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평소 한국인으로는 제법 괜찮은 역사책(세계교회사)을 썼다 싶어서 기억하고 있던 책을 잠시 폈다.

종교개혁기 부분에서 루터와 쯔빙글리에 대한 기록이다. 그런데 쯔빙글리의 제자들 중 7명의 아나밥티스트(Anabaptist)청년들 기록이 한 줄도 없었다. 깜짝 놀랐다.

쯔빙글리와 충분한 대화, 용기 있는 개혁자들 간의 희생 나눔이 여의치 않아서 7명의 소중한 청년들은 물론 16세기 이후 유럽의 프로테스탄트 운동사에 큰 오점을 남겼으며 아직도 기독교의 미해결사인 재세례파와 쯔빙글리의 관계를 한 줄 기록으로 남겨주지 않은 역사학자에 대한 신뢰가 어떠했겠는가.

나는 그 역사책을 찢어버렸다. 자정이 넘은 그 시간, 나는 한 사람의 광인처럼 또 다른 교회역사학 교수의 책을 폈다. 그 사람은 AD 431년 제3차 에베소공의회가 네스토리우스 당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부당하고 억울했던 기록을 한 페이지 남짓 분량, 그것도 왜곡되게 기록한 내용의 그 사람 책도 찢어버릴 뻔했으나 이번에는 겨우 참았다.

나쁜 사람들, 역사 기록자의 자격을 상실한 위선자들이다. 역사가이면 또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겸허함을 가져야지 마치 자기가 최후 심판자인 양 착각하면 안 된다.

19살부터 60여년 이렇게 저렇게 공부해가고 있는 나는 가능한 한 객관적 평을 생각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대강의 기록가치만이라도 공평한 제시를 하여 또 다른 타인들이 평을 하고, 탐구할 수 있는 아량을 가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30대에 에세이 형식이라는 마음 자세로 기독교 역사를 한 번 써보았는데 아쉽고 못마땅한 부분이 있어도 증보나 개정을 망설이면서, 지난 10여 년 전부터 좀 더 공평무사하며 또 흥분하지 않고 역사책 한 권 더 남기고자 애쓰고는 있으나 활발한 진전이 없던 차 괜히 한밤중에 두 사람의 역사책만 찢어버리는 노여움을 드러냈으니 인생은 역시 백년 수행을 해도 품격이 다듬어질까말까 한 작품인가 한다.

요즘 우리들 주변에서는 1517년 루터와 그 동료들이 이룩한 16세기 종교개혁이 어느덧 500주년이 되어간다며 마음준비를 하고 있는데 금번 기회에 종교개혁기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필자는 2001년 10월에 비텐베르크에 갔었다. 루터의 기념환경을 살피던 중 그 광장 남쪽에 나란히 세워진 높이 100여 미터쯤 되어 보이는 마르틴 루터와 필립 멜랑히톤의 동상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에 상당한 의문을 가졌었다.

왜 저럴까? 루터와 멜랑히톤이 동급이 아닌데 왜 저토록 똑같은 크기와 모양새일까? 귀국해서 나는 뒤늦게 루터와 멜랑히톤의 관계를 좀 더 공부했다.

그리고 놀랐다. 멜랑히톤은 루터보다 열다섯 살 정도 아랫사람이고, 루터의 위상과 비교할 때 조교(조수)급으로 알았는데 루터가 멜랑히톤의 실력을 인정했고 존경과 존중을 했던사실을 확인했다. 역시 인물은 너무 쉽게 평가하면 안 되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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