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흥배 목사
꿈을 이루는 교회 담임

지금 우리 사회는 최순실 게이트와 탄핵정국으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이전투구(泥田鬪狗)’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는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으로, 명분이 서지 않는 일에 목숨 걸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을 말한다. 대체로 개들은 먹을 것을 가지고 싸운다. 뼈다귀 하나에도 죽기 살기로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게임이 있었다. 그 게임의 이름은 ‘치킨게임(chicken game)’이다. 이 게임은 자동차를 가지고 하는 게임으로, 한 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자신의 차로 상대방의 차를 향하여 정면으로 돌진한다. 두 대의 자동차가 마주보고 돌진하는데 먼저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정면충돌하여 둘 다 파멸하는 목숨을 건 승부이다. 이 게임의 이름을 ‘치킨 게임’이라고 부른 이유는 미국에서 ‘겁쟁이’를 ‘닭(chicken)’에 비유하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에는 권총에 1개의 총알만 넣고 총알이 든 실린더를 돌린 뒤에 서로 돌아가며 자기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러시안 룰렛 게임(russian roulette game)’이 있었다. 첫 번째 사람이 권총을 자기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운이 좋게 총알이 발사되지 않으면 다음 사람이 자기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이와 같이 다음, 그 다음 사람으로 옮겨갈 때마다 총알이 발사되어 죽게 될 확률은 점점 높아진다. 곧 목숨을 건 게임이다.

몇 해 전에 전북 군산시의 한 아파트 7층 베란다 난간에서 턱걸이를 하던 중학교 2학년 A군이 떨어져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명 ‘목숨 걸기 게임’의 하나로서 목숨을 걸고 베란다나 높은 곳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는 것이다. 그 학생은 자기 집 베란다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다가 힘이 빠져 떨어져 세상을 떠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의 심리상담 치료사인 리차드 칼슨 박사는 자신의 책『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에서 가치 있는 것에 목숨을 걸지 않고 오히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사는 현대인들을 어리석은 행태를 꼬집고 있다. 이와 같은 책이 나온 것을 볼 때 가장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 사람들도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왜? 현대인들은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일상을 반복하는 것일까? 칼슨은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자신의 담력이나 우월한 능력을 보이고 싶은 심리를 가졌거나 많은 스트레스로 인하여 목숨을 거는 게임 그리도 더욱 극단적인 게임을 선호하게 된다고 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웅 심리다. 유난히 영웅 심리가 강한 미국인들은 아이들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영웅 시리즈에 열광한다. 이 영웅 심리에 스트레스가 복합되어 더욱 극단적인 행동이나 게임을 찾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목사가 조직(?)의 보스인 남편이 교회를 나오기로 해서 한 여 집사의 집에 심방을 갔다고 한다. 그 집사의 남편을 보니 얼굴도 평범하고 체격도 크지 않더란다. 그래서 ‘당신이 정말 조직의 보스가 맞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기 목을 가리키면서 ‘이것만 내 놓으면 끝납니다.’라고 하더란다. 그 말을 들은 목사는 조직(?)의 보스도 목을 내놓고 사는데 ‘나는 과연 하나님을 위하여 목을 내놓고 살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말에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부부간에 죽기 살기로 싸우지만 자세히 들어다보면 인류평화를 중대하게 위협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소한 일로 목숨 걸고 다투는 일이 많다. 이웃 간에도 자신의 목숨을 걸만큼 중대한 일로 다투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시간이 경과해도 별 일 아닌 것을 가지고 칼부림을 하곤 한다. 순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순교할 만큼 가치 없는 일에 목숨을 거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 이유는 온 천하보다 생명이 귀하기 때문이며, 생명은 오직 하나밖에 없으며,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했다(막 10:45). 그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헤롯과 빌라도, 바리새인과 사두대인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가 위협했어도 그들과의 싸움에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를 지는 속죄의 사역, 곧 자기 사명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예수님처럼 순교할 만큼 가치가 있는 일, 사명에 목숨을 걸 때 한국 교회가 살아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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