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운전사의 현장 이야기 (55)

▲ 이해영 목사
사)샘물장애인
복지회 대표,
샘물교회 담임

가을이 깊어가는 길목입니다. 그렇게 무덥고 길었던 여름이 지나가고 어김없이 찾아온 가을 앞에 지난날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매일 뒷산 오솔길에 떨어진 탐스런 밤을 줍는 재미를 느끼면서 생각에 잠겨 보기도합니다. 올해는 지독히도 가물었고 무더웠으며 또 한때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비가 와서 하늘을 원망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긴 시간을 견디며 결실을 준비하여 튼실하게 여물어가는 밤송이 속의 밤알을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의 삶에서도 고난의 터널을 잘 견디어 풍성한 신앙의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지 자신에게 묻습니다. 지나온 시간들 속에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되돌아보니 허탈하고 허망한 구석도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결국 우리가 하는 사역의 귀착점은 하늘나라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빛과 같이 소금과 같이 세상을 밝히고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해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주님의 자녀입니다. 자기 십자가가 무거워 내려놓고 싶을 만큼 힘들고 무거울 때도 있지만 이 고난과 아픔과 외로움도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는 일들을 제대로 잘 하고 싶은데 그것이 어렵습니다. 의욕만 가지고는 안 되는 시절이 곧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제 살아갈 날들 속에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나눌 날들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제가 20대부터 장애인 사역을 감당해오고 있는데 세월이 어찌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장애인들을 업고 안고 하는 일들이 겁나지 않았습니다. 장애인들이 부모님 산소에 가고 싶다고 하면 모시고 가서 벌초도 같이 하며 기쁘게 감당했습니다.

산소는 산에 있기에 휠체어가 갈 수 없어 이들을 등에 업고 갑니다. 땀으로 몸을 적시지만 그래도 이런 섬김을 통해 한 영혼을 기쁘게 하는 것이 보람이었습니다. 부모님 산소에 동행했던 분들이 지금도 얼마나 고마워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때는 장애인들이 결혼하면 신혼여행을 우리 차로 모시고 다녀오는데 너무도 즐겁고 기쁜 여행길이었습니다. 장애인들의 여행이 쉽지 않던 시절에도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힘들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목욕을 시키는 일도 가뿐히 해냈고, 밤새 보호자 없는 장애인들을 병간호하는 일도 즐겁게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이런 일들이 힘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거동이 힘든 장애인들과 여행을 다녀오고 정기적으로 목욕시켜드리고 병원을 모시고 다니는데 힘이 듭니다.

이제 모든 것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세월 따라 나의 체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문득 이 사실을 인지했을 때 허탈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남은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주님이 기뻐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오늘도 장애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나누고자 일어섭니다.오늘은 논산 상월면에 고구마 축제가 열리는 날입니다. 장애인 몇 분과 축제장에 갑니다. 좋아하는 그분들의 목소리가 저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누군가를 위해 흘리는 땀은 그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기쁘게 한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기쁘게 핸들을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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