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11 ] / 사제 왕 요한 ⑨

▲ 중국 란주에서 만난 주민들의 한가로운 모습.


셀주크 투르크 산자르 술탄의 수십만 명의 대군이 카트완 전투에서 대패했다. 이 소문은 중앙아시아지역에 할거하는 군웅세력들은 물론 지중해변 성지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유럽 기독교의 십자군과 이슬람 종교세력 사이에서도 소문이 번지고 있었다.

야율 대석은 1141년 카트완 전투 영웅으로 몽골 초원의 굵직굵직한 케레이트족, 나이만족, 옹구트족 영웅들로부터도 찬사 받았고 경계심을 드러내는 부족들도 있었다.

처음부터 야율 대석이 눈여겨 보고 있는 케레이트족으로부터는 사절단이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전쟁에 승리한 이후에 1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군사 지망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천산산 골짜기의 위구르인들, 이식쿨 주변의 젊은이들, 준가르 사막지대에서도 남부여대하고 인걸들이 야율 대석의 휘하로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야율 대석은 을지고와 마주앉아서 걱정부터 하고 있었다.
“을지고! 내가 이거 너무 붕 뜨는 거 아닌가? 저 많은 사람들 좀 보시게 저 사람들을 어찌 다 먹여 살린단 말인가?”

을지고는 야율 대석의 이 말을 듣다가 깜짝 놀랐다. 그는 야율 대석과 만나서 ‘황제 폐하’를 혼자서 외치던 초기 인물이 아니다. 카라 키타이 왕국의 2인자라고 해 어느 누가 시비할 사람이 없었다. 직급으로는 전시체제이니까 좌우 장군인 야율 직고와 석로 탁이나 을지고가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을지고는 문무를 총괄하는 점만으로도 무관들인 좌우군 사령관들과는 그 무게가 다르다. 그렇지만 을지고는 지금도 야율 대석 앞에서는 이마를 바닥에 눕힌다.

“을지고 대인, 내 체면 좀 세워 주시오. 그래도 지금쯤은 우리의 서 요(흑거란, 카라키타이)가 제국이라고 해도 될 만큼인데 야율 제국의 제2인자가 아무 곳에서나 내게 머리를 조아리기만 하니 그래서 되겠소. 이제부터는 제국은 물론 짐의 체통을 위해서도 제발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폐하! 황공하옵니다. 그러나 폐하 앞에서 2인자라니요 2인자는 없습니다. 폐하는 이 하늘 아래서 오로지 한 분이십니다.”

“좋아요. 당신의 그 말뜻은 잘 알겠으나 나와 둘이서 국사를 논할 때라도 바르게 앉아서 대화를 해야죠.”

“네, 네! 폐하께서 조금 전에 하신 말씀을 거두시옵소서. 백성들의 먹을 것을 폐하가 따로 준비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폐하께서 다 준비하셨기 때문에 천하의 백성들이 폐하의 품으로 달려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인이 긴급 소청이 있나이다. 폐하께서 카쉬가르, 야르칸트, 허탄 지역을 순방해 주셨으면 합니다. 허탄에서 현지 사정을 살피신 후 코쵸(투루판), 에밀, 발라사군으로 귀환하시면 됩니다. 금번 순방지에 가시면 셀주크 투르크를 격퇴한 그들 지역의 젊은 군졸을 길러낸 부모들은 물로 그들의 신앙까지 격려해 주셨으면 하나이다.”

“알겠소. 그런데 그들의 신앙이라니 어느 종교를 말하는 것이오.”
“폐하. 불교나 도교, 마니교, 이슬람 다 폐하의 종교들이지만 금번에 공을 많이 세운 종교는 단연코 기독교 신자들입니다. 우리 제국 백성들은 폐하를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고 있나이다. 단순한 신자가 아니라 사제(목사)요 황제의 신분을 가지신 분으로 소문이 나 있나이다.”

“아, 저런…. 내가 듣느니 처음이구먼. 그런데 내가 사제 신분이라니…, 이거 몸이 오싹해지는군.”
“아니옵니다. 폐하는 일찍이 네스토리우스 파를 신봉하는 가문 출신 기독교 신자이신 것으로 소인은 알고 있나이다.”

“조상 때부터 신자인 것은 맞지. 그러나 나는 반쪽짜리 신자일 뿐이야. 신앙을 말하면 자신이 없어요. 거란제국을 창건(AD 907년)하신 8대조 할아버지(야율 아보기) 이전부터 우리는 저 유명한 동로마 제국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의 믿음을 따르는 신자였어요. 8대조 할아버지가 당태종을 가르치셨다는 알로펜 총주교를 존경하고 평생 따르셨다는 집안 어른들의 교훈이 가풍으로 내려오고 있지.”

“네, 소신 또한 익히 알고 있었나이다.”

