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질 석굴에서 구마라습을 찾자는 것은 아니다. 수백 년 전, 이미 전설에 묻힌 구마라습은 다위드의 열망 속에 희미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내 공부가 부족하지, 내 나이 칠십인데 누구를 찾아다니자는 것은 아니다. 훌훌 털어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무엇을 얻겠다는 생각마저 버리지 않으면 버림을 받을 수 있다.

“오삼수도회” 사람들처럼, 쉰세 살이 되면 세속의 짐을 거두고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알로펜 할아버지는 제자들에게 “오삼수도회”식 삶을 부탁하셨으나 총 주교님 자신은 마지막까지 제자들을 돌보고 중국교회와 당나라제국 살림까지 훈수를 두면서 고생을 하셨다. 알로펜 할아버지는 다위드가 어릴 때부터 “너는 나처럼 얽매이지 말거라. 붙잡히지 말거라”하시면서 내 볼을 어루만지셨었지. 당신 자신의 삶을 후회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 그러지 마시고 기도의 처소로 떠나시면 되잖아요”라고 그가 말할라치면 빙그레 웃으시면서 “너는 때를 놓치지 말도록 하거라”하셨던 기억이 있다.

알로펜은 당나라 기독교 창업과정이었으니까 백여 살이 넘는 날까지 교단의 조직과 제자들의 교육문제 등으로 고심하면서 길이 열려 있어도 떠날 수가 없으셨다.

다위드의 총 주교 시절, 교단 수뇌부는 교단 금고의 헌금액을 자랑하면서 어디엔가 이 자금을 사용하고 싶어들 했었다. 그러는 중에 “경교비”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경교비 제작에 반대했던 다위드는 중국인들이 보존하고 있는 경전들을 말했다.

“여러분, 중국인들의 사서삼경을 아십니까? 성경의 기록연대를 앞지르고 있는데 어떻게 경교비 제작을 고집하려 듭니까?”

아무리 설득해도 비 제작파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다위드는 자기의 한계를 느꼈다. 그래도 한평생 바쳐서 기른 제자들까지 그의 요구를 외면하는 단계에서는 큰 충격이었다. 그가 조기 은퇴를 선언하게 된 사유가 될 것이다.

공자와 노자의 나라에 와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마치 선사시대의 암각화를 그리는 수준에 해당하는 돌에다가 자기들의 행적을 기록한다고 덤비고 있다. 이 사람들아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당신들의 마음에 비석을 세우라 하심을 모르는가.

다위드는 자기 내면의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는 마리아 교수나 알로펜 총주교가 구마라습이라는 고승이요 학승을 많이 흠모했음을 잘 알고 있다. 구마라습은 인도 고대어인 산트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일에 최선의 정교함을 보여주었다. 연대로 하면 4세기 중반이니 다위드 자신보다 5백여 년 앞선 인물인데도 그가 지녔던 자부심을 듣고 볼 수 있는 현장에서의 다위드는 자기 모습이 자꾸만 작아짐을 느꼈다.

온종일 다위드는 말없이 걷기도 하고, 산언덕에 머물러 키질 석굴 천불동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였다.

그의 무심한 듯한 눈길에 비치는 천불동, 키질 석굴의 불제자들이 한때는 삼천불동이라 했을 만큼 구도자들이 구마라습의 발아래로 모여들었다는 한 시대를 상상해 보았다.

다위드는 산언덕 비탈에 누워 잠이 들어 있었다. 온종일 말없이 다위드 곁을 지킨 샤프르와 사명은 묵상 중에 잠이 든 그의 모습까지를 그대로 지켜 방해하려들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난 이후 다시 밤이슬이 내릴 만큼의 시각이 되었으니 10시간은 꼬박 지난 것이다. 그 시간까지도 다위드는 잠을 자는지 묵상 중인지를 모를 만큼이었다. 샤프르와 사명도 덩달아서 종일 말없이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그들 둘은 다위드와 마찬가지로 종일 입에 물 한 모금도 넣지 않은 채 각기 깊이 생각들을 가다듬었다 하고 싶다.

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다위드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샤프르와 사명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스승님, 온종일 침묵의 시간이셨습니다. 저희도 스승님의 모습을 지키면서 기도했습니다.”

샤프르가 자신감 있게 말했다.

“그런가! 기도해야지. 기도란 깨어있음이요 하나님께 드리는 말씀과 동행하는 시간이지.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시간이야. 이 시간의 집중력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네.”

“네, 알겠습니다. 스승님.”

이번에는 불승 사명이 반응했다.

“사명은 어찌해서 내게 부담을 주시는고?”

다위드의 정색한 듯한 모습에서 부담 이상을 느끼는 듯 사명승은 주춤 숨을 가다듬더니 입을 연다.

“부담이라뇨? 스승님, 저는 스승님께서 샤프르처럼 저를 대해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뵈온 그 순간부터 분초도 거짓 없이 저는 스승님의 도제(徒弟)로서의 예를 다하고 있습니다.”

“아하, 그럼 내가 오히려 결례를 했구려. 내게 무엇을 얻을까 하고 크게 기대하지 말고 나이 많은 친구를 잠시 만난다 하구려.”

