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동란 때 아버지 순교, 죽음 연루자 용서 현장 목도한 노태철 목사(주님앞에제일교회 원로)

교회서 기도하다가 아버지, 동생과 함께 공산군에 
붙들려 간 아버지, 전도하며 순교의 길 택하다

할아버지의 “용서” 결단으로 많은 이들 고향 
교회의 기둥들 돼

순교, 화해, 사랑의 몸동작 목회 현장서 감당- 후손들 
통일의 역군으로 역할 다하길

 

▲ 노태철 목사

6월은 ‘국가’의 중요성을 새삼 떠올리게 되는 달이다. 6.10 항쟁의 희생을 뚫고 분출된 민주화의 초석은 올해 3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대통령 간선제를 고수하려는 4.13 호헌 조치를 반대하며, 독재 타도를 외치다 사망한 대학생(박종철, 이한열)들의 희생이 기폭제가 되었다. 

한편 우리나라 한반도의 비극 가운데 6.25 동란을 빼놓을 수 없다. 같은 동족끼리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한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남북으로 나누어져 같은 핏줄끼리 만나지 못하는 형국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 신앙의 집안, 항거하다

노태철 목사(주님앞에제일교회 원로, 76)도 민족상잔의 아픔을 몸소 앓은 사람이다. 일제시대인 1941년에 태어난 노태철 목사는 6.25 전쟁 과정에서 열 살 때(1951년) 아버지(노형래 집사)를 여의었다. 아버지 나이 겨우 28살이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 노형래 집사는 순교자로 불리며 한국기독교 역사 속에 살아 있다. 노태철 목사의 집안은 할아버지(노승우 장로) 때부터 철저한 신앙으로 서가고 있었다.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단호히 거부하여 보통학교를 퇴학당했을 때 할아버지 노승우는 아들을 덥석 안고 믿음의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아들을 격려할 정도로 신앙의 기반이 단단했다.

공부의 열망이 그렇게 사그러들었지만 노형래 집사는 미국 선교사들이 설립한 배양학교에 입학해 학업과 신앙을 키워갔다. 그는 나라를 빼앗긴 민족을 위해 열심히 봉사했고, 신앙에 매진하면서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지역사회를 위해 애썼다.

마침내 해방! 길고 긴 암흑의 세월이 종식됐다. 그때 아버지 노형래 집사는 해방 이후 충남 서천군 마서면 한성리 그의 고향에 자기 집을 개방하여 한성교회를 개척 설립했다(1948년).

그런데 인근 마을의 교회에는 목회자가 없어서 폐쇄할 상황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은 노형래 집사는 ‘주께서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문 닫을 수 없다’고 하며 자전거를 타고 매 주일 3곳의 교회를 순회하며 예배를 인도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조국은 좌우 사상의 대립으로 불안하고 무질서한 상태였다. 노형래 집사는 나라와 국가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건국준비위원으로 활약, 대한민족청년단 서천군 군당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런 와중에 1950년 6월 25일 동족끼리의 전쟁이 시작됐다.

모두들 피난길에 나섰지만 노승우 장로와 아들 노형래 집사는 신앙 양심상 교인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예상대로 공산군이 서천에 밀어닥쳤고, 부자는 교회에 엎드려 기도하다가 체포되었다. 노형래 집사 동생 노학래도 함께 붙잡혔다.

 

●● 죽음의 길, 선택하다

북한의 공산군은 이들 3부자를 회유했지만 믿음으로 무장하고 주님을 위해 순교하기로 한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했다. 노형래 집사는 견딜 수 없는 고문을 당하는 부친과 아우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혼자서 모든 책임을 지기로 했다. 각 방에 있다가 심문을 받기 위해 포승줄로 묶인 채로 통로에서 만날 때면 노형래 집사는 아버지와 동생에게 “교회를 위해서라도 책임을 전부 내가 맡아 지고 죽을 테니 그리 알라”고 했다. 

그 말대로 노형래 집사는 공산당원들에게 ‘해방 후의 재건 사업은 혼자서 주도적으로 했으니 전적으로 자기에게 책임이 있고, 아버지와 동생은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와 동생은 석방됐다.

풀려난 노승우 장로는 아들을 빼내기 위해 노심초사 노력했다. 친척 중 공산당 요직에 있는 이를 찾아가 부탁했을 때 그가 말했다. “심문하는 내무서원에게 누구든지 예수를 믿어야 구원 얻는다고 하니 풀려나긴 어렵소. 예수를 부인하고 기독교를 배교하라는 강요 앞에서 회개하고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니 그를 어떻게 풀어줄 수 있겠소.”

