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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뛰어넘기다한국교회, 21세기 이렇게 대비한다 <40-20>
편집부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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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1호] 승인 2017.08.09  14: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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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은 더 이상 우리는 중세기에 머물지 말고 21세기 이후 곧 재림 메시아 대망의 청사진부터 찾아야 한다. 지난 20세기 중후반까지만 해도 재림 메시아 시대를 대망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1973년과 1974년, 그리고 1980년에서 1988년을 거치면서 한국교회는 예수 재림 대망을 포기하고 말았다.

바로 이 시기가 절망과 상실의 때의 출발이 될 것이다. 한국 땅에 기독교가 출현한 후 100여년, 고이 간직한 순결의 절조를 잃어버린 한국교회는 88올림픽 이후 ‘선교다’, ‘대형화 교회다’라는 이름으로 속임수와 잔재주만 늘었고 이제는 죽어서 장례식 할 날만을 기다리는 무연고 시체더미 꼴이 되어 있음을 알지도 못하고 있다.

누가 1천만 신자를 가진 한국교회를 부러워하던가? 주술과 탐욕의 무당신앙의 전성기를 맞이한 그대들을 어느 누가 부러워하던가. 한다는 소리가 경제계, 군부, 정계에 기독교 권사 장로가 30%는 자리하고 있으니 무엇이 걱정이냐고 큰소리친다. 대통령 취임하기도 전에 나도는 말이 아무개 목사, 또 아무개 목사가 그분 부부와 직통이라는 소리가 먼저 귀신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것을 보았다.

무서운 세상이다. 십자가가 무서운 것이 아니고, 예수의 가르침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예수나 십자가 따위는 겁내지 않는 목사나 장로들이 무섭더라.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깨달을 날이 멀지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나 읊으면서 초상집 곡쟁이나 잔칫집 개들처럼 요란을 잠시 떨다가 죽으리라.

그러나 여기서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예루살렘이 두 번 멸망하고 나서야 메시아 예수 오셨다. 16세기에 신형 예루살렘 가톨릭 교황청이 루터와 그 친구들의 협공으로 무너진 후 유토피아나 천국이 달려와서 우리를 마중해 줄 줄 아는 루터의 광신도들이 또다시 새 역사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께서도 기다리시는 예수의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으리라.

결코 만홀히 여기지 마라. 하나님의 심판이 무섭거든 가장 먼저 도둑질 해온 신자 노예들부터 해방하라. 예로부터 노예는 돈을 주고 사왔다. 한국교회 중 1백 가정 이상의 신자를 붙잡고 있는 곳은 대개 노예사냥꾼들이다.

조선조 기준으로 볼 때 최소한 남자노예와 여자노예를 합해서 노비라 했는데, 노비 한 쌍을 가져오려면 황소 몇 마리쯤은 값으로 지불했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무책임하고 몰염치하게도 멀쩡한 신자들을 노예나 노비로 훔쳐다가 기초 노동의 대가도 주지 않고 혹사만 시킨다. 모두 내보내라. 이는 링컨의 노예 해방보다 더 성경적이고 원초적인 노예 해방이다.

예배당에 모이는 숫자만 문제되지 않는다. 신자가 무엇 때문에 예배당에 가고 목회자의 가르침을 청하겠는가? 그들은 목사를 양을 위해 목숨도 버릴 줄 아는 목자로 알고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찾아오거나 찾아가는 신자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마땅하거늘 부목사나 전도사 또는 담당자들에게 맡기고 목사들은 엉뚱한 생각 속에 빠져서 몽유병자들처럼 헤매고 있으니 바로 그들은 삯군은커녕 도적떼나 살인자에 해당할 것이다.

오죽하면 노예나 노비도 값을 쳐주는데 신자 끌어다놓고 과연 무엇을 하느냐고 묻겠는가? 요즘도 ‘직할교회’, ‘지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신자들을 불러다가 무얼 하느냐고 묻고 싶다.

목회의 기본부터 지켜야 한다. 목사는 담임자를 말한다. 나머지는 보조역할이다. 목회의 원리가 그렇다. 그렇다면 목사는 신자를 개인지도 하듯이 대해야 한다. 예술가 후보생이나 예능인을 지도할 때 어떻게 하던가? 일대일이었다. 신자의 양육이란 그래서 어렵다.

예수께서도 열두 제자에 만족하셨는데 자기가 무슨 초능력자라고 몇 만 명, 몇 십만 명도 좋다면서 그걸 목회라고 자랑하고 다니는가? 길 지나가는 목회자들 붙잡고 물어보라. 한국의 목회자들 열이면 아홉 명이 200명에서 300여 명이 대충 적절하다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지교회 원리다. 모든 지상의 교회들은 지교회이다.

물론 신자의 숫자 조정만으로 목회가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일단 기본 틀부터 합리적으로 조정해서 신자나 목회자들의 마음을 단정히 해보자는 뜻이다.

그 다음 신자들과 어울려서 배우고 가르치는 절차과정에서 목회자의 몸짓, 성품, 성격,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자세, 말씀을 탐구하고 그것을 온몸으로 만들어가는 과정마저도 신자가 보고 익히도록 해야 한다. 장인들이 도제(제자)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과정이나 다를 바 없는 절차과정이 신자에게 모범을 보이는 목회자의 모습이어야 한다.

신자들의 성품이나 신앙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애환은 전혀 모른 채 자기 집 노비 부리듯이 부려먹기만 하면 러시아 볼셰비키 공산당 혁명을 유발시켰던 제정 러시아 말기의 꼴이 되고 말 것이고, 그때는 교회당 신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노예로 전락할 수도 있음을 한국교회 책임 있는 목회자들은 명심하라.

/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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