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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주크 투르크와 전쟁 ②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202] / 사제 왕 요한⑥
조효근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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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호] 승인 2017.03.08  17: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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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저희 제국 카간이신 야율 대석의 명을 받고
온 사신들입니다. 우리나라 백성들은 상당수가 이슬람, 불교,
마니교, 기독교 신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귀국 셀주크 투르크와
형제관계를 맺고 서로 좋은 이웃이 되자는
제안을 하러 왔습니다.”


야율 대석의 신흥 거란제국은 셀주크 투르크의 산자르 술탄과의 충돌을 피할 수가 없었다. 전쟁을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다. 야율이 얻어낸 정보로는 산자르 술탄이 야율 대석과의 일전을 서두른다는 정보를 1년 전에 입수했다. 고양이 새끼가 호랑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느냐는 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산자르의 참모들은 야율 대석의 거란 부흥 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뛰어봤자 메뚜기다. 거란제국은 이미 사양길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들은 야율 대석이 아니라 고비사막 북방 몽골 초원의 부족들 움직임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중원 북방 초원 지대에는 수십 개 부족들이 할거하는 데 분산되어 각기 둥지 틀고 있는 부족장들 쯤이야 문제될 것이 없으나 만약 저들 중 강자가 나타나는 날, 저들이 결집력을 가지고 뭉친다면 몽골초원에서 흑해 주변까지 초원의 지대는 크게 요동칠 것임을 산자르의 참모들은 점치고 있었다.

이 같은 생각은 야율 대석도 이미 하고 있었다. 셀주크 투르크 세력만 돌파한다면 곧바로 로마제국의 후방을 겨냥할 수 있으며, 서방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십자군 전쟁을 조정해 볼 수도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휘하의 군사들이 아직은 미숙하다. 군사적으로 용맹하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야율은 군(軍)이 곧 민(民)이라는 생각을 했다. 전쟁에 돌입했을 때는 군이지만 전쟁기간 이외에는 민이다. 백성들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행복하려면 의식주와 함께 공동체 안에서 즐거움이 있어야 했다.

야율 대석은 산자르와 벅찬 일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가능하다면 한동안 크고 작은 전쟁을 하지 않고 싶었다. 그러나 이 같은 자기 속마음을 부하들 앞에서 내색할 수 없었다.

야율 대석은 전략회의를 소집했다. 그는 참모회의에서 셀주크 투르크와 가까운 어느 날 싸워야 한다고 운을 뗐다. 며칠 후에 우리는 봄꽃놀이를 간다는 식으로 가볍게 말문을 열자 참모들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들의 눈길을 어디에 둘지도 미처 선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어리둥절이었다.

“장군들, 왜들 그러시오?”
“칸이시여, 셀주크와 붙게 되면 끝장을 보게 되는 겁니다. 사활을 걸어야 하나이다.”
칸의 조카인 야율 직고가 말했다. 다른 장수들과 달리 그는 당돌했다. 물론 혈족이라는 이점이 작용했겠지만 그는 그것 말고도 당돌하고 늘 대담했다.

“알고 있소.”
“그럼 좀 더 깊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희 우군의 경우는 아직도 결속력을 위해 시간이 필요합니다만….”
우군 사령관 석로 탁 장군의 말이다.

“탁 장군! 장군 답지 않게 거 무슨 엄살이오. 누가 들으면 참말인 줄 알겠소이다. 헛허!”
야율 대석이 크게 웃었다.
“좌군 사령관 야율 직고 장군과 우군 석로 탁 장군은 나와 함께 목숨 버릴 각오를 해야 하오. 살아서 남으면 하늘이 우리 제국을 돕는 것이고 아니면 버리시는 것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폐하, 가능한 한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우리 폐하의 군사들은 훈련을 하면 할수록 민첩해지고 하루가 다르게 눈들이 더 반짝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원병들도 계속 물려오고 있나이다. 시간을 최대한으로 늦췄으면 합니다.”
“을지고 나도 당신 생각과 같아요. 그러나 이러다가 적이 선수치면서 공격해오면 무슨 망신이겠나.”
“아닙니다. 폐하, 저들이 국경을 넘으면 바로 그 순간에 전쟁이 개시되는 겁니다. 저희는 국경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나이다.”

“칸이시여. 저희가 먼저 평화를 제안하는 회담을 제의하면 어떨까요? 사실은 셀주크 투르크는 이슬람 신자로 구성된 집단이고 우리도 상당수 이슬람 신자들이고 불교도나 마니교, 기독교를 신봉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슬람과 우호적입니다. 서로가 평화롭게 살자고 제안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전략 사령관 톨리안 장군이었다.

“과연 전략 사령관답군요. 묘숩니다. 칸이시여, 톨리안 장군의 의견을 중히 여기셨으면 합니다.”
석로 탁 장군의 말이다.

“그래, 그 생각이 괜찮군요.”
야율 대석이 을지고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가 을지고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는 것은 결심이 되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야율 대석의 을지고에 대한 신뢰는 가끔씩 지나쳐 보이기까지 했다.

“폐하, 사신을 보내서 가급적이면 빨리 회담을 성사시키도록 하소서. 소신이 사신으로 가고 싶나이다. 소신을 보내 주소서.”
“아니야. 을지고는 아니야. 하루 더 생각하고 내일쯤 다시 의논하기로 하죠. 오늘은 각 군의 전투태세 점검을 한 번씩 해 주시오.”

