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19 ] / 사제 왕 요한 24

▲ 중국 카슈가르(카스) 어느 마을, 무슬림 사원 문 앞에 기도하러 온 사람들.

밤늦은 시각에 을지 고와 태자 요한은 바깥뜰로 나왔다. 뜰이 아니라 장쾌하게 열린 초원의 웅장한 성체였다. 메르브는 동서 문명의 교차로라 할 주요지대다. 인더스 강 상변 박트리아의 박트라와 함께 인도에서 페르시아 가는 길이 되고, 메르브의 경우는 또 몽골 초원과 중국대륙에서 로마로 가는 실크로드 선상에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타클라마칸 사막 수십 개의 성벽국가들 상변으로는 천산 북로와 둔황에서 누란, 허탄, 야르칸트, 카슈가르로 잇는 천산남로가 천산산 서쪽 끝자락에서 만나는 지점에서 카스피해 남방으로 이어지는 곳에 메르브가 있다. 카라 키타이 실력자들이 메르브에 올 때는 사마르칸트나 카슈가르가 그들의 영토이기에 매우 접근 조건이 좋다.

메르브에서는 페르시아 동북부 호라산이 외세로부터 바람막이가 되어주기 때문에 메르브는 호라산 너머 헤라트에 또 대교구가 있고, 이어서 발흐와 박트라까지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 유라시아의 중심 지역이었다.

페르시아와 인도 및 중앙아시아와 중국 대륙은 물론 북방 초원까지가 지난 700여 년 동안(AD 451년 에뎃사를 출발한 네스토리우스 파 선교단이 을지 고와 카라 키타이 태자요한이 메르브 교구 안에 머무는 현재시간 1190년대임) 하나님이 주신 동방아시아 선교구가 있다. 그러나 650년 경((AD)에 경쟁자로 뛰어든 이슬람이 각 지역에서 선전하고 있으니까 기독교는 수세에 몰리고 있는 셈이다.

“태자마마,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니까 대세가 무너지고 있나이다.”

“사부님! 무슨 말씀이세요. 밑도 끝도 없이….”

“아, 그렇군요. 제가 잠시 방심했나이다. 제 헛소리를 거두겠나이다. 용서하소서.”

“아, 아닙니다. 말씀해 보세요.”

“그럼 말씀드리죠. 지난날 이야기입니다. 주후 755년도 우리 카라 키타이 발하슈와 사마르칸트 중간쯤 되는 탈라스에서 당나라 명장 고선지 장군과 이슬람의 사라센 군과 투르크족 연합군의 큰 전투가 있었죠. 그때 당나라 현종 왕이 약속한대로 군사지원을 해주지 않아서 고선지 장군의 당나라군이 이슬람-투르크 연합군에게 패배했어요. 전쟁은 늘 승패가 있다지만 우리 기독교에게는 엄청난 타격을 준 셈입니다. 이슬람 제국이 지금의 우리 영토 안에까지는 물론 특히 지금 우리가 서있는 메르브와 주변 지역이 모두 이슬람의 영향권 아래로 귀속되었고, 당시 투르크 족은 당나라에 쫓기는 종족이 살아남기 위해 이슬람 군과 연합했다가 거의 동서투르크 족 전체가 이슬람 종교로 개종해서 이슬람의 중앙아시아의 기반을 탄탄하게 닦았어요.”

“허참. 나는 또…, 사부님이 그토록 약하십니까? 이슬람 덕분에 투르크 족이 개종했으면 됐지요.”

“아이고 태자님! 왜 제 말을 못들은 척하세요.”

을지 고는 아직도 소년티를 벗지 못한 태자 앞에서 엄살 부리는 아이처럼 안타까워했다.

“사부님! 좋습니다. 사부님은 내일 새벽이 열리는 대로 부하라로 돌아가세요. 저희를 호위하는 카라진 용사들과 저는 호레즘 일대를 한번 둘러보고 본격 훈련기로 돌입하겠습니다. 아마, 저는 3년쯤 사부님을 뵙지 못한 채 카라진과 한 몸이 되어 어른스런 모습으로 사부님을 뵙겠습니다.”

“태자 마마! 진정하세요. 아직은 아닙니다. 지금은 제왕의 도를 먼저 익히셔야 합니다. 그리고 저 혼자서 황궁에 돌아가다가는 황제 폐하께 혼쭐이 남은 물론 당장 태자 마마를 불러오라 명령하실 겁니다.”

“걱정 마세요. 저는 어린애가 아닙니다. 제 나이면 하룻밤 사이에도 쑥쑥 큽니다. 보세요. 이거 제가 입은 옷이 지난 몇 달 만에 작아졌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저를 특별히 도와주실 겁니다. 아셨죠. 사부님!”

다음날 새벽, 총 주교 비서들에게만 급한 일이 있어 인사 못 드리고 떠난다고 일러주고 요한과 을지 고는 각기 떠났다. 을지 고보다 요한 태자는 먼저 카라진 용사들과 호라산 속으로 길을 잡았다.

카라진. 일찍이 을지 고는 맹금처럼 강한 날개와 높이 치고 오르는 심장은 물론 4백리 밖까지 내다볼 수 있는 눈과 밝은 귀를 가진 독수리 과의 날짐승을 연상케 하는 훈련을 해낸 특수부대로 길렀다. 그 모형은 고구려의 ‘조의 선인’과 신라의 ‘화랑’을 모델로 삼았다. 더 고전적 의미로는 흑해 북방에서 발원한 초원시대의 제왕족인 스키타이의 기상을 기초상태로 삼았다. 초원과 농경시대를 통합하는 장수들로 키우고자 했다.