화가 난 공산당들은 미군과 내통한 간첩 혐의를 인정하라고 강요하고, 서천군 민족청년단원들의 명단을 내놓으라며 생트집을 잡아 갖은 욕을 다 퍼붓고 고문을 자행, 견디지 못하고 노형래 집사는 28살의 나이에 감옥에서 순교했다.

전쟁이 끝나고 공산당이 물러갔을 때 노태철 목사는 아버지를 죽인 사건에 연루된 20여 명을 작은 아버지가 체포해 집안 뜰 앞에 무릎 꿇어 앉혀 놓은 것을 기억한다. 공포에 떨고 있는 그들에게 할아버지 노승우 장로는 체포해 온 아들 학래에게 “주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았나, 그들에게 조금도 해를 가하지 말고 풀어주라”고 말했다. 그것은 호령이었다.

그리고 어머니 이기화 권사에게 할아버지는 “남편을 죽인 원수들이지만 저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교회로 사용하던 사랑채를 개방하여 모두 집안에 들어오게 하여 따뜻한 국과 밥을 지어 대접하라”고 말씀하셨고, 어머니는 그대로 행하셨다.

그들은 예상치 않은 사랑의 용서에 감동받아 모두 교회에 나와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되었다. 그들은 사죄의 뜻으로 집에서 기르던 가축(닭)을 지게에 지고 와서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는 노승우 장로께 용서를 빌며 회개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가축들을 다 되돌려 주고, 뉘우쳐 회개하는 그들을 감싸 안으시며 용서해 주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노태철 목사에게 “이분들을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라”며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사랑해야 하는 것임을 몸소 행하게 하셨다.

 

●● 용서하니 원수가 사랑이 되더라

노태철 목사는 10여 년 전 아버지가 개척한 한성교회의 초청으로 부흥회를 인도하러 간 적이 있다. 그때 그들에게 밥을 대접받고 오면서 많이 울었다. 

“서로 적대시 했던 서슬퍼런 그 당시 상황들이 눈에 선하고 어른거렸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심었더니 원수같던 이들이 사랑의 사람이 되어 교회의 어른, 중진들로 포진돼 있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던지….”

그의 눈시울은 불거졌다. 아버지의 순교로 할아버지와 산 시간이 더 많았다는 노태철 목사는 “우리집 가훈이 경천애인인 것처럼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나님의 사랑을 많은 백성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몸소 실천하셨다”고 말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노태철 목사가 개척지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은 빈민촌인 지금의 교회(서울 금천구 탑골로)로 인도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온 동네에 천막을 치고 살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공동화장실을 사용했는데, 그 통이 넘쳐서 온 동네는 분뇨 냄새로 진동했고, 나중에는 질병까지 생겼을 정도였습니다. 도로, 수돗물, 화장실이 제대로 없고 밤이면 깜깜했어요.”

그런 동네에다 개척한다고 노태철 목사는 천막을 치고 개척예배를 드렸다. 바닥에는 가마니 7장을 깔아놓고 15명이 앉았고, 사과 궤짝을 세워서 강대상 삼아 설교했다. 그렇게 어려울 때인데도 왜 그렇게 신났는지… 많은 이들이 복음을 들으며 힘을 내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해도 너무 기분 좋고 감사한 일이다.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노태철 목사는 어머니에게 시골의 재산을 요청했고, 어머니는 그대로 재산을 팔아서 교회도 짓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 내어주셨다.

그런 터전 속에서 노태철 목사는 40여 년간 목회했고, 지금 그 교회는 아들(노윤식 목사)이 이어서 하고 있다. 지금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여전히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일주일에 세 번 무료급식(1회에 200여 명) 하고 복음을 전하며 ‘식구’의 길을 열어간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이 키워주신 복음의 씨앗이 저와 교회에 기반이 되고 있음을 기억합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면 모든 일들이 나중에는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눈으로 목격했고, 지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그리스도의 영접의 은혜, 아버지의 순교를 이은 노태철 목사의 자손들은 그 순결한 신앙을 지켜내고 꽃피우기 위해 사회 곳곳에서 힘쓰고 있다며 다음과 같은 소원을 꺼내놓는다.

“순교와 사랑의 정신을 이어받아 앞으로 통일 시대에 제 자손은 물론 그들이 몸 담고 있는 교회들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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