야율 대석은 전략회의를 마친 후 을지고의 부대를 방문해 을지고와 함께 병사들을 돌아봤다.
“을지고. 이 밤에 전쟁이 터질 수도 있음을 명심하게….”
“네! 폐하!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나이다.”

“단순한 경각심을 말하는 게 아닐세. 셀주크의 산자르는 전술전략이 아주 능한 명장이라더군.”
“네.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폐하의 명성을 알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그동안 그가 하고 있는 잔꾀를 보면 다 압니다. 그들은 자체 군사훈련을 하면서 그것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위협뿐 그 다음 행동은 없습니다. 그러기를 벌써 1년이 가깝습니다.”
“바로 그거야. 그래서 나는 그들이 오늘밤이라도 기습 공격할 수 있다고 보는 거야.”
“아닙니다. 폐하, 기병을 움직이는데 그들이 밤을 선택하지는 않겠지요.”

“그래. 그러나 야습. 야습을 경계해야 해.”
“폐하, 저희 군은 기습전에 대비해 철벽같이 방어군을 배치했습니다. 방어군이 삼중 벽이요 그 뒤로는 망대를 설치하고 불을 밝힌 곳도 있고, 불을 끄고 지하에 병력을 배치한 군도 열 군데가 넘습니다. 셀주크는 쉽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폐하, 우리는 백전백승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하고 있군.”
“전략 사령관 톨리안 장군의 지시였습니다. 톨리안 장군을 크게 칭찬하셔야 합니다.”
“그래. 그 사람 내게 그렇게까지 상세하게 보고하지 않던데 참으로 과묵한 장수로군.”
“네, 폐하의 홍복이옵니다.”

야율 대석은 병기 창고로 갔다. 창고 뒤편으로 칼과 창, 방패, 화살촉을 만드는 장수들까지 찾아가 일일이 만나서 수고한다고 치하했다.
다음날, 야율 대석은 산자르 술탄의 셀주크 국경을 넘어 회담을 제안하는 사절단을 보냈다. 다섯 명의 사절들이 하얀 깃발을 들고 갔다.

그들은 셀주크 군 방어 초소에서 제지당했다. 연락병이 말을 타고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붉은 망토를 목에 두른 장수와 중무장한 마차 한 대가 왔다. 야율 대석이 보낸 비무장 사절단 다섯 명 모두를 마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사절단들은 셀주크 군부대 사령관에게 인도되었다.
“너희는 정탐꾼이지? 간사한 방법에 익숙한 놈들이군.”
셀주크 장수가 다섯 명 사절단 모두를 무릎 꿇린 다음 모욕적인 방법으로 질문을 던졌다. 침을 뱉어내는데 직접 사절단들에게는 아니지만 침 가루가 얼굴에도 튀어오고 몸에도 묻는다.

“아니, 보슈. 전쟁 중에 이러는 법은 없소. 우리는 형제처럼 지내자는 평화회담을 제의하러 온 이웃나라 사절단이오. 어찌 이런 대접이 있단 말이오.”
단장 석진 마루가 항의했다.

“우리가 언제 그대들과 형제하자고 했소. 당신들은 야만인들이야. 감히 우리 셀주크 가문과 형제라는 말을 함부로 해. 그리고 당신들은 정탐꾼이야. 아마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거야. 알겠어!”
기가 막힐 노릇이다. 비무장으로 흰 깃발을 들고 평화를 제안하러 온 상대를 모욕하고 공갈하는 수준이 상대하지 못할 자들이라 판단되었다. 석진 마루는 단원들에게 단단히 각오하라고 타일렀다. 그리고 셀주크가 몰아넣는 골방으로 끌려가서 빵 덩어리 하나씩 받아들고 그것을 천천히 뜯어먹으며 시장 요기를 했다.

하룻밤 지나고 석진 마루는 책임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그의 요구는 하루가 지난 후에 이루어졌다.
“저희는 저희 제국 카간이신 야율 대석의 명을 받고 온 사신들입니다. 우리나라 백성들은 상당수가 이슬람, 불교, 마니교, 기독교 신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귀국 셀주크 투르크와 형제관계를 맺고 서로 좋은 이웃이 되자는 제안을 하러 왔습니다.”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알겠소. 그러나 여러분의 나라는 금나라에 패망하고 서북쪽으로 도망 온 요나라의 패잔병들이오. 그런데 운 좋게 지금 카라한 제국의 땅을 도둑질하여 살면서 마치 우리 셀주크와 대등한 행세를 하며 평화나 형제애를 말하고 있으니 그 거짓됨만으로도 죄가 되는 것을 아시오. 당장 목을 쳐야 하겠지만 우리 제국의 술탄께서 여러분을 가상히 여기시는 바이니 이만하고 돌아가시오. 쓸데없는 수작을 하고 자꾸 변명들을 늘어놓으려들면 목이 몇 개 더 있어도 모자랄 것이오!”

“호의에 감사하오이다. 그러나 저희의 이 제안은 저희가 돌아간 후에도 유효합니다. 좋은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하면서 사절단을 보내주시기를 바라며 기다리겠습니다.”
석진 마루는 소득 없이 빈손으로 귀국하게 됨을 부끄럽게 여겼다.

작가 조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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