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은성 교수
총신대학교, 역사신학

나는 비가 오면 흥분된다. 지난 주일 새벽 억수같이 비가 오는 가운데 짧은 팬츠를 입고 중랑천으로 여느 때처럼 나섰다. 기대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거의 없다. 이따금 우산을 쓰거나 자전거를 타고 바삐 움직이는 행인들 외에는 자동차 전용 도로에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뿐이다.

모자를 눌러 쓰고 준비운동을 한 후 달린다. 물웅덩이를 피하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실패한다. 워낙 비가 세차게 내리다보니 금새 신발이 물에 젖었다. 중랑천 물은 금새 흙탕물로 변하여 여러 개울에서 밀려오고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로 인해 힘차게 한강으로 나아간다. 수 킬로를 뛴 후 반환점을 돌고 집으로 돌아와 상쾌한 심정으로 샤워하고 설교를 마무리한 후 교회로 향한다.

일주일에 두세 차례 조깅을 즐긴다. 겨울에 눈이 내리거나 강추위가 몰아치면 옷을 두껍게 입고 중랑천으로 향한다. 이것은 유학 가기 전 30대부터 해왔던 습관이라 60대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변함없다. 무릎이 아파 더 이상 뛰지 못할 때까지 뛰고 싶다.

혹자는 건강을 위해서 뛰느냐고 묻는다.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순 없어도 굳이 건강 때문만은 아니다. 건강 문제는 40대 후반에 이르러 걱정했지 30대에 무슨 건강 때문에 조깅을 할까? 그러면 왜 그렇게 뛰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음식을 마음껏 맛있게 먹으려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니 운동 부족으로 인해 몸이 무거워져 맛있게 먹기 위해 운동해서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대답한다. 적절한 대답인가? 이것은 표면적인 대답이고 본질적인 대답은 이렇다. “조깅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

오랜 훈련을 행하지 않으면 달리기란 쉽지 않다. 무릎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또 언제든 어디서든 달리기는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다. 1시간가량 달리는 동안 인간의 한계를 경험한다. 숨이 차고 다리는 극도의 피곤을 느낀다. 외웠던 성경구절을 암송하기도 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설교 본문을 떠올리기도 한다.

갖가지 생각을 하면서 오고가는 행인들, 멀리서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 흐르는 물, 새들, 곤충들, 향기로운 꽃들을 만난다. 그리고 반환점을 돌 때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고 하며 스스로에게 말하기도 한다. 마치 인생을 미리 맛보는 것처럼 느낀다. 민낯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의 힘으로 달려야 한다. 무엇의 도움 없이 속도를 내며 달린다. 순전히 나 자신의 힘으로 길을 힘차게 내딛는다. 달리기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갖가지 도구, 지위, 위치, 장식으로 나서려고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영(Spirit)으로서 우리의 영을 바라보신다. 외모와는 상관없는 분이다. 인간은 형상으로 그분께 판단 받으려고 한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인간의 예상과는 전혀 달리 영원하고 무한하신 분이다. 인간을 만드셨을 때 벌거벗음을 부끄럽게 느끼지 않았다.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자신의 나체를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하나님은 우리 영의 기능(faculties of soul)을 보시지 인간적 장식에 관심이 없으시다. 후에 그분 앞에 설 때도 인간적 어떤 지위로 판단을 받지 않을 것이다. 지상의 삶에서 필요한 것들이었지 하늘의 삶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고 불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것들은 영원한 하나님 앞에 지푸라기와 같다. 이러한 민낯의 모습을 그분께 보이는 자세로 난 조깅을 즐긴다.

나의 지위나 장식과 경험을 모두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그분께 나서고 싶다. 어떤 이는 업적으로, 열매로, 결과로, 성적으로, 배경으로 하나님께 무슨 호의를 받으려고 할는지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원치 않는다.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 상처받은 심정, 회개하는 심정, 순결하고 겸손한 심정이다. 인간의 그 어떠한 것으로 치장되지 않는 순전한 인간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분이 원하시는 것임을 확신한다.

오늘도 비가 오면 난 그분 앞에 어린아이처럼 서는 자세를 훈련고자 달리기 준비에 임한다.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추워도, 상관 없다. 언제든 죽을 수 있고 언제든 그분이 나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훈련에 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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