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만큼 인간을 죄짓게 하는 것이 없다. 성경은 수치심이 아담을 죄를 짓게 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아담은 우리 인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인간임을 만족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인간 이상이 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성경은 자신이 인간임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이상이 되려는 것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죄를 가져다주게 하는 원죄로 보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참 모습이 싫기 때문에 자신과는 다른 어떤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든지 아니면 아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타락한 존재가 되고 만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말은 자신의 모든 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이고 이것이 이루어져야 우리는 비로소 남도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자신 아닌 무언가로 꾸미려고 평생을 허비한다.

진실로 거짓자아로 사는 것이야말로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들어가는, 자신의 힘을 소비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아담과 이브가 실족한 이후로 여자는 해산하는 고통과 남자는 노동의 수고에 시달리며 단지 살아가는 일에도 많은 고생을 했다는 구절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런 삶의 형태는 오늘날에도 역시 동일하게 인간의 심리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가족이나 사회 속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런 수치심의 사람들은 역기능 가족을 만들어내고 수치심을 전가시키는 일을 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은 자신을 숨기는 일을 미덕으로 알고 지내왔다. 그러나 숨기고 있는 그 상태가 자신의 삶을 파괴시키고 자신을 가장하고 가족 내 희생양을 배출하고 있다면 이는 너무나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역기능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수치심을 경험하게 된다. 수치심이란 나에게 있어서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고 마음 속 깊이 느끼는 감정이다. 죄책감이란 내가 한 일에 대한 것이지만, 수치심은 내가 어떠한 사람이냐에 대한 것이다.
나 스스로는 내가 지적이고 총명하며 그 외에 다른 좋은 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만 수치심은 내가 다른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수치심을 가지고 있는 나는 투명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수치심은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든다.

수치심은 각종 중독, 정서적인 학대, 영적인 학대 혹은 성적인 학대가 있는 역기능 가정에서 쉽게 발생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학대로 인한 희생자가 가장 커다란 수치심을 느낀다. 이런 수치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건전한 도덕적 기준에 따라 살게 하는 건강한 수치심이 아니다. 이것은 자존감을 파괴하고 그 수치심이 만들어내는 절망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고병인가족상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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