“송구하옵니다. 제가 스승님의 눈에 들지 않아도 저의 간절함까지는 물리치지 마소서.”

“그래요? 그 간절함이….”

“네, 저는 서투르나마 장안에 있을 때 성경을 좀 읽었나이다. 그런데 성경의 가르침에는 상당부분, 그것도 중요한 말씀들이 불경과 일치함을 느꼈습니다. 특히 10여 년 전으로 기억되는데 스승님 교단의 노 사제이신 유승이 저희 장안사에 오셔서 한 동안 머무신 일이 있었죠. 그 어른은 젊어서 신라라는 동방의 작은 나라에 선교사로 갔었답니다.”

“어, 그래요. 유승! 그 어른을 만난 일이 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왜 그걸 지금에야 말씀하시오. 아니오, 아니지. 미안하오. 내가 흥분하고 있구먼. 아, 그 어른 내가 일하고 있는 대진사에 오셨으나 중간에 무슨 오해가 생겼는지 내가 그 어른 소식을 알았을 때는 떠나셨지요. 한동안 백방으로 수소문했었는데 그 어른이 그럼 그때 장안사에 머물고 계셨군요.”

승려 사명을 만난 이후 처음으로 다위드는 흐트러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네, 그때 저는 그 어른의 말 상대가 될 수도 없는 수준이었어요. 그러나 그 어른이 도반들과 나누는 대화 중에 신라에는 훌륭한 고승 한 분이 있었다고 했어요. 삼장법사보다 더 높은 도의 경지에 오르신 석가모니 부처님인 듯한 어른이었다고 했습니다.”

“아, 그럼 혹시 원효 대사라고 하던가요?”

“네, 맞습니다. 원효 법사님이라 했습니다. 그 어른은 당나라 유학길에 나섰다가 어느 날 밤 부처의 이치를 깨닫게 되어 당나라 행을 접고 신라의 전국을 누비면서 크게 부처의 가르침을 폈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다위드가 승려 사명의 ‘그런데요’하는 대목에서 침을 꿀꺽 삼키는 것을 보았다. 그가 침을 삼키는 순간 목울대로 침 넘기는 소리에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네, 그런데 원효 고승의 가르침마다 꼭 유대 땅 곳곳에서 고난 받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말씀을 선포하는 듯 했다고 하더군요.”

“아, 하!”

다위드가 신음소리를 냈다.

“정말요?”

샤프르가 무례를 무릅쓰고 뛰어들었다.

사명은 샤프르와 다위드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샤프르에게 동의한다는 눈짓을 보냈다.

다위드는 말없이 불승 사명을 바라본다. 구도자는 모두 하나인가? 한 뜻을 구하니까 그것이 구도이겠고 참된 도는 한 분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래 진리를 구하는 길에 예수 제자 부처 제자가 따로 있겠나? 구하는 자들은 따로가 될 수 있으나 그들이 구한다면 그 가르침은 하나일 거야. 그러나 사람들이 그 하나를 만나지 못했으니 아직 세상은 평화하지 못한 것이겠지.

다위드는 일단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구마라습의 유적지에 와서 원효까지 만났으니 마음이 크게 기뻤다. 더구나 궁금했던 유승 사제의 안부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말없이 석굴 사원 쪽을 향해 걸었다. 샤프르는 졸지에 세 끼를 통째로 굶었으니 가끔씩 걷는 걸음이 꼬였다.

“스승님, 유승 노인은 신라로 돌아가겠다고 하시더군요.”

숙소 가까이 왔을 때 사명이 말했다.

“그래요. 왜 그러셨을까?”

“떠나실 때 그러더군요. ‘내가 주인인 줄 알았더니…’라고 하시면서 떠나시는 데 뒷모습이 어두워 보였어요. 아마 신라에서 가까이했던 원효 대사도 떠나고 그가 평생 모셨던 장안의 스승도 안 계시니 갈 곳이 없다 하시는 말씀도 하시더군요.”

“사명은 그 어른께 관심이 깊었나 보네.”

샤프르가 말했다.

“나는 진리가 하나임을 믿기에 여러분의 기독교에서도 스승을 찾는다 하지 않던가요.”

“그건 알지요.”

“신라로 가셨는지 당나라 땅 어느 곳에서 하늘 가실 준비를 하시는지도 모르겠네요.”

다위드가 허탈한 심정으로 말했다.

“당나라 안에는 여기 키질 석굴, 코초의 화염산 석굴, 난주에 있는 석굴, 고비 사막 족에도 ‘천불동’이라는 이름의 석굴이 여럿 있지요. 그 어디에 계신지도 모릅니다. 그 어른이 언젠가 저와 말씀을 나누는데 신라로 갔다가 여의치 않으면 일본으로 가고 싶다 하셨어요.”

“뭐 일본, 일본이 어디야?”

샤프르가 고함을 지른다.

“샤프르 왜 그래요. 스승님 앞에서….”

사명이 샤프르에게 말했다.

다위드는 유승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자신의 경솔함을 깊이 뉘우치고 매우 부끄러움을 느꼈다. 난 아직 멀었네 하면서 입 속으로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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