갈 수 있겠다는 정도로 생각했던 오래 전 생각도 되살아났다. 다위드는 그때 무슬림 청년들과 죽자 살자를 하느라고 생각의 여유가 없었다. 지금 같았으면 유승 사제를 만나서 신라 불교 이야기나 원효 승 이야기를 들어보았으면 좋았으련만 이제는 먼 날의 추억일 뿐이다.

다음날 아침 다위드는 천불동 뒷산 언덕에 올랐다. 떠오르는 태양이 동편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동산 높은 곳에서 주변을 살피고 더 멀리까지 눈을 주었다. 뒷산을 배경으로 바라볼 때 주변이 멀리는 농토들이 자리잡은 지형이었다. 큰 산들은 더 먼 곳에 있었다. 코초의 화염산 뒤에 자리잡은 천불동보다 더 커 보이지 않았다. 둔황 천불동보다는 크지만, 중국은 불승들의 도장이 있는 곳이면 천불동 또는 삼천불동 등의 집단 석굴들을 마련하고 있었다.

주변이 조용하다. 풀벌레들을 깨운다. 조심스럽게 거닐면서 나뭇가지에 돋은 이슬도 털어낸다.

널다란 바윗돌 위에 앉아서 태양빛을 마주하며 마치 그 기운을 받아 마시려는 듯 입을 벌려 숨을 들이켰다.

그때, 샤프르와 사명이 다위드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서도 다위드는 심호흡을 계속하며 오늘 하루 분량의 기운을 태양으로부터 받아내려는 듯이 정성스럽게 자기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스승님, 저희가 많이 찾았어요. 언제 이곳으로 오셨나요?”

샤프르였다.

그제서야 다위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혹시 어젯밤 제가 무례를 범했는지요? 그렇다면 용서를 빌게요.”

사명이 두 손을 마주 잡고 무척이나 긴장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러시오. 사명, 어젯밤 우리는 즐겁게 종교는 본디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한다, 까지도 서로 말했었는데요….”

“아, 그건 말입니다만…, 어제는 제가 큰 어르신을 몰라뵙고 무례를 범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어요. 오늘 아침에야 샤프르가 제게 어르신이 당나라 경교의 최고 어르신인 총 주교님이시라고 했어요. 제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다시 한 번 용서를 빕니다.”

다위드가 벌떡 일어나서 사명 승의 손을 잡아 가볍게 흔들었다.

“그건 지난 날의 내 직분이오. 지금 나는 한 사람의 구도자의 자세로 나의 진리, 나의 종교까지도 다시 살피려는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대는 내게 아무런 결례를 행하지 않았어요. 그저 우리는 친구요, 도문, 또 도반이라 하지요. 다만 나이 차이가 있어서 약간 조심스럽지만 구도,구법(求法)의 자리에서 나이 또한 거추장스러운 것이야. 이리 앉아요. 그리고 우리는 친구로 지냅시다.”

“아이고, 어르신 말씀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럼 어제처럼 어르신을 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 그럼. 그럼.”

“아휴, 이제야 걱정을 덜었습니다. 어찌하다가 제가 입방정을 떨었는데 스승님께 꾸중 들으면 어쩌나 했습니다.”

샤프르가 엄살을 섞어서 말했다.

“아니야, 아니 자네는 별도로 혼 좀 나야지. 내가 지난 일을 꺼내지 말라고 했음을 잊지 말아야지.”

샤프르의 어깻죽지를 툭툭 치면서 다위드가 웃는다.

“그런데 말이죠. 어제 우리가 나누던 말 중에 종교는 본디 하나에서 출발했을 거라 했고 우리가 서로 고개를 끄덕였는데 지금은 하나가 아니잖아. 그저 하나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막연한 소망을 말할 뿐인데 이 일을 어찌할꼬?”

다위드는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 혼잣 소리처럼 말을 던졌다.

“…….”

샤프르나 장안사의 승려 사명도 입을 쉽게 열지 않았다. 다위드 또한 금방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 자신에게 독촉하는 마음에서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 셋은 말 없이 천불동 뒷산을 걷다가 천천히 산을 내려오고 있다.

“스승님, 종교가 하나 된다는 생각은 꿈이 아닐까요?”

샤프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꿈이지. 우리들 기독교는 양성론과 단성론 사이에도 천년 원수들처럼 멀리하고 있지 않나, 또 로마 기독교가 우리들 네스토리우스 파와 다시 만날 생각이 없는 것을 보면 종교들이 하나였는지는 몰라도 되돌아 가기는 쉽지 않겠지.”

사명은 한 걸음 더 빨리 걷는다. 두 사람의 하는 말이 기독교 내부 이야기이기에 피해 가려는 몸짓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위드는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산언덕을 내려왔다.

“어르신, 종교가 정말 최초에는 하나였을까요?”

사명이 입을 열었다.

“하나였을 겁니다. 아니야, 하나죠. 둘일 수도 있으나 그것도 하나일 뿐이죠.”

“둘일 가능성입니까?”

사프르였다.

“그래, 하늘과 땅이 둘이면 종교도 둘이겠지. 그러나 하늘과 땅은 하나야.”

“그걸 어떻게 아시나요?”

“저 태양이 뱅글뱅글 돌고 있잖아. 저 태양이 둘인 것을 보았나? 저 태양이 하나이니 하나님도 한 분이고 진리도 하나일 거야.”

“종교도 그러니까 하나여야 한다는 말씀이잖아요.”

“그래요. 그러나 그건 조심스럽게 말해야 해요. 타 종교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더더욱 예의를 차려야 하지.”

“어르신, 그렇다면 둘 이상이 하나에서 출발했다지만 쉽게 되돌리기는 어려워도 둘을 또 그 이상을 서로 인정하면 좋겠네요.”

사명이었다.

“바로 그겁니다. 우리들의 종교나 사상들도 서로를 인정하는 예의를 갖추면 이미 하나로 되돌아가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죠.”

다위드는 샤프르와 사명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이 말을 했다.

“하나에서 여럿이 나타났다면 그 근원적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샤프르가 사명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어르신이 말씀해 주시죠.”

다위드가 말했다.

“이 세상이 넓어서 그런 거죠.”

“그보다도 신이 인간에게 말씀을 주실 때 각 민족들이 자기들 수준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다보면 그 뜻을 오해하기도 하겠지요. 가끔씩 우리들 주변에서 사람들이 언쟁을 하고, 사상가들도 싸우잖아요. 중국의 역사를 보면 진나라나 한나라처럼 큰 제국이었을 때가 있었으나 지금의 당나라나 당나라 직전의 수나라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수십 개 나라로 갈려 있었던 것도 모두 서로의 생각이 달라서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럼 각 나라들이 여럿으로 나뉘었다가 하나의 제국으로 뭉치듯이 큰 지도자가 나오면 제국이 되고 지도자가 없어지면 제국이 조각나듯이 종교나 사상도 그렇겠네요.”

“아니야, 종교는 다를 거야. 종교는 모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영혼과 같아서 분명히 하나일 거야. 다만 세상이 넓어서 각 민족들이 말이 다르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각 민족의 말과 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일어난 착오로 봐야지.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의 가르침이 하나인데 종교들 간의 차별이나 충돌은 옳지 않아요. 여기까지만 종교들끼리 서로 용납해 줘도 세상이 많이 좋아질 거야.”

“아 그럼 종교가 좋은 세상 만드는 일에 역행할 수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샤프르가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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