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를 건너 출애굽했던 이스라엘은 광야 40년 외로운 인도자 모세를 따라서 요단강을 바라봅니다. 모세는 자기 안에 예수아(여호수아)가 있는 줄 몰라서일까, 아니면 아직도 이끌어야 할 광야 제2진을 인도하기 위해서인지 멀리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음 절차를 밟기 전까지는 모두 광야였습니다. 이제 겨우 십자가 동승, 죽음과 부활의 절차를 마치고 제3일 아침이 오늘 우리 “들소리”의 40주년 기념시간입니다.

결코 짧지 않은 40년, 우리는 그 첫날부터 영욕이 뒤섞이는 날들이었으나 지금은 감사가 넘치옵니다. 이 모두가 주 예수를 따르는 한국교회의 하해와 같은 은혜였습니다. 한때는 교회가 우리를 길바닥에서 주워온 자식 대하듯 하니까 우리도 눈치 보기에 바빴었지요. 이제는 교회의 눈치를 보거나 우리 스스로 굴러온 돌이 아니라 한국교회를 어미니로 하여 태어난 순결한 족보를 자부하면서 교회들과 함께합니다.

무릇 성도들끼리는 주 예수의 광장에서 동등한 자격으로 달리기를 하게 되지요. 우리는 누가 빨리 달려서 1등을 하거나 출발선 실격 또는 중도 포기를 하여도 모두가 선의의 경쟁자들이기에 서로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습니다.

설마 했으나 어느덧 북한 권력 3대를 거치면서 핵무기가 완성단계에 와 있고, 아차하면 5천만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 권력의 노예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만약 그 같은 날이 온다면 매우 당혹스럽고 낭패한 꼴이 되기는 하겠으나 정신을 가다듬어 앞뒤 계산을 해봐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130여 년 전 복음을 받았고, 복음 중심의 신앙생활에 크게 불편치 않았지요. 일제의 기간에도 살아남았던 우리가 준비 없이 맞이한 광복 이후 아직도 건국절이 1919년이다 또는 1948년이다 하고 시비하는 정쟁에 휘말려 있는 좌우파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치명적 과오는 경제나 정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북분단 상황에서 발생한 좌우파의 갈등과 대립이 나라의 앞날을 어둡게 하였지요. 이에 대한 한국교회의 책임이 작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용서할 자를 다 용서하지 못했고, 관용해야 할 때를 놓치고 갈등을 오랫동안 방치하여 사상적이 아닌 감정적 갈등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장점을 발전적으로 누리지 못하는 현실을 가져왔습니다.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의 갈등을 치유하는 처방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들소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이 얼마쯤일까요? 우리는 우리의 뒤를 이어갈 자손들의 앞날을 생각해야 합니다. 도둑처럼 우리 앞을 가로막는 한반도 현실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합니까? 대통령이 하는 말, ‘대책이 없다’고 합니다. 북한 권력의 광기를 잠재울 대안이 없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위기만 보지 말고 위기의 순간에도 간섭하시고, 주 예수의 사랑받기에 합당한 자들을 지켜주실 은혜의 손길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주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마땅히 대한민국의 터전에서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기도와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주여, 40년 지켜주신 은혜 앞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오며, “들소리” 활동의 기반을 마련해주신 한국교회 앞에도 감사를 드리고, “들소리” 본격시대 동행자 되어주신 운영·후원이사회 이사님들, 이사장님들, 그리고 회원과 독자여, 자축하는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조효근 /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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