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이 기부 실천하는 행복한 나라 꿈꾸는 한국새생명복지재단 송창익 회장

   
 

돈이든 건강이든 내 힘으로 쌓고 또 쌓아도 무너지는 건 한 순간, 척추 다쳐 전신마비의 고비 넘긴 후 나눔의 삶에 눈떠
나눔은 생명을 지키는 힘, 내가 먼저 사랑과 행복을 나누어 주면 내게도 사랑과 행복이 찾아온다

“전 국민이 기부를 실천하는 나라는 행복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전 국민이 기부하는 나라, 한국새생명복지재단 송창익 회장(53, 신촌성결교회)은 자신의 꿈을 밝히면서 이미 그것이 이뤄진 양 환하게 웃었다. 전 국민이 기부하는 문화가 꽃피어 이 땅에 더는 가난 때문에 미래를 포기하는 사람이 없는, 다함께 행복한 나라가 되는 날을 그는 꿈꾸고 있다.

비영리 민간단체 법인으로 정부지원 없이 순수하게 자력으로 나눔을 이어온 한국새생명복지재단이 어느덧 10주년을 맞았다. 100% 후원금으로 사업을 이어가느라 늘 쉽지 않은 살림인데, 그래도 송 회장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확신 속에 꿈을 이루기 위한 희망지도를 그려가고 있다.

# 전 국민이 기부하는 나라
송창익 회장은 과거 기업가로 언론인으로 ‘하면 된다’는 삶의 신조처럼 포기를 모르고 달려왔다. 특유의 지칠 줄 모르는 추진력으로 성공을 향해 뛰고 달리던 그가 나눔에 눈 뜬 건 언제였을까?

“돈이든 건강이든 내 힘으로 쌓고 또 쌓아도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더군요.”

2002년 아내의 부탁으로 커튼을 달기 위해 의자에 올라섰다가 현기증으로 시야가 흐려지면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넘어지면서 척추를 상해 온몸을 개복하고 척추에 철심을 심어 고정하는 수술을 열세 시간동안 하고 깨어났지만 몸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를 악물고 6개월간 재활치료를 거쳐 다행히 정상인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그 사고로 송 회장은 척추장애 6급을 판정 받았다.

국제 봉사 단체인 라이온스 클럽 한국지부 회장을 맡으면서 봉사에 눈떴고 우리 주변에 도와야 할 곳이 참 많다는 걸 보게 됐다. 2006년 한국새생명복지재단을 설립, 사업과 나눔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재단을 사업체와 병행하면서 느낀 건 나눔은 남의 손 빌려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직접 뛰지 않으면 나눔도 사업도 힘만 소진될 뿐이란 걸 깨달았다. 둘 다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처음 재단을 시작할 때 큰 아이가 고2, 둘째가 중3이었어요. 가족회의를 열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에 아내가 뜻밖에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지지해 주었어요.”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 일은 기쁨도 보람도 컸지만 그만큼 힘든 고비가 많았다. “재단을 선택할 경우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선전포고 했지만 재단이 힘들어 오히려 가정살림에 의존해야 할 때면 가장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래도 10년 간 어려운 고비 속에서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가족의 지지와 협력 덕분이었다.
한국새생명복지재단은 대표사업인 난치병 환아들을 위한 치료비 지원을 비롯해 저소득층 의료지원 등 의료지원 사업, 저소득층과 다문화 가정 어린이의 학습 지원 등 교육지원 사업, 노숙인, 소년소녀 가장, 결식아동 급식비, 독거노인 생활지원 등 복지사업을 진행해왔다. 재단 규모에 비해 사업이 참 다양하다.

“눈에 보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해요. 그러다보니 사업이 자꾸 늘어나더라고요.”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어렵다는데, 송 회장은 “나라님도 못하는 일이니까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면서 전 국민이 기부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나눔은 생명을 지키는 힘
그동안 해온 사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노숙인들을 자활훈련 해 사회로 복귀시킨 일이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고 교회의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인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다.

“재단 초기 서울역에서 노숙인들에게 무료급식을 실시했는데 나중엔 종교단체들에서도 무료급식을 하면서 서울역이 노숙자 천지가 된 거예요. 이들에게 밥을 주는 것보다 사회로 복귀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자활훈련을 실시했어요.”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기회만 주어진다면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그들의 갈망을 읽을 수 있었다. 문제는 당장 그들을 씻기고 훈련시킬 공간이 필요했다. 불교신자였던 그가 교회를 떠올린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교회는 생명을 말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니까 도움을 구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수양관을 갖고 있는 큰 교회 몇 곳을 찾아갔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했어요. 교회는 말과 행동이 다른 곳이라고 생각하고 실망이 컸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지원자 중 30명을 선발해 ‘새생명희망학교’ 1기로 해병대 부대에서 훈련시키는 등 자활훈련을 통해 전원 사회에 복귀시키는 데 성공했다. 노숙인과의 인연으로 또 다시 손이 닿은 곳은 교도소였다. 자활훈련하던 노숙인 한 명이 전과자에 수배자 신분인 게 밝혀져 결국 3년형을 받고 수감됐다. 그가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3년간 옥바라지 하며 고등학교 검정고시까지 패스하도록 도운 것은 두고두고 기쁜 일이다.

그를 통해 교도소 출소자들이 일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로 돌아오는 것을 목도하고 교도소 취업협의회와 연계해 출소자들이 일자리를 얻고 사회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왔다.

송 회장의 나눔은 늘 이런 식이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다가 또 다른 어려운 사람을 만나고, 그러면서 사업이 확장돼 왔다.

그가 앉은 뒤편 책장에 상패가 즐비하다. 무슨 상을 그리 많이 받았느냐는 질문에 송 회장은 도리어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른 손이 하는 일,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게 봉사의 기본 정신이라고 새기며 걸어왔기에 상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상이라는 게 재단을 신뢰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이 되는 것을 보면서 지난해부터는 마다하지 않고 받다보니….”

인터뷰 중에도 그의 휴대폰은 계속 울렸다. 다음날 다문화가정 청소년들과 서울대 학생들이 멘토와 멘티로 만나는 행사에 사진 촬영으로 재능기부를 부탁했던 이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이번에도 꼭 맡아달라며 신신당부하는 모습. 재단을 설립한 지 10년인데 여전히 그가 직접 챙겨야 할 일들이 많은 모양이다.

“재단에 후원된 돈은 모두 어려운 이웃에게 써 달라며 맡겨진 돈이에요. 경비는 최대한 아끼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더 많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지요. 필요한 대로 다 쓰면서 어떻게 돕나요.”

불교 신자였던 송 회장이 기독교인이 된 것은 4년 남짓의 일이다. 재단 직원 중에 기독교인이 있었는데 그가 다니는 교회에서 예배 때면 온 교인이 재단을 위해 기도해준다는 말에 놀라 그 교회를 찾게 됐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예배도 드리게 됐다.

아직 배움의 과정에 있기에 신앙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지만 “내 모든 걸 쏟아내고 기도하다보면 들으시는 분이 계신 걸 느낀다”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다”고 했다.

송 회장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실천하는 작은 나눔이 모여 생명을 지키는 큰 힘이 된다”면서 “내가 먼저 사랑과 행복을 나누어 주면 내게도 사랑과 행복이 찾아온다”는 삶의 이치를 전하며 전 국민이 기부하는 날, 행복한 나라를 향한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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