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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의 왕국을 이루자_1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207] / 사제 왕 요한 ⑫
조효근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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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3호] 승인 2017.05.17  15: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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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투푸판 사막지역에서 만난 주민들의 한가로운 모습.

 

야율 대석은 셀주크 술탄 산자르와의 대회전 후 3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아직은 장년기 초의 나이였으나 전투 중에 입은 상처를 쉽게 생각했다가 수명을 단축한 듯했다. 그러나 그는 사후에도 10여년 이상 통치력을 발휘했다. 그의 손자인 야율 요한이 다섯 살 무렵까지도 주변국들로부터 야율 대석은 살아있는 통치자였다.

요즘 북한 식 김일성의 유훈통치 같은 형식이라고 할까, 아무튼 야율 대석의 빈자리 때문에 당장 나라가 위태로워진다거나 그의 지도력이 절실하게 필요할 만큼 그 주변국들의 위협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역사는 그렇게 전해지고 있었다. 아마 추측컨대 그의 인품이나 지도력이 너무 아쉬운 나머지 카라 키타이(흑 거란) 국민들의 열망이 지켜낸 그리움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야율 대석이 갑작스런 병환으로 생사를 오고가는 3일 동안 을지 고는 단 한 순간도 그의 우상인 야율 대석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잠시 화장실 다녀오고 싶다 하는 시간이면 야율의 숨이 멎는 것 같아서 밖에 나가지 못하기도 했었다.

“폐하, 신에게 명하신 말씀 가슴 깊이 새겨들었나이다. 아무런 염려 마시옵소서.”
을지 고는 야율 대석이 왕세자인 야율 아열이 왕좌에 오르는 것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문제를 고심했던 부분도 알고 있다. 그들은 통치자의 자리가 견고하지 못함을 함꼐 걱정했으나 대석은 을지 고의 확고한 다짐을 받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 아무 걱정 마소서. 황후 마마의 진솔하신 성품을 황상께서도 잘 아시는 바 태산처럼 믿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여기 소신이 있나이다. 소신의 목숨이 붙어있는 한 보좌를 반드시 지켜내고 강성한 제국을 이루어낼 것입니다.”

“그래, 그으래요. 내가 나의 사부님을 믿지요. 믿고 말고….”
야율 대석은 을지 고를 향해 종종 사부(師父)로 호칭한다. 그러지 마시라고 을지 고가 펄쩍 뛰는 시늉을 하지만 야율 대석은 듣지 않았다.

“사부님! 나는 사부님을 만나서 잃어버린 신앙을 되찾았고 금나라에게 빼앗긴 거란 제국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지요. 이 어찌 사부님의 은덕이 아니라 할 수 있나요.”

이렇게 말할 때마다 야율 대석은 마치 어리광을 부리는 스승 앞에서의 애제자의 모습이었다. 사부님의 손을 놓지 않고 있는 야율 대석의 손이 땀에 절어 끈적거리면서도 온기를 유지했었는데 그 손이 차가워짐을 을지 고는 느꼈다. 황후에게 눈짓을 했다. 황제의 체온이 식어간다는 암시였다. 그때 야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부님, 십자군의 요구는 묵살하고 우리 카라 키타이와 주변의 네스토리안 국가들과 연합해 사제 왕을 많이 일으켜야 합니다. 사제(목회자)가 다스리는 왕국 말입니다.”
“네, 폐하! 깊이 새겨들었나이다.”
을지 고는 야율 대석이 병석에 눕기 전에도 십자군 진영에서 이슬람군과의 전쟁에 지원군 파견 문제를 놓고 깊이 의논한 바 있었다. 야율 대석은 십자군 진영이 이슬람과 사활을 건 전쟁에 매달리는 것 자체를 옳지 않다고 했었다.

야율 대석과 을지 고가 말하는 중앙아시아 일대의 주변국가들은 그들 카라 키타이는 물론 토번, 키르키스, 서주회골(위구르), 황두 회골, 서하, 알랑개, 동해 여진, 금나라, 몽골 등의 나라에는 이슬람과 네스토리안 기독교가 함께 선교하고 어떤 경우에는 얼마간의 대립을 하기도 하지만 단 한 번도 전쟁을 하거나 내전상태로 서로의 실력행사를 한 일이 없었다.

야율 대석은 십자군 전쟁을 먼저 일으킨 유럽의 로마 가톨릭이 실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을지 고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왕관 쓰고 또 나라를 지킨답시고 전쟁을 하는 따위에 인생을 바치지 않고 사제의 길을 갔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을지 고는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야율 황제의 두 손을 조심스럽게 모아 쥐었다. 그러자 야율이 눈을 뜬다.
“응, 내가 잠시 잠이 들었었나봐. 주 예수께서 보내신 천사들이 하늘 가득 둘러서 있더라고. 사부님! 사부님….”

야율의 눈동자가 흐려짐을 느꼈다. 을지 고는 황태자이신 야율 아열을 빨리 잡아 이끌었다.
“태자님. 폐하를 바라보세요. 말씀을 하실지도 모르거든요.”
“네, 장군님.”
야율 아열은 아홉 살 어린 나이였다. 그러나 앞으로 1년만 지나면 황후 소탑의 섭정을 거두고 친정을 베풀게 할 계획을 을지 고는 세우고 있었다.