 

“카라진! 너희는 들으라. 우리는 프랑크의 바다(대서양)와 몽골 초원 동방의 대해(태평양)까지를 지배영토로 삼았던 스키타이의 기상과 포부로 살고 죽는 용사들이다. 우리는 기마술에 능해야만 기마전을 감당해낼 날이 올 것이다. 분명코 내가 예언 아닌 예언을 하건대 동북방 초원(몽골)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 세력이 일어나서 우리들을 위협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기마전에 익숙해야 한다. 우리 카라 키타이 창업 주군이신 야율 대석 황제가 셀주크 투르크의 산자르 술탄을 카트완 전투에서 대승했던 승리요인이 무엇인지 아는가?”

답하는 이들이 없었다.

“답답하구나! 역사 인식이 부족하다.”

을지 고가 푸념처럼 말할 때 태자 요한이 말했다.

“신출귀몰 식 기마기술이었습니다.”

“맞습니다! 태자 마마.”

을지 고가 손뼉을 치면서 태자 요한의 총명을 격려했다.

“뿐만 아니라 당나라 고선지 장군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장점도 기마술을 통한 기마전에서였다. 하나 더 말한다.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 전쟁신이라 할 만큼 적수가 없었던 점 또한 기마술을 통한 전투의 비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개토태왕의 손발이 되었던 조의 선인들이 태왕의 분신처럼 활동했었기에 만세의 영웅 광개토태왕이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카라진 용사들은 태양이 벌겋게 떠오르는 것과 마주하며 호라산 골짜기로 발길을 재촉했다. 그들은 잠시 전 을지 고 총사령관이 그들에게 들려준 간곡한 내용의 훈시를 떠올리고 있었을까. 그들의 동작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산속 깊이에 요새가 있었다. 자연 동굴이었다. 동굴 주변은 축구장만큼 한 훈련장으로 쓸 공간이 있는가하면 산새를 자랑하는 험지도 있었다.

태자 요한은 호라산 요새의 지형지세에 만족했다. 이 산을 중심으로 멀리는 흑해와 카스피해까지를 바라보았다. 그가 지금 머무는 호라산은 카라한 왕조와 가즈나 왕조의 옛 영화가 서서히 사라져가는 중이다. 카라한 왕조는 10세기와 11세기에 천산산맥 주변의 초원과 농경지대에서 일정한 성공을 이룬 투르크계 유목집단이었다. 이들은 시드다리야에 들어선 페르시아계 사만 왕조의 영향으로 정치 문화적으로 성장했었다. 10세기 중반에는 이들 투르크계 유목민들은 이슬람 종교에 깊이 몰입해 지도자를 양성해 천산 위구르 왕조까지 문화적으로 리드하기도 했다.

그러나 카라한 왕조는 야율 대석의 카라 키타이(서요, 서쪽의 거란제국)에 의해서 사양기를 재촉했다.

태자 요한은 시르다이야와 아무다리야의 물줄기를 받은 아랄해를 바라보면서 영적인 성장을 했을지 모른다는 이슬람 성자 유스프 하스 하집을 떠올려보았다. 유스프 하집이 지은 책 <쿠타드구 빌릭>(중국어 표기는 福樂知慧)은 대구가 6천5백 개가 넘는 서사시로 투르크어로 쓰였으며 국왕, 재상, 현자, 수도사를 상징하는 네 명의 주인공이 대화와 잠언을 주고받으며 이슬람적 가치관을 강조하는 책이다.

태자 요한은 이 책을 성경과 함께 애독하고 있다. 자기 자신도 언젠가는 유스프 하스 하집과 같은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때 밖이 소란해졌다.

“태자 마마! 알현을 원합니다.”

“들어오라!”

두 명의 카라진 용사들이었다.

“태자 마마! 저희들의 훈련 일정을 알려주십시오.”

“그래. 일단 호라산 전 지역이 여러분의 활동지역이다. 이 산의 지형지세를 상세히 파악하라. 지휘부 군사는 30명만 두라.”

“마마! 30명이면 마마 호위군으로는 빈약합니다.”

“그래, 30명과 나는 너희들 3천명과 긴밀한 연락망으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야 한다. 5백리 밖에 우리 부대원이 적들과 싸워 위태롭다 하여도 나머지가 전체적으로 대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메르브 교단 본부의 수비군을 곧 보완할 것이다. 메르브와 부하라, 부하라와 타쉬겐트, 타쉬겐트와 사마르칸트, 사마르칸트와 카쉬가르, 카쉬가르와 야르칸트, 그리고 호탄, 누란, 코쵸(투르판), 우리의 수도인 발라사군까지 조작망이 되어 있다. 부족한 지역은 보충하고 강화한다. 알겠는가?”

“네, 태자 마마!”

“그리고 전쟁터다. 지금 우리는 영적으로는 사단과의 전쟁이지만 장차 우리의 호레즘 시대를 위한 공을 들여야 한다. 이제부터 나는 너희들의 사령관이다. 그러나 호칭은 대장으로 불러라. 알겠느냐?

“……. 그래도 태자 마마를 어떻게 대장으로 호칭합니까?”

“그램, 그럼. 요한 형제로 부르든지….”

“아, 아닙니다. 태자 마마!”

“그래도 태자 마마인가….”

이렇게 말하는 요한 태자도 크게 웃었다.

“나는 앞으로 이곳 호라산을 떠나지 않는다. 여러분, 지금부터 당장 우리의 카라진 용사들이 고구려 전성기의 ‘조의 선인’을 뛰어넘게 하라. 알겠나!”

조효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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