야율 대석은 을지고와 이야기하는 시간이면 마냥 좋았다. 불편함이 없었다. 그가 고개를 굽실거리고 황제라고 호칭해 주어서가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냥 좋았다.

야율 대석이 1천여 명 이상의 호위부대를 이끌고 순행을 마친 것은 20일 후였다. 일행이 발라사군 도착 이전에 전령이 달려왔다.

십자군 진영에서 사절단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야율 대석은 을지고와 눈이 마주치자 어깨를 장난스럽게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으쓱 하더니 너털웃음을 웃어넘긴다.

“폐하, 십자군이 교황이나 비잔틴 황제가 기독교 군사를 많이 배출해 준 지역을 어여삐 여기시고 이 바쁜 전시에 찾아주신 폐하의 은혜가 하늘의 하나님께 상달했나봅니다.”

“그래, 을지고 장군의 기도가 무엇인가, 또 다른 문제를 우리에게 부탁하는 것 아닐까요?”
“아니옵니다. 오직 폐하의 은혜를 칭송코자 함일 것입니다.”
“그래, 그렇다고 합시다. 을지고 장군은 짐이 그렇게 좋은가요?”
“황공무지로소이다.”

야율 대석 일행이 카간의 임시 집무실에 도착하자 환관장 지성춘이 보고했다. 그의 보고 내용은 셀주크 투르크 산자르의 패잔병들이 비잔틴 왕조의 동중부인 아나톨리아를 거쳐서 이고니온(콘야)의 전방부대와 합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로교환 협상을 요구해왔다는 것이다.“포로 교환이라….”

야율 대석 앞이지만 을지고가 나섰다.
“환관장! 그것 때문에 전령을 띄웠소이까?”
“아,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을지고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 보고의 중심은 셀주크의 산자르 술탄 이야기가 아니라 십자군 쪽에서 정보를 가지고 왔나이다.”
“뭐! 십자군 정보라고? 그럼 유럽의 기독교가 직접 사신을 보낸 겁니까?”
“뭐, 공식 사신이 아니라 저희에게는 지체하기 어려운 주요 정보이옵니다.”
“더 자세히 말해 보시오.”

“산자르 술탄을 추적한 우리 정보부대가 에뎃사 지역에서 십자군은 물론 신성로마제국과 비잔틴 제국의 십자군 연합부대를 만나게 되었답니다.”
“뭐요!? 잠깐. 황제 폐하. 별실에서 비공개로 보고받으셔야겠습니다.”
“그리 하시오.”

야율 대석이 허락하자 을지고와 환관장 지성춘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무실 밖으로 나가야 했다.

정보원들의 대강 내용은 이렇다. AD 1097년 평온하던 성지 예루살렘을 공격해 예루살렘 거리를 피바다로 물들였던 교황군들이 1099년 이후에는 예루살렘은 물론 안티오크나 에뎃사 등지까지 교황의 도시나 십자군 성으로 만들었으나 1140년 무렵부터 이슬람군의 역공을 받았으며, 동로마제국(비잔틴)의 주요 교두보가 에뎃사인데 이 도시가 이슬람군에게 재정복되어서 십자군은 언제 모든 점령지에서 퇴각해야 할지 모르는 지경이었다. 퇴각이 아니라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으니 자칫 비잔틴제국이나 신성로마제국이 위태롭게 된 것이었다.

십자군 정보원들이 유럽의 안녕을 걱정하다가 현재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산자르 술탄의 대군이 야율 대석의 카라키타이의 이름 없는 부대에게 대패했다는 전황 때문이었다. 산자르 술탄의 셀주크군은 십자군과 싸워서 늘 이기는 부대로서 그들의 전술전략은 물론 그 용맹이 율리우스 시저의 로마군이나 알렉산드로스의 점령군에게 비교된다고 큰소리쳤던 부대였다. 바로 그 산자르 술탄의 셀주크 정예대군이 야율 대석의 오합지졸에게 단숨에 전멸하다시피 했으니 중앙아시아의 이름 없는 신흥부족국의 실력이라고 우습게 볼 수 없었다.십자군 진영 사람이 카라키타이 정보원에게 살짝 건네는 말이다.

“당신들의 부대가 우리 십자군을 돕기만 해준다면 셀주크 이슬람 정도는 간단히 요리할 수 있겠소이다.”
“당신들, 우리 카간의 군대가 기독교 부대나 다름없는 것을 아시오?”
“뭐요? 기독교 부대라고….”
“그럼요. 우리는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입니다.”
“뭐! 네스토리우스 파 이단들 말입니까?”

십자군 정보원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는 서둘러서 말을 마치고 떠나버렸다.
내용의 대강을 들으면서 가닥을 잡은 을지고는 야율 대석에게 말했다.

“폐하! 우리가 십자군의 현황과 셀주크 투르크의 형편을 알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있을 듯하옵니다.”

을지고는 십자군의 앞날까지 걱정하면서 퇴청했다.

작가 조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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