야율 대석은 하늘나라로 갔다. 그는 황제보다는 사제였기를 늘 갈망했었다. 을지 고는 야율 카간을 황제이면서도 사제 왕 야율 대석으로 선언하였다. 그리고 부활신앙의 권능으로 그는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신다고 선포하였다. 야율 대석의 장례는 정부요인들과 군 지휘관들만 모여서 장례식이라기보다는 사제 왕 등극식처럼 치러졌다. 나라의 지도자나 군 지휘관들 또한 이에 동의했다. 그리고 주 예수의 부활을 본받아 야율 대석 또한 부활하여 영원히 이 세상의 구원자가 되었다고 믿었다.

이는 을지 고 장군이 카라 키타이 왕국에 선포한 부활신앙의 가르침이었다. 거란 제국이 금나라에 의해서 멸망했으나 지금의 터전인 중앙아시아 한 중심지에 카라 키타이, 곧 흑 거란이라는 제국의 이름으로 살아있듯이 야율 대석은 사제 왕의 이름으로 살아있다고 믿도록 백성을 지도했다.

을지 고는 섭정 황후 소탑을 설득해 야율 아열이 열 살 되는 이듬해에 왕권을 아들에게 넘겨주도록 했다. 그리고 왕비를 맞이해 성년의 예를 치러주었다.

야율 아열은 명실상부한 카간(왕)이 되었으나 욕심 없는 인물인 은지 고 장군이 자기 곁에서 사실상 국사를 대신해 주기를 간곡히 원했다.

“사부님, 부황께서 모시는 사부시니 저에게도 사부이십니다. 장군은 이 나라를 있게 한 공신 중 공신이시며, 또 그 어떤 말로도 사부께서 우리 흑 거란 왕국의 주인이 아니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니옵니다. 절대로 아니옵니다. 그같이 말씀하시면 폐하께서 소신을 죽이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소신 을지 고는 반역자가 됩니다. 그 말씀 어서 서두시옵소서. 폐하. 아니하시면 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나이다.”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폐하! 어서요. 소신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을 지금 거두어 주소서. 지체하시면 소신은 자진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나이다.”

“아, 알겠습니다. 거두지요. 네, 거두었습니다.”

“황공하여이다. 폐하. 폐하는 이미 헌헌장부이시고, 오늘부터는 소신이 곁에 없어도 정무를 충분히 살피실 수 있나이다. 소신은 케레이트 국에 잠시 다녀왔으면 합니다.”

“아닙니다. 사부님. 케레이트는 사른 대신을 보내시고 사부님은 제 곁에 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사부님이 예뻐하시는 우리 세자 요한이를 두고 어디 가신다고 그러시나요.”

야율 아열 카간은 자리를 박차고 내려와서 을지 고를 붙잡았다. 세자 요한이라 함은 야율 카간의 첫 아들이다. 첫돌이 되려면 몇 달이 더 있어야 하지만 건강한 아이였다. 을지 고는 마음속으로 큰 인물이 나왔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어서 바쳤다. 할아버지의 심정으로 작명했고 야율 카간 또한 그걸 원했었다.

궁녀가 왕세자 요한을 카간의 집무실로 안고 나왔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궁녀가 당돌하게 그리 했다고 생각한 을지 고가 궁녀를 나무랐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인고?”
“아닙니다. 사부님. 제가 데려오라 했나이다.”
“아, 네. 폐하.”

을지 고의 낯빛이 금새 환한 미소로 바뀌었다. 조심스럽게 왕세자를 받아 안았다.
“허어, 왕세자 전하. 신을 알아보시나이까?”
을지 고는 왕세자 요한의 얼굴 가까이 자기 얼굴을 들이밀면서 기뻐했다.

“폐하. 요한 세자님 얼굴을 보소서. 이 눈을 자세히 보세요. 총명이 철철 넘치옵니다. 이 눈 꼬리를 보시옵소서. 당찬 성품이 보입니다. 장차 선 황제님은 물론 우리 거란 제국의 창업주이신 야율 아보기 황제만큼 큰 군주가 되시어 만세에 우리 제국의 이름을 알릴 것입니다.”

“그래요. 사부는 요한이가 그렇게 좋으시면서 다녀오시자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르는 먼 여행을 하신다고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폐하. 저는 요한 왕세자의 치세 때를 대비해 지금 케레이트 방문을 하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럼 짐더러 빨리 죽으라는 것입니까?”

“아, 아닙니다. 폐하! 백년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케레이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자면 몇십 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지금 북방 초원에서 용들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케레이트는 물론 나이만이나 옹구트 그리고 몽골에서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고 있어요. 앞으로 중앙아시아와 북방초원 일대에 있는 20여개의 부족국가들이 치열하게 경쟁할 것입니다. 우리는 국력의 경쟁보다 기독교 신앙으로 승부하는 기독교 제국을 선도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금부터는 전국 조직을 교회의 선교분할 지역화 해야 합니다. 마침 전쟁도 없는 때이니 전국민의 신앙훈련과 성경 가르치기에 전념해야 합니다. 제가 잠시 우리의 신앙 경쟁국이기도 한 케레이트를 다녀올 계획도 그래서 세워두었나이다.”

카간 야율 아열은 을지고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작가 조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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